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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Jun 03. 2021

당신의 얼굴

얼굴이 다 들어차진 않지만 거울을 손에 들고 유심히 얼굴을 본다. 


 오랜만에 마주한 얼굴이 낯설기도 하고 친근하기도 하다. 얼굴을 보기 위해 얼굴을 보는 게 언제였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치장을 위해 눈 한쪽 볼 양쪽, 입술 한 번 들여다보는 게 고작이다. 그런 내가 갑자기 거울을 찾아들고 진지하게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건 누군가의 우는 얼굴을 보고 나서였다. 무의식적으로 뱉어낸 말이었지만 다 진심이었다. 비하도 아니었고 과장도 아니었지만, 누군가 내 말을 듣는다면 분명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라고 했을 법한 극단적인 말들을 나는 생각 없이 뱉어내고 있었고 내 이야기를 듣던 D는 그림자가 진 얼굴로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불쑥 몸을 앞으로 내밀며 내 손을 잡고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생각보다 깊고 긴 울음이었고 한팔로 눈가를 감춘 채 흐느끼는 D를 바라보며 단번에 생각을 바꿀 순 없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하지 않겠노라며 다독였다. 다독이는 게 내가 되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혹은 어떤 지점에서 미안해야 할지, 어쩌면 나한테 미안해야 하는 건가 싶으면서도 나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해대며 그를 달랬다. 그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저 그런 어떤 날         


 어딘가로 향해가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본다. 그들의 얼굴과 D의 얼굴이 겹친다. 진심이 담겨 있는 얼굴, 어떤 마음 같은 걸 전하고 싶은 욕망이 담긴 얼굴은 그런 눈빛과 떨림 같은 걸, 미세하게 피어오르는 초콜릿 같은 냄새와 그것을 품은 어떤 온기를 가지고 있는 건가 하고 생각한다. 몸 한구석이 뜨뜻하게 채워진다. 그래서 자꾸만 떠올리고 되새긴다. 어느새 도착한 집. 책상 위에 작은 거울이 눈에 띈다. 아주 공손하게 양손으로 거울을 받친 채 얼굴을 조심스레 들여다본다. 진심과 마음을 담았을 때 나의 얼굴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혹은 의도적으로 거짓을 뱉어낼 때 나의 얼굴은 어떨까 얼마나 잘 감출까 궁금해졌다. 이것 또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의 눈은 곁에 머무르는 상대방에게만 향했지 나를 향한 적은 없었다. 마음을 전달해야 하는 순간만큼은 적어도 그랬다. 그들의 표정과 움직임이 내게는 더 중요했다. 그런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들도 따뜻함과 애틋함을 느꼈을까. 알 수 없다.          


그때 그날          


 내가 느꼈던 건 어떤 받아들여짐이었다. 나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나의 어떤 상태가 받아들여졌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D의 얼굴에 온전하게 피어올랐기 때문에 그 순간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나의 눈앞으로 흘러왔다. 그래서 그의 눈과 코, 입술의 떨림이 느껴지고 안아졌다. 그것들을 사람들은 어떤 단어로 명명하기도 하고 어떤 기분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어떤 확신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얼굴을 하고 싶다. 많은 누군가들을 받아 들여주고 싶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단어로, 기분으로 혹은 어떤 확신으로 많이 많이 아주 많이 오해하면 좋겠다. 나도 그렇게 따뜻한 얼굴로 살고 싶다.       

         

 따뜻한 얼굴을 생각하다 언제 이렇게 얼굴은 나이를 먹었나 하고 갑자기 주제를 벗어난다. 나이는 얼굴이 다 먹네 하며 계속 이탈 중이다. 샐쭉거리다가 거울을 놓는다. 아차 싶어 다시 집어 들고 눈을 잠시 감는다. 어떤 날들의 기분과 마음을 모아 본다. 그대로 잠시 머무른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떠본다. 뭔가 가득 찬 듯도 하고 뭔가 다 비어진 얼굴을 하고 있다. 마음에 든다.







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diapowder2000/222243040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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