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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금싸라기 04화

복숭아밭 - 미움만 남았다

by 행동하는독서

아버지가 쓰려지셨다. 가구점 차압 통지가 날아오는 날이었다. 들리는 말로는 가구점 실장이 수금된 돈을 가지고 도망 갔다고 했다. 가구 공장에 대금을 치러야 하는데 돈이 부족했다. 사업을 크게 벌인 만큼 갚아야 할 돈도 같이 불어난 모양이다. 성공할 거라 큰소리치던 형은 아버지 입원실에서 며칠 씻지도 못했는지 땀으로 냄새나는 옷을 입은 채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버지는 끝내 눈을 뜨지 못하셨다. 아버지 장례식을 마친 후 형은 조용히 지냈다.


나는 열불 나서 형에게 소리쳤다.

“그렇게 사람을 믿고 맡길 때부터 불안했어.”

“야 이 새끼야. 네가 사업에 대해 뭘 안다고 나불거려?”

"형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넌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다고 큰 소리야! 재수하고도 대학에 떨어진 게. 입 닥치고 있어."

향과 나는 만나기만 하면 돈 문제로, 아버지 문제로 싸웠다. 하지만 나로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소리만 질렀다. 남들 다 가는 대학도 제대로 못 간 내가 형에게 소리칠 형편인가 싶기도 하고...


아버지 사십구재를 지나고 형과 어머니와 식사를 했다.

"어머니 지난번에는 제가 너무 사업을 몰랐습니다. 이제 제대로 해볼게요."

"뭘 제대로 해?"

"누나랑 매형이 애들 유학 때문에 미국으로 간다잖아요. 그거 이어받아서 해보려고요."


누나와 매형은 상속받은 돈으로 동사무소를 그만두고 슈퍼를 차렸다. 배달 직원까지 쓰며 열심히 한 덕분에 나름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미국으로 아이들 공부시키러 간다고 했다. 거기서 슈퍼를 차려볼 생각이라며 하던 슈퍼를 인수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뒤편으로 아파트 단지를 3개나 끼고 있어서 열심히 하면 먹고사는데 문제는 없어 보였다. 형이 한다고만 하면 누나가 다른 사람 주지는 않을 텐데, 돈이 문제였다.


"이 녀석아, 돈이 어디 있어서 그 비싼 슈퍼를 인수해?"

"막내 앞으로 상속한 돈이 있잖아요. 막내랑 힘을 합쳐서 같이 해볼게요."

아버지가 세 자녀 앞으로 똑같이 분배해 준 돈을 요구했다.

"그건 안된다. 그것마저 날리면 막내나 나나 다 길바닥에 나앉는 거야."

형은 물러서지 않았다.

"엄마, 그렇게 땅으로 가지고 있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제 토지 보상도 끝나서 언제 땅값이 오를지도 몰라요. 그렇게 가지고 있어봐야 현금이 안 생겨요. 사업을 해야 먹고살지요. 안 그러냐 막내야?"

나에게 물어왔지만, 내가 아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처음에는 미워서 반대했지만, 듣고 보니 우리 가족 먹고사는 일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엄마, 막내 그냥 이대로 공장 보낼 거예요?"

내 의도와는 다르게 볼모가 된 기분이 들었다. 형 말대로 나도 공장에 가야 할 것이 뻔한데,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형과 함께 슈퍼 사장으로 남는 게 서울 친구들을 만나도 번듯해 보였다. 친구들은 서울에서 대학 나오면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할 텐데, 지고 싶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설득하는데 동참했다.



누나와 매형은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슈퍼는 형과 내가 인수해서 잘 이끌어 나갔다. 형은 정신을 차렸는지 술 마시는 것도 줄이고, 배달 일도 먼저 나갔다. 직원들 월급 주고도 형과 내가 가져오는 돈은 직장 생활에 세배가 넘었다. 어찌 되었건 우리 가족이 먹고사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대학 못 간 친구들은 주변 공장에서 일했고, 가끔 대학 간 친구들이 고향에 내려오면 나를 부러워하는 표정에 우쭐해졌다. 싫지 않았다.


거래처 사장에게 갔다가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대형 마트가 이 작은 동네에 들어온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대형마트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나 있을 법한데, 우리 동네는 아파트만 덜렁 있었지 인구가 많지도 않은데 왜 여기에 들어올까? 현실이 되는데도 몇 달 걸리지 않았다. 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사거리에 대형마트가 들어왔다. 운도 지지리 없는 형. 제기랄 덕분에 나도 함께 망했다.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으니 슈퍼를 인수할 사람도 없었다. 매출이 반에 반 토막이 날 때쯤 그냥 가게를 접었다. 대금을 치르고 물건을 싸게 넘기고 나니 남은 돈이 거의 없었다.


형은 누나에게 국제 전화를 걸었다.

"누나, 알고 있었지? 대형 마트 들어오는 거! 그걸 알고 가족에게 팔고 가냐?"

누나는 한사코 아니라고 했지만, 기분 나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누나도 가족이라고 지긋지긋하다며 인연을 끊자고 했다. 나도 형과 인연을 끊기로 했다. 형의 잘난 허영 때문에 동네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던 우리 가족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다. 형도 미웠고, 누나도 미웠다. 돈을 마구잡이로 상속해준 아버지도 미웠다. 다들 세상을 너무 몰랐다. 시골 동네에서만 살아서 아는게 너무 없어서 더 미웠다.


형은 그대로 서울로 돌아갔고,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작은 집으로 옮겼다. 서울 가서 살고 싶었던 나의 꿈도 다 날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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