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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y 14. 2020

ABTB 'daydream'

ABTB는 그 현재 진행형의 혼란을 직시한다.


2016년의 가을에 우리는 투쟁했다. 폭력과 무지, 탄압과 왜곡을 일삼던 구체제에 맞서기 위해, 척박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끌어당기고 스스로를 융해하여 단단한 강철로 굳어진 후 격렬하게 부딪쳐야 했다. 그렇게 록 신의 다섯 베테랑은 슈퍼밴드 ABTB를 결성해 정제하지 않은 분노와 본능을 터트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국 거리로 뛰쳐나와 촛불을 들었다. 하나의 '시대정신'이 이끈 '국면전환'이었다.


그렇게 바꾼 세상에선 모든 것이 선명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밴드는 그 후 약 4년 동안의 시간을 백일몽이라 명명한다. 거대한 투쟁 후에도 우리는 거듭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해왔다. 나아갈 것인가 머무를 것인가,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 품을 것인가 뺄 것인가…. ABTB는 그 현재 진행형의 혼란을 직시한다. 무기력으로부터 온 절규와 분노로 뜨거웠던 전작의 언어는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을 자주 언급하며 상대적으로 가라앉아있다. 이를 감싸는 사운드 또한 10곡 48분의 콘셉트 앨범에 걸맞게 공격성을 유지하면서도 현실의 경험을 더하고 완급조절로 무장했다.


작품은 광화문 군중을 차 안에서 내려다본 꿈속의 'nightmare'로 출발해 신윤철과 함께 기억의 단편을 하나로 모아내는 'daydream'으로 완성된다. 전자는 1990년대 얼터너티브와 그런지로 잔잔히 출발하다 '깨어날 수가 없는 꿈'에 갇혀 방황하는 자아의 당혹을 펄 잼의 'Once'가 연상되는 기타 리프와 광포한 기타 솔로, 보컬 샤우팅의 십자포화로 퍼붓는다. 반대로 신윤철의 블루지한 기타 플레이로 과거의 기억을 주마등처럼 전개하는 'daydream'에선 '내가 믿던 모든 것들이 멀어지네 / 사라지네 지금까지 나에게만 있던 것들이'라는 가사로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인 자각과 진화의 과정을 목도한다.


[M/V] ABTB - daydream (feat. 신윤철)


이 지점에서 < daydream >이 마냥 어지러운 관찰기 혹은 체험기를 뛰어넘는다. 여전히 정답을 알 수 없고 거대한 카르텔이 존재하는 사회임에도 그를 목도하는 주인공은 몰락하지 않는다. 화자의 카오스는 질서가 허물어지고 새 문화가 일상이 되어가는 가운데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고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고뇌의 길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밴드는 본래의 거친 소리 아래 핑크 플로이드와 퀸스라이크(Queensrÿche) 등 프로그레시브를 가져왔고 다채로운 곡 전개와 과감한 실험으로 도전을 천명한다. 특히 14분에 달하는 상술한 두 곡이 압도적이다. 고수의 정교한 세공이다.


ABTB의 백일몽은 희미한 꿈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격동하고 그 속의 어떤 것은 답답하리만치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혼란 속에서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바람하고 꿈을 꾸며 전진한다. 고집스럽게 지켜온 음악과 단단한 내공의 < daydream >이 이런 굳건한 믿음을 증명한다. 2020년 지금도 우리는 투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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