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피아노!>, 어느 한 멀티-아티스트의 치열한 작업기
1972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제이슨 찰스 벡(Jason Charles Beck)은 스스로를 칠리 곤잘레스(Chilly Gonzales)라 칭한다. 꽤 이질적인 작명 센스가 우선 마음에 걸리긴 하나, <닥치고 피아노!>라는 투철한 영화 제목과 더불어 다프트 펑크와 파이스트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이력을 보면 그는 우리 관념 속 ‘피아니스트’ 이미지에 충실한 인물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안심이 깨지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작품 시작과 동시에 제4의 벽을 넘어 관객에게 침 튀기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성난 칠리 곤잘레스의 모습이 ‘평범하다’ 면 그것은 아티스트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그를 ‘작곡가, 피아니스트, 엔터테이너, 가수, 래퍼, 프로듀서, 작곡가, 배우, 극작가’로 소개한다. 커리어 내내 끊임없이 자신을 ‘음악 천재(Musical Genius)’로 지칭하는 그는 분명한 기인(奇人)이다.
필립 예디케 감독의 2018년 다큐멘터리 <닥치고 피아노!>에서 칠리 곤잘레스를 ‘닥치게’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캐나다에서 태어났으나 유럽으로 건너가 음악의 꿈을 키우던 1990년대의 칠리 곤잘레스는 돌연 랩을 접한 후 ‘음악의 새로운 영감을 받았다’며 언더그라운드의 시인, 저항의 괴짜 아티스트로 악명을 높인다. 피아노를 칠 때나 랩을 뱉을 때나 그의 얼굴에는 핏대가 솟고 숨 쉴 틈 없이 언어든 멜로디든 어떤 것을 뱉어댄다.
마이크를 잡아먹을 듯 불복종의 언어를 토해내는 그의 20대를 가장 집약해서 보여주는 기록은 영화 속 ‘베를린 언더그라운드 회장 선출장(Bundes Press Conference)’이다. 베를린 언더그라운드에 한 몸 바치겠다며 조국 캐나다 국기를 찢어 보이고, 객석의 누군가가 동행하는 인형의 현실성을 질문하자 광기 어린 역정을 풀어내며 회의장 밖의 그랜드 피아노 좌석에 앉아 목이 쉬도록 깔깔대며 즉흥 연주를 선보인다.
정신없는 스크린 전환의 20대가 끝나자 칠리 곤잘레스는 갑자기 차분하게, 정말 말 그대로 ‘닥치고 피아노만’ 연주하기 시작한다. 2004년 발표한 피아노 솔로 앨범 <Solo Piano>의 남자는 에릭 사티로부터의 영향과 심상에 따른 즉흥 연주, 재즈적 터치를 구사하는 차분한 피아니스트로 존재한다. 일상과 개인에서 얻은 영감을 정돈되지 않은 문법으로 풀어냄과 동시에 클래식 작곡가들의 피아노 곡을 연습하는 장면이 묘한 모순을 자아낸다. 악보를 제대로 볼 줄 몰라 7~8세용 악보를 보는 모습이 ‘음악 천재의 모습은 아니다’며 조소하는 것은 덤이다.
이 시기 칠리 곤잘레스의 발화는 언어 대신 음표와 멜로디로 구성된다. 캐나다 싱어송라이트 파이스트(Feist)가 종이 위에 즉석에서 그리는 점과 선을 음악으로 풀어내고, 다프트 펑크의 토마 방갈테르의 킥 드럼에 맞춰 근사한 연주를 선보인다. 과격하고 공격적인 기표로 일관하던 칠리는 여유와 정격의 표현을 익히며 본인의 기행과 독특한 캐릭터에 당위를 부여한다.
<닥치고 피아노!>에서 ‘닥치고’는 피아노에 수절하는 고독한 천재를 일컫는 표현이 아니다. 2011년 빈에서의 ‘슈퍼 빌런’ 콘서트 장면을 보자. 서양 음악의 성지, 클래식의 수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오른 칠리 곤잘레스는 단어 그대로 무아지경, 점입가경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손에 피가 터지도록 피아노 건반을 사정없이 내려치고, 피아노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며 피아노 프레임 속으로 몸을 들이민 다음 팔을 뒤집어 건반을 연주한다.
영화 속 빈 필 관계자는 칠리 곤잘레스의 퍼포먼스를 향해 ‘음악 실기 시험에 합격할 수준의 실력이 아니니, 무대 위에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자 할 것이다’는 혹평을 날린다. 조예 깊은 클래식 전문가가 보기에 랩과 피아노 연주를 병행하며 극장에서 스테이지 다이빙을 시도하는 칠리는 정통도 아니고, 현대 음악에서 유의미한 성취를 거두지도 못한 인물이다. 반면 대중음악계는 칠리의 영감에 감명을 받는다. 영국 록 그룹 펄프(Pulp)의 리더 자비스 코커가 ‘그야말로 진정한 뮤지션’이라는 찬사를 바칠 정도다.
요컨대 그는 특정 몇 단어만으로 정의되는 인물이 아니다. 수많은 페르소나로 대중의 주목을 끌고, 그 아래서 다음을 알 수 없는 작업에 몰두한다. 그러나 확실한 하나의 미덕이 있으니, 바로 ‘치열함’이다. 엇갈리는 평가와 다양한 방법론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본인의 작업에 집요할 정도로 집중한다.
칠리 곤잘레스는 칠리 곤잘레스로 존재한다. 제2의 에릭 사티, 언더그라운드 회장, 뉴에이지 피아노 플레이어, 훌륭한 작곡가라는 명칭을 ‘닥치게’ 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닥치고 피아노!>는 투철한 예술혼을 이어온 한 아티스트에게 바치는 차분한 헌사다.
언젠가, 언젠가는, 언젠간 말이야
난 닥치고 피아노만 칠 거야
Chilly Gonzales, ‘Shut up and play the pi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