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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y 27. 2017

크리스 코넬의 명복을 빌며.

사운드가든, 그런지, 시애틀, 1990년대, 이제는 끝. 

'1990년대도 이제 (진짜) 끝이야.'


소식을 듣고 맨 처음 든 생각이었다. 그간 숱한 아티스트들을 하늘로 먼저 떠나보내면서도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느낌은 2016년 프린스가 거의 유일했었다. 젊음을 휩쓸던 펑크 록과 하드코어, 하드 록이 시애틀 개러지 청년들에 의해 발화하던, 광포한 허무의 시대가 진짜로 막을 내리려 한다.


얼터너티브는 일찌감치 영웅들을 순교자의 영전에 올려왔다. 영원한 언더그라운드가 되겠노라 세상을 등진 커트 코베인으로부터 이미 이 시대의 비극은 극명히 드러나고 말았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1960년대의 히피들처럼 사랑과 평화의 네버랜드를 그리지 않았다. 세기말을 10년 앞둔 시대는 이데올로기가 저물고 냉전의 벽이 허물어지면서도 끝없는 갈등과 양극화로 신음하기만 했다. 'Whatever, Nevermind'의 절규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앨범 차트 1위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이념은 모순만을 낳았고 여기서부터 그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운드가든은 1997년 해체를 선언했다. 블랙 사바스의 헤비메탈을 DNA로 삼았던 이들의 어둠은 확고한 특색으로 무장하였으나 가장 세련되고 가장 성공했던 < Superunknown > 이후 드러머 맷 카메론(Matt Cameron)이 '사운드가든은 비즈니스에 파묻혔다.'는 명쾌한 사망 선고를 내렸다. 소위 시애틀 그런지 4인방이라 하는 너바나, 앨리스 인 체인스, 펄 잼과 달리 보컬을 잃지도, 역사를 이어가려 고단히 투쟁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항상 역사의 뒤편에 있다고 느껴졌던 밴드였지만 크리스 코넬만큼은 달랐다. 메인 싱어를 잃은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새 보컬이 되었고, 얼터너티브의 색을 이어 오디오슬레이브라는 새 이름을 달았으며 템플 오브 더 독과 솔로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평단은 냉정했고 반응도 절대 예전만 못했으나 그런지 종말의 시대에도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해나갔다. 펄 잼과 앨리스 인 체인스가 돌아오고, 2010년 사운드가든마저 돌아오면서 구시대의 열광이 아주 시들지는 않았다는 위안을 (짬만 낸다면) 받을 수 있었다. 


Soundgarden - Fell On Black Days


아이러니하게도 1990년대 얼터너티브는 그 시절과 유사한 청년 세대를 품은 2010년대에 다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복귀는 복귀일 뿐 그리 거대하지 않았고 이미 현세대의 갈등 해소는 힙합과 일렉트로 하우스에게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청소년기 혹은 청년기 한 번쯤은 해봤을 가장 어두운 분야의 고뇌를 담았던 그런지의 감성은 이른 성공담, 안정적인 배경음악 수준에서의 쾌락, 새로운 형태의 성별/인종 투쟁에 비하면 너무 촌스럽고 중2병 수준으로 보인다. 어쩌면 다시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시간을 되살리는 것에 대한 반감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중2 시절의 (진지했지만 유치했던) 반항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않으니까... 허무할 틈도 없는 요즘 시대다. 


크리스 코넬의 죽음은 한 시대의 두 번째 종언을 외치는 것만 같다. 그런지? 그냥 그런 시절이 있었어. 1990년대 초, 칙칙하고 비 내리는 추운 동네 시애틀에서 밴드 하던 친구들이 전 세계를 두들겨 팼던 시절이. 사이키델릭-펑크 록이 마이클 잭슨을 제치고 EP가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르고 자살, 고뇌, 철학, 자기혐오로 가사를 써도 싱글 차트에서 성공하던 시절이 있었어. 그중에 4옥타브쯤은 쉽게 왔다 갔다 하고, 전화번호부만 읽어도 노래가 된다는 훌륭한 보컬이 있었어. 다 어디 갔냐고? 이제는 정말 20년도 더 넘은 옛날 얘기지...


마지막 공연 : SOUNDGARDEN *BLACK HOLE SUN* live in DETROIT Fox Theatre 5/17/2017 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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