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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얘기나
by 김도헌 Oct 02. 2018

BTS의 UN 연설이 슬프게 들렸던 건 왜일까

방탄소년단의 ‘자신을 사랑하라’가 대변한 청춘들의 우울한 현실


BTS의 유엔 연설 내용을 보며 괜히 슬펐다. 우리나라 가수가 국제무대 총회에서 메시지를 전하는 광경은 분명 멋졌지만, 약간은 벅찬 표정으로 유년기의 상처를 덤덤히 읽어내려가는 RM의 한마디 한마디는 너무도 적나라해서 애써 마주 하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청소년 시절을 자꾸만 떠올리게 했다.

리더 RM은 아홉, 열 살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전근대적 교육 과정과 희미한 공동체주의가 남아있던 1990년대 초-말 생들에 학교란 체벌 당하고, 강제로 머리 자르고, 옆집 공부 잘하는 누구와 비교당하는 공간이었다.

대학만 가면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는 불가침의 논리 아래 우리는 끊임없이 경쟁을 강요당했고, 자존감을 희생당했다. 매년 대입 시험 철마다 아이들이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1993년 서태지가 ‘교실 이데아’를 외치고 1996년 HOT가 ‘우리가 미래다’라고 외쳐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치열한 입시를 거쳐 막상 스무 살이 되어보니 기성들은 꿈 없고 목표 없는 현실을 질타하며 갑자기 창의력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 이해할 필요도 없었던 시스템을 거치고 나니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라고 한다. 평생 남의 시선, 누군가의 바람을 자기 꿈처럼 여기며 살아온 우리에게 갑자기 나만의 시선을 갖춰야 한다고 한다. 입시는 미래 연봉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그나마 공부를 선택한 아이들은 BTS처럼 음악, 미술, 체육을 선택한 이들에게 으레 붙는 ‘딴따라’ 소리는 안 들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하나. 비아냥과 조롱 속에서 가수의 길을 선택한 친구들은 대형 기획사의 육성 시스템에서 몇 년간 피나는 노력 끝에 팔각형 능력치의 평범한 연습생 1이 되어 기약 없는 데뷔 일자, 노예 계약에 시달린다.

그런 아이들에게 기성 작곡가들이 선사하는 곡은 표절 아니면 형편없는 공산품에 불과하다. 지금이야 어리숙했던 추억으로 미화되지만 BTS의 데뷔 티져는 칸예의 ‘Black Skinhead’를 부끄럽게 베낀 표절작이었다. 그마저도 성공하지 못해서 차갑게 잊혔다. ‘되고파 너의 오빠’의 유치한 ‘상남자’를 부르던 방탄소년단에게 지금과 같은 성공을 기대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성공하지 못하면 잊혀가야 하는, 그것이 케이팝의 잔혹한 현실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사랑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시스템 안에서 길들여져왔다. <화양연화> 시리즈, ‘Love Youself’ 시리즈가 십대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 당연한 말 한마디조차 거대한 감동으로 다가올 정도로 한국 청춘들의 자존감이 낮다는 방증이다.

자존감이라는 개념이 자랄 틈도 없이 살아온 아이들에게 ‘나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하자’는 참 보편적이면서도 흔치 않은 위로의 손길이었다. RM의 연설문처럼 우리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남들이 사랑하는 어떤 것을 사랑하도록’ 강요받았다.


유엔 총회에서의 방탄소년단은 그들의 아픔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청소년들의 갈등과 고민을 치유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들의 음악은 외관상으로는 주류 팝을 취할지언정 그 메시지는 한국 사회의 기형적 구조로부터 탄생했다. 여기서 채도를 살짝 낮춰 글로벌 캐치프레이즈 ‘Love Yourself’로 확장한 것이 BTS의 주요 성공 요인이 됐다. 아름다운 자아 사랑을 피워낸 일그러진 토양이다.

앞다투어 그들의 성공을 전하고 미사여구를 반복하는 미디어는 이들의 메시지 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모두가 방탄소년단이 청춘을 대변하고 그들의 아픔을 노래하면서 공감을 획득했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그 아픔의 배경과 그 사회적 분위기를 어떻게 개선해나갈 건지, 방탄이 대변하는 아이들의 억압된 심정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를 논하는 기사를 좀체 본 적이 없다. 주류의 시선으로는 방탄소년단은 한국 영웅들의 고정 레퍼토리 -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성공에 다다른 모범적 귀감 - 를 강화하기에 아주 알맞은 캐릭터다. 성장기의 고통과 억압, 경쟁과 차별은 또 한 번 정당화된다.

결국 적자생존이다. 기울어진 운동장과 불공평한 시스템, 삭막한 현실 속에도 불굴의 창의력과 뚝심을 살려 성공하기만 하면 대단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 영웅의 반열에 오른 누군가의 존재로 인해 경쟁과 억압은 필수 불가결 요소로 자리를 잡는다.

그렇기에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십시오.’라는 마지막 질문은 그래도 아직 청춘이라고 믿고 있는 나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과연 나는 내가 누구인지, 나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가. 그것이 당연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 방탄소년단이 한국에 던지는 뼈아픈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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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직업에디터
음악웹진 IZM 6년차 / 여러 곳에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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