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지우자, 내게 남겨진 것은 더이상 없었다.
블로그의 모든 기록을 삭제하고 리셋 버튼을 누른 뒤,
나는 비로소 텅 빈 화면 앞에 마주 앉았다.
7년의 세월이 단 몇 번의 클릭으로 사라졌다.
매일 쳇바퀴를 돌리는 직장 생활은 여전했지만, 더 이상 카메라를 들지 않아도 더 이상 방문자수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뒤로 지독한 허무함이 밀려왔다.
이제 나는 블로거가 아니다.
자신있게 소개하던 블로거명은 없어졌다.
텅빈 공간..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노트북 앞에 나.
그렇게 맞이한 스물아홉, 나는 혼자였다.
퇴사를 마음에 품은 채 회사를 다니며 고민을 거듭했다. 입사 당시의 풋풋했던 신입 사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1호선 지하철 안에서 ... 반복되는 아침마다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이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을지,
퇴사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지..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나의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희망만 가득해 보였던 20대.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게 해줄 것만 같았던 그 시절의 끝자락에서 나는 막막했다.
회사에서도,
앞으로 흘러가게 될 내 인생에서도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대학원 자퇴와 취업 준비를 거치며 가장 힘들었던 시절,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마저 정리했다.
곁에 있어주는 사람과 함께 극복하지 못했고, 후회속에 혼자가 되었다. 나는 그 때, 우울해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표정이 안좋아보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직장 생활에 적응하느라 누군가를 새로 만날 여유조차 사라진 나는, 그야말로 고립되어 있었다. 가끔 Bar에도 찾아가보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현실을 잊어보려고도 했다. 나이가 먹는다는 건 무서운 일이었다.
그리고 스물아홉이라는 사실이
당장 내 앞에 서른이라는 나이가 찾아온다는 것이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절이었던 20대를 지나오며 맺었던 인연들은 어느새 모두 사라졌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친구들은, 다들 삶에 바빠서 하나씩 멀어졌다. 당연하게 나 역시도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나는 싱글이란 핑계로 그들과의 거리를 하나둘 두기 시작했다.
.
.
그래서였을까...
그 빈자리를 채웠던 건
블로그로 만난 수많은 사람이었다.
매 주말 파티에서 잔을 부딪치고, 마주 앉아 웃었다.
페스티벌의 소음 속에 함께 섞여 있던 인연들.
블로거로 협찬을 받다 보니 다양함 모임을 다니게 되었고, 새로운 인연들과 어울리며 가벼운 만남을 지속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들이 누구였는지, 어디서 만났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더라?'
'그날 우리는 같이 뭘 했지?'
'왜 어울렸던 걸까...?'
함께 지냈었는지도...
블로그에 남겨진 글이 아니었다면
기억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의 20대는 블로그에 박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기억들을 삭제해버렸다.
환하게 웃고 있는 나와 친구들의 사진도 지웠다.
왜 친해졌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우리의 관계는 얇고 가벼웠다.
지워져도 아쉽지 않을 만큼, 아니... 그리고 지우면 안되는 기억들마저 회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모든걸 삭제해버렸다.
돌이켜보면
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것이
어려웠던 사람이었나 보다.
사람들한테는 항상 좋은 사람처럼, 밝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가면을 썼다.
조금이라도 어울리기 불편한 사람과는 거리를 두었고, 그저 가볍게 즐기기 좋은 사람들과만 편하게 만났다.
그때는 그게 좋은 줄 알았는데...
일회성 만남이었다.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는 게 아니라.. 소모성 만남이었다는 것을 20대 끝자락이 되어야 알았다.
그때까지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사람의 소중함을.
진짜 인간관계가 뭔지를...
.
.
블로그에는 남겨졌던 수천개의 글들....
화려한 사진들, 맛집 리뷰들, 행복해 보이는 순간들...
모든 추억과 순간들이 빈 공백으로 사라졌다.
더이상 없다
내 과거는...
그리고 내 주변에 남은 사람도 없다.
나는 혼자였다.
내 곁에는 그 기록만큼의 온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타인과 깊게 연결되는 법을 몰랐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툴렀으며, 결국 혼자였다.
수만 명의 이웃, 수천 명의 방문자, 매일 쏟아지는 댓글들과 사람들의 관심이 있는 블로그라는 공간이 사라져버린 순간, 나의 20대를 내 인생에서 뜯어내버린것만 같았다.
어느순간 자랑거리가 아니라 퇴색되어버린 과거가 되었기에.. 나를 스쳐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이었을 뿐인 그 기억들을 나는 후회속에 지워버렸다.
그 가상의 세계를 버리고 현실속의 나를 다시 일으켜보려고 한다. 모든 걸 지워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는 서른을 맞이할 것이다.
화려한 사진들이 증명해주지 못하는
현실 속의 '진짜 나'를 찾기 위해
이제야 로그아웃을 하려 한다.
다시 뒤돌아보는 것은 쉽다.
그래서 영원히 없애버렸다.
뒤돌아볼 미련마저도 깨끗이 끊어냈다.
이것은
화면 속의 내가 아닌,
진짜 나로 숨 쉬기 위한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