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딜릴리>, 아름다운 동화로는 충분하지만...
<파리의 딜릴리>의 화면은 아름답다. 환상을 그리는 애니메이터 미셸 오슬로는 보불전쟁 이후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의 파리를 재현하기 위해 무려 4년 간 도시의 아침과 오후, 저녁과 밤, 사계절과 웅장한 명소를 사진에 담았다. ‘파리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도시이기에 그래픽으로 흉내 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담아낸 21세기 파리의 배경 위에 직접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3D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19세기 말의 향수를 옮겨 왔다.
이렇게 탄생한 비주얼 아티스트의 파리에는 수많은 위인들이 거리를 거닌다. 젊은 날의 피카소가 좁은 작업실에서 야망을 불태우고 모네와 르누아르가 강가에서 캔버스를 펼친다. 이웃집에는 과학자 마리 퀴리가 살고, 유망한 의사 루이 파스퇴르가 환자들을 치료하며 과학자 알베르토 산토스 뒤몽이 독일의 체펠린 백작과 함께 거대한 비행선을 건조한다. 당대를 풍미한 소프라노 엠마 칼베(Emma Calve)와 위대한 배우 사라 베르나르가 사교를 나눈다. 단어 그대로 ‘좋은 시절’이다.
그러나 영화는 마냥 아름답지 않다. <키리쿠와 마녀>, <아주르와 아스마르> 등에서 보인 바 있듯, 미셸 오슬로는 화려한 동화 이야기 속 인종차별과 편견, 젠더 구조에 대한 의문을 담아낸다. 남태평양 프랑스 속령 누벨 칼레도니(New Caledonia)에서 온 주인공 소녀 딜릴리가 파리에서 처음 하는 일은 공원 한복판에서 원시 부족의 일상을 재현하는 ‘인간 동물원’ 연극이다. 백인 배달부 소년 오렐은 그런 딜릴리를 신기해하지만, 연기를 마친 후 벨 에포크 시대의 우아한 기품과 언행, 드레스를 갖춰 입은 딜릴리의 모습에 이윽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동시에 파리에서는 딜릴리 또래의 어린 소녀들이 연이어 실종된다. 이 범죄 집단은 ‘마스터맨’이라는 조직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자 이를 ‘타락’으로 규정하고 아주 어린 나이의 소녀들을 집단으로 유괴해 복종과 순응의 질서를 강요하는 광신의 모임이다. 이들은 여성을 ‘네 발’이라 부르며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을 뿐 아니라 동무처럼 네 발로 기어 다니기를 교육한다. 딜릴리와 오렐이 사회 명사들을 만나 ‘마스터맨’의 음모를 막고 유괴된 소녀들을 구출하는 과정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파리의 딜릴리>는 벨 에포크 시대의 낭만과 인종주의, 성차별을 대립 구도로 놓았다는 데서 모순적이다. 분명 극 초반 인간 동물원을 구경하는 이들은 파리의 상류층 시민들인데, 누벨 칼레도니에서 온 소녀 딜릴리를 만나는 사회 명사들은 몹시 친절하고 선진 의식을 가지고 있다. 낭만의 20세기 유럽인들이 인간 동물원, 인간 전시, 우생학을 즐겼고 인종 차별을 당연하게 여겼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파리를 활보하며 사회 명사들의 도움을 이끌어내는 딜릴리의 모습은 사뭇 어색하게 다가온다.
물론 영화가 이 둘을 완전히 별개로 두지는 않는다. 마스터맨을 추적하며 활약하는 딜릴리에게 ‘우리나라 말은 할 줄 아니?’라 질문하는 기자들, ‘고향에서는 나를 하얗다고 말하더니, 프랑스에선 모두가 나를 검다고 말한다’라는 소녀의 푸념으로 은근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낭만의 시대에서 이 정도는 사소한 문제라는 듯, 상냥하고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의 모습은 역사적 사실과의 괴리를 부른다.
성 차별도 다르지 않다. 프랑스 여성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4년에야 참정권을 획득했다. 1893년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의 여성 참정권을 부여한 이후 1902년 호주, 1917년 소련, 1919년 독일, 1928년 영국이 뒤를 따른 것에 비해 상당히 늦었다. 프랑스혁명 이후 1793년 국민 공회는 여성 집회를 모두 금지하고 여성 단체들을 해체했다. ‘마스터맨’처럼 극단적인 태도를 지니진 않았지만, 당대 여성들을 바라보는 프랑스의 시각은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파리의 딜릴리>에서 인종과 성을 핍박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거칠고 음침하게 묘사된다. 엠마 칼비의 운전수는 여성 밑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느끼고 딜릴리를 ‘원숭이’라며 못마땅하게 여긴다. 코에 우스꽝스러운 링을 매달아 조직원임을 증명하는 ‘마스터맨’들의 용모 역시 일반적이지 않다. 동화적 구성을 위한 대비로도 볼 수 있지만, 저명한 명사들과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 속 분명히 존재했던 차별과 편견의 의식을 특정 집단의 문제로 몰아넣는 구성이 썩 깔끔하진 않다.
아름다운 19세기 파리와 벨 에포크 시대의 낙관, 20세기를 열어젖힌 유명 인사들을 스크린에 옮긴 거장의 손길이 유려하다. 더없이 화려하고 낭만적인 화면과 더불어 지적으로도 깊이가 있다. 역사의 기록과 인종 차별과 젠더 편견에 대한 가벼운 교양서 정도로는 충분하다. 다만 한 꺼풀 아래를 들춰보면, 유쾌한 작품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