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금 지급이 종료되고 아버지는 텃밭이 달린 단층짜리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통장에 돈을 많이 넣어둔 모양인데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으셨다.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던 땅은 우리 가족이 살고도 남을 돈으로 탈바꿈했다. 동네 사람들 모두 부자가 되었고 매일 농사지으러 나가던 분들은 마을 회관에 모여서 고스톱을 치고 소일거리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앞집 초등학교 동창 경식이네를 비롯해 많은 친구들이 서울로 이사 왔다.
학원을 다니는 건지 친구들을 만나는 건지, 처음 경험하는 서울 생활을 경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업 끝나면 가방 멘 채 친구들을 만나 술 마시고 미팅을 다녔다. 부모님 돈이 마치 우리 돈이 된 것처럼 무서움이 없었다. 경식이는 대학 축하 선물로 받은 차를 가지고 왔다. 덕분에 멀리 여행도 다니고 여자애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많아졌다.
어느 날부터 경식이는 시험 때문에 바쁘다고 했고, 삐삐를 쳐도 연락이 잘 오지 않았다. 대학생과 재수생이라는 보이지 않는 차가운 장애물을 느꼈다. 돈이라면 우리 집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대학생이라는 신분 차이는 넘어서기 어려웠다. 재수생에게 서울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공부하기 싫어지면 고향에 내려가곤 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서울 도심을 달렸다. 밭과 논이 나오면 집이 가까워졌다는 것이 피부로 다가왔다. 불과 두 달 사이인데도 달라진 고향을 느낄 수 있었다.
새벽부터 농사일 가시던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 것이 불편했다. 뭔지 모를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아버지, 일 안 하셔도 되겠어요?"
"막내야, 아버지는 평생 일만 했다. 이제는 좀 놀아도 괜찮지 않겠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하루 종일 집에 계시니 불편한 건 정작 나였다. 공부하는척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함께 있으면 눈에 보이는 법이다. 집에 내려가도 밖으로 돌았다. 이제는 제법 큰 빌딩이 들어선 시내에 친구들을 만나면 서울인지, 시골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물론 몇 걸음만 걸으면 논 밭에 개구리가 울었지만 말이다. 새로 생긴 호프집도 드나들고, 당구도 배웠다.
퇴근하고 들어오는 형의 발걸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술 냄새를 여기저기 흩날리더니 아버지께 할 말이 있다며 안방 문을 두드렸다. 아버지는 피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형과 마주 앉았다.
"아버지, 저도 이제 사업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좀 도와주세요."
"아버지 돈 없다고 했잖아. 여기 집 사느라 남은 것도 없어."
형은 주전자 채 들어 물을 털어 넣었다.
"아버지, 이 집 얼마나 한다고 다 털어 넣어요. 돈 많이 남았잖아요. 저 하고 싶은 사업하게 좀 도와주세요. 언제까지 구질구질한 공장에서 일할 수는 없잖아요. 다른 집 자식들도 부모님이 많이 도와주신다는데요. 아버지 부탁드립니다."
"네가 뭔 사업을 해봤다고 사업이야?"
"동창 성수는 아버지가 도와줘서 가전제품 매장 차린데요. 그 아저씨네 보다 우리 땅이 훨씬 많았잖아요. 아버지는 더 많이 받았을 거 아니에요."
이런 대화가 일주일이면 한두 번씩 이어졌다. 가끔은 나도 끼어들었다.
"아버지, 형 사업 도와주세요."
"막내야, 네가 뭘 안다고 나서냐? 너는 공부나 열심히 하면 된다."
누나와 매형도 아버지를 자주 찾았다. 형과 누나의 집요한 요구에 아버지는 어느 날 자식들을 모았다.
"너희들이 아주 아버지 재산을 나눠가지려고 혈안이 되어있구나. 그렇게 아버지 재산이 탐나냐? 그럼 일찍 나누어 줄 테니 더 이상 돈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해라."
"아버지 고맙습니다. 저희가 정말 잘할게요. 정말요."
누나와 형은 얼마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그 이후로 집에 살다시피 하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외식도 시켜드리며 살갑게 잘 해 드렸다.
얼마 후 형은 동네에 가구 매장을 차렸다.
"막내야, 신도시가 들어오면 사람들이 가구를 대량으로 구매할 거야. 형아만 믿어. 우리는 떼부자가 될 거니까. 너도 대학 갈 필요 없어. 형을 도와서 매장에서 일하면 돼. 나중에 너도 하나 차려줄게."
형 말대로 가구 매장에는 매일 사람들이 줄을 섰다. 당시 유행하는 침대와 소파는 가져오는 즉시 배달차로 나가버렸다. 형의 선견지명에 온 가족이 놀랐다. 서울에서 일하더니 제법 세상 보는 눈을 익혔다며 아버지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결국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형 말대로 가족들이 하는 사업을 이어 받으면 될 텐데 굳이 공부할 이유도 없었다. 일찍 술을 배우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느라 공부는 뒷전인데 대학은 언감생심이다. 친구들과 시내에 당구 치러 갔다가 형을 만났다.
"형 일 안 해?"
"막내 왔구나. 일은 직원들이 하는 거지. 형은 사장이잖아. 형은 좀 놀아도 매장을 잘 돌아가잖아."
이제 막 당구를 배우는 내게 형의 실력은 신의 경지에 가까웠다.
"형은 언제 당구를 이렇게 배웠어?"
"동생아. 형이 서울에 있을 때는 당구 못 치면 사람 취급도 못 받았어. 이 정도는 기본이라고."
놀면서도 돈을 번다는 게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형이 보여주는 삶은 내게도 하나의 희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