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헌 Jun 03. 2019

지상에서 지상으로,
어나더 컨트리는 어디에

한국 초연 중인 <어나더 컨트리>, 1930년대 영국과 2019년의 한국


지상의 존재는 천상의 세계를 동경한다. 찬란히 빛나는 태양을 향해 밀랍 날개를 펄럭였던 이카로스처럼, 속세에 발 묶인 청년들은 사랑을 통해, 또는 사상을 통해 국경과 제약을 넘어 각자만의 유토피아로 날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이 청춘들에게서 잠시나마 하늘을 날 낭만조차 박탈하는 것이 현대의 계급 사회이자 교육의 시스템이다. 추락할 기회조차 빼앗긴 어린 영혼은 국가의 존재 가치를 의심하고, 상승의 꿈은 ‘어나더 컨트리’, 또다른 지상으로의 이민으로 대체된다.

1982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하여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줄리언 미첼의 연극, <어나더 컨트리> 내용이다. 배우 콜린 퍼스의 스크린 데뷔작으로도 유명한 이 극이 5월 21일부터 대학로 유니플렉스 극장에서 한국 최초 초연 중이다. 세계 대전이 휩쓸고 지나간 1930년대 영국, 엄격한 명문 공립고교의 두 이방인이 닿을 수 없는 이세계를 갈망하다 결국 좌절, 분노하고 마는 이 극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체제의 대결 속 스러지는 청춘의 삶을 통해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프랑스 공사를 꿈꾸는 자유주의자 가이 베넷은 쾌활한 성격이나 남자를 사랑하는 섬세한 인물이다. 모범적인 학생 토미 저드는 규칙과 규율을 중시하는 신중한 성격 아래 <자본론>을 성경으로 모시며 공산 혁명을 꿈꾼다. 영국 상류 계급의 자제들이 모인 학교에서 그들은 주류임과 동시에 이방인이다. 종교와 군국주의, 파시즘과 낡은 계급주의가 지배하는 교육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위선으로 가득한 ‘예비 부르주아’들의 민낯을 드러내며 약자를 배려하는 인물이다.



1930년대의 학교는 국가에 헌신하는 예비 인재로의 엘리트 교육으로 인간의 욕망을 억누르려 한다. 학교 내 만연한 체벌과 엄격한 군대 문화, 종교에의 고백이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며 자아 관념의 빈자리에 국가관을 주입한다. 억압적 교내 분위기에 잘 적응하는 듯한 청년들은 존중과 배려 대신 욕망의 과시와 동시에 이를 은닉하는 방법을 먼저 깨친다. 고상한 철학과 이론을 논하면서 후배 학생들을 험하게 부리고, 동성애를 죄악으로 공표하며 지하에선 은밀한 만남을 주선한다.

토미 저드와 가이 베넷은 권력의 시선에선 위선자이자 이방인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둘만큼 가장 자유롭고도 인간적인 사고를 갖춘 이들이 없다. 가이 베넷은 동성애 행각이 발각되어 목을 맨 친구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사랑하는 이에게 낭만의 러브 레터를 보낸다. 프롤레타리아의 각성을 촉구하는 토미 저드는 비판적 시각을 갖춤과 동시에 놀랍도록 규율을 정확히 지킨다.

계급화된 학생들은 프리-팩트라는 비밀 학생회를 조직해 학교의 중대사를 결정하고 권력을 휘두른다. 그들 역시 기본적으로 청년이기에 정의와 불의를 구분할 줄 안다. 그러나 거대한 학교의 명예, 개인의 미래, 국가와 종교라는 무거운 이데올로기가 존중과 배려, 이해를 가로막는다. 공공연히 동성연애를 즐기면서도 동성애를 죄악으로 규정하며 마르크스의 계급론을 헛것으로 치부한다. 알튀세르가 주창한 이데올로기 국가 기구는 놀랍도록 진보했다는 인간 이성으로 하여금 파시즘과 국가주의, 배타주의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결국 토미와 가이가 설 지상은 없다. 가이는 자신에게 크나큰 모욕을 준 국가를 배신하기로 마음먹고 소련의 비밀 스파이가 된다. 그는 냉전 시기 서방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케임브리지 5인방’ 중 한 명인 가이 버지스를 모티프로 창조한 인물이다. 말년 ‘어나더 컨트리’인 소련으로 건너간 이 고급 스파이들은 잠시 성대한 환영을 받았으나, 곧 그 체제가 거대한 허상임을 깨달았음은 물론 계급의식이 몸에 밴 본인들의 기본적인 욕구조차 채워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그나마 토미 저드보다는 낫다. 그는 실천하는 혁명가를 꿈꾸며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으나 파시스트 군대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렇게 두 청년은 결국 추락한다. 자유를 꿈꿨으나, 단 한순간도 자유롭지 못한 채로 추락하고 만다. 지상의 지상이다.

<어나더 컨트리>의 한국 초연은 현재 진행형의 이념 대립을 겪고 있는 사회에 의미 있는 울림을 안긴다. 국가주의와 개발 독재를 옹호하는 세력이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우고, 분단의 현실은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낡은 사고방식의 생명을 연장시킨다. 성적 지상주의, 무한 경쟁의 교육 시스템은 건전한 비판을 함양하지 못하고 혐오의 논리를 유도한다.

1960년 푸르른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진 <광장>의 이명준이 등장한지도 어느덧 60년이 다 되어간다. 다른 세상을 꿈꾸었지만, 그것은 또 다른 지상일 뿐이었다는 극 말미의 회한이 더욱 씁쓸하다. 2019년의 한국에 <어나더 컨트리>는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곳에 닿을 수 있는가. 무거운 마음으로 학생들의 ‘내 조국이여, 나 그대에게 맹세하노라(I vow to thee my country)’ 합창을 듣는다.  


I Vow To Thee My Country - Festival Of Rememberance




매거진의 이전글 벨 에포크 시대의 아름다운 파리,  그 아래의 그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