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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Oct 02. 2017

아이유가 과거를 소환하는 법

< 꽃갈피 2 >의 (어쨌든) 이유 있는 자신감. 


30여 년 만에 부활한 '어젯밤 이야기'에서 아이유는 진짜 어젯밤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다. '네 친구들이 너의 손을 잡고 춤출 때마다'를 노래하는 외로움은 여전하지만, 강렬한 의상과 짙은 화장이 망가져가는 아이유의 모습은 1988년 멋진 댄스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남자들의 무용담을 일상 속 쓸쓸한 2017년의 일상 속 누군가를 연상케 한다. 휘황찬란한 전자음을 오히려 빈티지한 기타 연주로 풀어낸 이 곡의 문법은 훨씬 과거를 향해있지만, 그를 활용하는 아이유의 시각은 완벽한 현재다. 


이제까지 아이유의 레트로는 현세대보다 기성의 문법에 가까웠다. 양희은, 최백호와의 녹음 과정을 영상에 담으며 '전설과의 조우'를 강조하고, 추억의 필름을 돌리며 회상에 젖는 모습의 '나의 옛날이야기'와 고즈넉한 한옥에서 그 시절의 감성을 재현해내던 '밤 편지'까지. 과거를 노래하는 아이유에게선 감사와 존경, 그에 보답하듯 구세대들로부터의 대견함이 녹여졌고 이는 단순한 십 대들의 아이돌을 넘어 기성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가수'라는 이미지를 굳건히 했다. 



그러나 < 꽃갈피 2 >에서 아이유는 보다 과감해진다. 전작이 한국 가요의 역사에 바치는 헌사의 의미였다면 본 앨범은 '내가 좋아하는 흘러간 노래'로도 얼마든 현재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 크다. 보다 젊어진 선곡 ('비밀의 화원',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과 현대적인 뮤직비디오가 아이유의 새로운 포부를 은유한다. 그의 과거는 개인적 취향에서 출발하지만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어쿠스틱 기타 위주의 잔잔한 구성을 취했던 전작에 비해 다채로운 편곡이 가장 먼저 들어온다. '쿵따리 샤바라'도 잔잔하게 바꿨던 전례를 생각해보면 '비밀의 화원'의 공간감 있는 바이올린 피치카토 연주, '어젯밤 이야기'의 리듬감 있전개와 '개여울'의 어덜트 컨템퍼러리까지 휘어잡는 구성은 이 앨범이 강명석의 말처럼 '자신의 입맛에 맞게 편집한 플레이리스트' 임을 증명한다. 성공에 대한 확신과 세대를 아우르는 자신의 역할을 확신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고난도의 구성이다. 실제로 아이유는 깊은 애수와 긴장감, 건조함을 오가면서 '가을 아침'의 푸근함을 청량함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커버는 '재발견'이라기보다는 앞선 칼럼의 논조처럼 < 다시 부르기 >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젊은 세대는 '비밀의 화원'나 '매일 그대와'를 아이유의 곡으로 각인할 것이고, 원곡에 대한 수요가 늘긴 하겠지만 복고 열풍을 광범위하게 불러일으킬 정도의 영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동세대 뮤지션 중 적극적으로 리메이크를 시도하는 가수는 아이유가 유일하고, 또 그 캐릭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노래를 골라 스타일대로 잘 녹여내고, 스타일리시하게 포장하면 현세대와 구 세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데뷔 초부터 어쿠스틱 기타를 잡고 노래하던 아이유가 아니었다면 어색했을 것이다. 



이제 유튜브에 아이유의 이름을 검색하면 '나의 옛날이야기'와 '어젯밤 이야기', '너의 의미'가 맨 위에 오른다. 올해 봄 스물다섯의 담백한 취향을 고백했던 < Palette >가 나왔음을 상기해보면, 이제 아이유라는 가수를 한 가지 스펙트럼으로 정의하기는 어려워졌음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된다. 정규 커리어의 아이유가 성장해나가는 소녀라면, < 꽃갈피 > 시리즈는 겪어보지 못한 레트로를 찾아 구제 샵과 올드 플레이리스트를 뒤지는 20대와 외로운 기성의 기호에 맞는 '아이유 개인의 취향'을 담아가고 있다. 영 스물다섯 같진 않고, 과거를 아는 이들에게 끌리는 작품은 아니지만, 아주 영리한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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