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없이 큰 하늘'을 노래하는 공동체의 < Spritual 2 >
앨범 커버를 먼저 확인한다. 드높은 산봉우리 위 붉은 태양이 솟아 있다. 그리고 음악을 듣는다. 모듈러 신디사이저와 인디언 하모니움, 테레민으로 주조한 앰비언트의 소리가 푸른 숲과 기암괴석을 교차하여 쌓아 올리고, 1970년대 크라우트록의 기계적인 리듬 반복은 천체의 움직임으로부터 역동적인 에너지를 추출한다. 대자연의 질서 아래 분명한 생명력으로 힘차게 박동하는 앨범은 제목 그대로 영적인(Spiritual) 기운 가득한, 겸손하고 경이로운 손길의 신세계다.
몽골어로 ‘경계 없이 큰 하늘’을 의미하는 텐거는 한국 뮤지션 있다와 일본 뮤지션 마르키도, 그리고 아들 라아이의 가족 팀이다. 듀오 텐(10)으로 팀을 시작한 부부는 그들에게 찾아온 새 생명과 함께 이름을 고쳐 달았다. 깊고 거대한 자연의 질서를 소리로 옮기고자 하는 이들의 음악은 무의식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운 기운을 품고 있다. 세계 각지를 순회하며 체득한 순간과 깨달음의 기록이다.
브라이언 이노를 연상케 하는 앰비언트 사운드가 도드라졌던 초기와 비교해 < Spiritual 2 > 시리즈는 노이(Neu!)와 캔(Can)을 연상케 하는 크라우트록 성향이 들어온다. ‘High’와 ‘Ajari’를 지탱하는 장르 특유의 모토릭(motorik) 리듬과 반복적인 신스 리프, 독일 그룹 포폴 부흐(Popol Vuh)와 그에 목소리를 더한 윤이상의 딸 윤정(Djong Yun)의 원곡에 바치는 ‘Kyrie’에서 그 흔적을 발견한다.
이런 직선적인 설계와 더불어 보다 익숙하고 친절한 접근을 의도한 장치가 발견된다. ‘High’를 예로 들면 1980년대 아케이드 게임의 효과음을 연상케 하는 신스 리프가 우선 익숙하고, 투박한 반복이 진행되는 와중 가녀린 있다의 보컬로 저돌성을 포근히 감싼다. 이 오프닝 트랙과 연결되는 ‘Middle’과 ‘Low’는 미묘한 차이를 더한 변주다. 더 느린 호흡, 더 낮은 음정으로 앨범의 뼈대를 형성하며 익숙함과 낯섦의 반복 속 쾌감을 유도한다.
그 사이를 채우는 트랙들은 비트를 제거하고 짙은 소리만으로 감각을 자아내며 깊은 내면과 영적인 깨달음을 돕는다. 신디사이저 패드와 요동치는 하모니움의 소리, 있다의 목소리가 융합되고 갈라지며 언어가 닿지 못하는 황홀경을 선사하는 ‘See’가 그렇다. 윤정으로부터의 영감을 초고음의 신스 수미상관으로 형상화하는 ‘Kyrie’ 역시 형식미를 허물며 미를 창조한다.
텐거는 16분에 달하는 마지막 트랙 'Wasserwellen(파도)'를 통해 앞서 역동적인 흐름과 명상의 순간을 종합한다. 곡 전체를 지배하는 드론 사운드의 잔향 위, 인간의 심장 박동을 닮은 있다의 보컬과 분주히 움직이는 아르페지오 신스 리프가 미묘한 차이를 만들며 앨범의 세계를 밀어냈다 다시 당겨온다. 울창한 숲을 거닐듯, 드넓은 해변에서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듯, 반복의 운동성을 관찰하는 가족의 시선은 문명의 세계를 넘어 대자연 속 정신의 도원향을 응시한다.
BBC 라디오 6과 < 피치포크 >, < 스테레오검 >등 해외 매체가 주목하는 < Spiritual 2 >는 동양의 철학으로 먹을 갈고 서양의 기계 문명을 붓 삼아 그린 한 편의 진경산수화다. 아름다운 공동체가 빚은 아름다운 음악, 잊어가던 감각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