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 인공지능, 아바타... 새로운 모델
인공지능과 아바타가 케이팝 시장에 새 화두로 떠올랐다. 다소 생소하게 여겨졌던 이들 미래 기술들은 예상을 앞질러 우리 앞에 도달했고, 그중 몇몇은 이미 현실과의 새로운 동거를 시작했다. 이미 연초 슈퍼엠(SuperM), 방탄소년단 등 가수들의 온라인 콘서트를 통해 증강 현실 등 다양한 기술을 선보인 바 있는 케이팝 신은 오늘 17일 베일을 벗는 SM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에스파(Aespa)를 시작으로 엔씨소프트의 팬 플랫폼 유니버스(Universe), 네이버 스노우의 아바타 서비스 제페토(Zepeto) 등 더 넓은 확장을 꿈꾸고 있다.
기술 발전을 통해 가능해진 이들 콘텐츠는 코로나 시기 침체된 대중문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다. 동시에 케이팝 팬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 전문가들의 경계도 들린다. 신기술 도입이 향후 문화계의 ‘뉴-노멀’로 자리 잡을지, 혹은 한 때의 유행으로 스쳐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 음악계 가장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팀은 에스파다. 어제 17일 SM이 6년 만에 새로 선보인 걸그룹 에스파는 카리나, 윈터, 지젤, 닝닝의 다국적 4인조 그룹이다. 흥미롭게도 각 멤버마다 제2의 자아인 아바타 4인이 추가되어 8인조로도 볼 수 있다. 아바타의 이름은 멤버 이름에 '아이(ae)'가 붙은 형태로, '아이-카리나', '아이-윈터' 등이다. 데뷔 전 티저 영상을 통해 현실 멤버들과 함께 마주 보고 함께 춤을 추며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수만 SM 총괄 프로듀서는 에스파에 대해 얼마 전 '제1회 세계문화산업포럼'에서 "가상세계 멤버들이 현실 세계 멤버들과 서로 다른 유기체로 인공지능(AI) 브레인을 가지고 있다"며 "각자의 세계를 오가는 등 전혀 새로운 개념의 스토리텔링을 선보일 예정"이라 소개했다. 17일 공개된 데뷔곡 '블랙 맘바(Black Mamba)'의 경우 에스파 멤버들과 아바타들의 연결 '싱크(Synk)'를 방해하는 존재 '블랙 맘바'를 노래와 영상으로 구현했다.
에스파의 모습을 보고 케이팝 팬들은 2018년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운영하는 회사 ‘라이엇 게임즈’가 선보인 가상 걸그룹 케이디에이(K/DA)를 떠올린다. 케이디에이는 '리그 오브 레전드’ 속 캐릭터 아칼리, 아리, 카이사, 이블린에게 케이팝 멤버와 같은 콘셉트를 부여하여 만들어진 그룹이다.
캐릭터로 이루어진 걸그룹이라는 점에서 에스파와 케이디에이는 공통점이 있다. 음반 활동 과정에서 라이브 무대를 증강현실(AR)로 구현한 캐릭터와 실제 멤버들이 함께 꾸민다는 사실도 닮았다. 그러나 에스파와 달리 케이디에이의 경우 현실의 멤버들이 목소리를 담당할 뿐 캐릭터와 공존하는 형태는 아니다. 또한 이수만 프로듀서가 언급한 ‘인공지능 브레인’ 역시 없다.
SM은 3년 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AI 전문 기업 오벤(ObEN)과 공동 투자해 홍콩에 ‘AI 스타스’라는 회사를 설립하며 인공지능 콘텐츠 사업을 준비해왔다. 캐릭터 자체의 자율성이 없는 케이디에이와 달리 에스파의 ‘아이’ 아바타들이 가상 세계에서 현실과 다른 독자 소통을 진행할 수 있을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AI와 아바타는 케이팝 신문물의 핵심이다. 엔씨소프트가 11월 12일부터 사전 예약을 진행 중인 케이팝 팬 플랫폼 유니버스(Universe)는 엔씨의 ‘스피치 AI 랩(Speech AI Lab)’ 기술을 통해 아티스트의 AI 보이스를 구현한다. 팬들로 하여금 멤버들과 대화할 수 있는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 ‘팬덤 활동을 모바일에서 즐길 수 있는 올인원 플랫폼’이라는 소개와 함께 걸그룹 아이즈원과 (여자)아이들, 보이그룹 몬스타엑스와 에이티즈, 강다니엘 등이 속속 합류 소식을 전했다.
아바타 산업의 첨병은 2018년 네이버의 자회사 스노우에서 내놓은 애플리케이션 ‘제페토’다. 출시 2년 만에 전 세계 1억 3천만 명 이상의 유저를 확보한 제페토는 지난달 빅히트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로부터 120억 원 규모 투자를 유치한 데 이어 지난 9일에는 JYP엔터테인먼트의 50억 원 투자까지 확보했다. Z세대들이 대거 활용하는 아바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홍보 효과를 높이고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하겠다는 포석이다.
시공간이 제약된 2020년 코로나 유행기에 케이팝 시장은 첨단 기술에 투자하며 콘텐츠 다변화에 힘쓰는 모습이다. 수익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투어가 취소되자 온라인 콘서트에 증강현실과 확장 현실이 동원되어 실제 공연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볼거리를 더했다. 또한 인공지능 및 아바타를 통해 리스크 없는 안정적인 콘텐츠를 모색하는 중이다.
이렇게 저변을 넓힌 다음 고유의 디지털 가상 세계를 구축해 해외 ‘마블 유니버스(Marvel Universe)’와 같은 가상의 세계관을 구축할 가능성도 높다. 특히 에스파를 앞세운 SM의 경우 2012년 ‘SM 가상 국가'를 선포한 바 있고 소속 팀 슈퍼엠(SuperM)이 ‘마블’과 함께 콜라보레이션한 전례가 있다. 'SMCU(SM Cultural Universe)’라는 이름 아래 인공지능 및 가상 캐릭터를 포함한 새로운 세계관을 펼치겠다는 야심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