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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Mar 24. 2021

생활과 커피




커피, 좋아하세요?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네- 하고 말할 수 있는 게 바로 커피다.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좋아하는 게 순식간에 달라지는 나지만 커피만큼은 늘 좋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무슨 커피를 좋아하는지, 어떤 맛을 즐기는지, 핸드드립 커피는 마시는지 묻는다면,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다. 나는 그저 조금 탄 맛이 나는 진한 아메리카노(이하 ‘아메‘)를 좋아할 뿐이다.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물음들에 답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저 이 정도라도 커피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틀림없다. 커피를 마시는 것은 나의 일과이자 생활이다. 출근해서 그날의 기분에 따라 따뜻하거나 차가운(시원을 넘어서야 한다) 아메 한 모금 마셔야만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하겠다는 의지와 다짐이 카페인과 함께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혹여 불쾌한 일이 있었더라도 아메를 마심으로써 없던 긍정도 쭉쭉 만들어버림으로써 나는 그야말로 인자함의 극치에 다다른다. 그러니 늦더라도 점심 전엔 꼭 마셔야 한다. 커피콩이 에티오피아에서 왔든 콜롬비아에서 왔든 전혀 상관없다. 맹물처럼 달달한 맛이 나는 것만 아니라면 어디든 좋다. 체인점의 거기서 거기인 커피 맛도 좋고 분위기 있는 곳에 가서 이것이 바로 비싼 맛인가- 하고 마시는 드립 커피도 좋고, 샷 팍팍 추가해서 한약처럼 벌컥벌컥 마시는 나의 커피도 좋다. 어쨌든 나는 커피가 좋다.     


 속이 쓰리거나 잠을 못 자는 경우가 생겨 하루에 두 잔 이상은 마시지 않지만 한 번씩은 두 잔을 넘길 때가 있는데, 바로 사람을 만날때이다. 초면인 사람과는 당신과 편해지고 싶다 혹은 당신과 잘 지내고 싶다 라는 나의 표현으로, 이미 알고 있는 사람과는 당신과 의미 있는 시간을 공유하고 싶다 라는 나의 마음으로 커피를 마신다. 반대로 싫은 사람과의 커피 한 잔도 굳이 피할 이유가 없다. 정말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뭐라도 해야 한다면, 밥을 먹거나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는 것보다 커피 한 잔만 할 수 있는 게 다행이기 때문이다. 너무 박해 보이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친밀하지도 않게 적당한 간격을 유지할 수 있으니 속이 좀 쓰리더라도, 잠을 좀 늦게 자더라도 나는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다. 여하튼 나는 커피가 좋다.     


커피 한잔할까?     


 사실 내가 정말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는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다. 조기흥분증후군(무조건 욱하고 보는 나의 성질머리에 부친 자가진단명)과 조울의 롤러코스터가 번갈아 찾아올 때면 숨이 턱턱 막힌다. 아무렇지 않은 척 멀쩡한 척, 겉을 꾸밀수록 속으론 망가져서 무너져 내린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된다. 겨우겨우 정신줄을 붙잡고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메 한 모금 들이킨 후 살포시 앞에 두고, 지그시 바라보면 어느새 마음이 좀 진정되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주변도 보게 된다. 그러고 나면 아- 별거 아니지 아- 별일 아니지 하면서 나를 다독이게 된다. 커피가 바닥을 보일 때쯤이면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다시 걸을 힘이 생기니 나는 또 열심히 살아볼 것을 궁리한다. 이쯤 되면 생활 커피인? 커피 생활인? 이라 불러도 될 듯하다. 커피가 좋을 수밖에 없다.     


커피, 좋아하세요?     


 네, 그럼요. 잘 모르지만 좋아합니다. 모르면서 좋아한다는 게 시답잖을 수 있지만 그래도 좋아합니다. 첫 커피를 마신 이후로 쭉- 함께 했으니 좋을 수밖에요. 이미 생활입니다. 이젠 삶, 그 자체입니다. 저는 커피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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