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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Nov 08. 2023

내 고향 서울인데, 자꾸 마음에서 멀어진다.  

서울 시내에 간다는 건 여간 부담이 아니다. 지난주에도 결혼식 때문에 도심을 걸었는데 또 가야 했다. 차도 막힐뿐더러, 놀러 나온 사람까지 더하면 도심은 숨이 막히는 이미지가 연상된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는데, 이제는 중요한 일이 생겨야 가는 도시가 되었다. 서울을 그리워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어이해야 하나? 일상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이후로 서울은 '힘들다'라는 형용사와 동격이 되었다. 친구가 가끔 묻는다.

"이제 다시 올라와야지?"

"그래야 하나?"

무거운 짐 때문에 지하철은 무리가 있어 자동차에 키를 꽂았다.

며칠 전에 지하철로 움직이느라 숨 막혔던 기억이 났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아주머니가 자리가 나면 달려들 기세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일어나야 하나? 힐끗 올려다봤다. 대충 봐도 나와 비슷할 거 같은데 나도 이렇게 전투적인 자세가 나올만한 나이가 된 것인가? 나는 한 시간을 넘게 갈 건데, 하필 내 앞에 서 있단 말인가? 아주머니에게 미안해졌다. 안쓰러운 마음에 고민할 때 옆에 자리가 났다. 호리한 아가씨가 내리고 아주머니가 앉자 어깨에 압박이 찾아왔다. 미안한 마음이 금세 불편한 마음이 되어 버렸다.

옆에서 게임에 몰두하는 청년이 계속 기침을 해댔다. 저렇게 가래를 삼킬 정도가 되면 마스크라도 끼고 나와야 하지 않았을까? 갑자기 내 몸에도 열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세 번에 한번은 센스 있게 자신의 티를 벌려 가슴에 기침하긴 하던데... 이렇게 아프면 집에서 쉬는 게 낫지 않을까? 대낮에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걸 보면 회사원은 아닐 텐데, 게임까지 몰입하며 돌아다니는 게 참 어렵다.

11월의 날씨는 무슨 기적인지, 25도를 넘나들었다. 에어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조끼까지 입은 나는 때아닌 더위와 씨름했다. 좁은 지하철에서 재킷을 벗겠다고 뒤척이면 눈치 꽤나 보여야겠기에 참고 참았다. 여행처럼 시작된 지하철은 생각지도 않은 번거로움으로 나를 지치게 했다. 읽겠다고 가져 나온 책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고 신경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오늘도 여전히 서울은 번잡했다. 양재동을 거쳐 차가 막혔고 한남대교를 지나 거북이 운전으로 남산을 넘었다. 한 시간 반을 운전해서 겨우 동대문에 도착했다. 창신동 오래된 골목은 구불구불했다. 집들이 그냥 대강 들어서던 그대로 골목을 남기고 다시 집들이 지어졌겠지? 저 골목의 끝은 막다르지 않을까? 혹시 차는 지나갈 수 있을까? 일단 내비가 알려주는 대로 겨우 비집고 들어갔다. 한 번에 꺾을 수 없는 골목을 들어갔다. 겨우 차 한대 지나갈만한 공간에 차를 세웠다. 이런 공간을 만난 게 기적 같았다. 볼일을 마치고 돌아 나와야 하는데 진행했던 대로 올라가면 디귿자 골목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작은 교회 주차장을 이용해 차를 반대로 돌렸다.

좁은 골목에 여성 둘이 길을 막고 서 있었다. 비켜주기를 기다렸다. 여기서 경적을 울렸다가는 주변 상인들에게 큰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여성이 느리게 길을 비켜주고 나는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가려는데...


쿵!


뭐지?


사이드미러를 보니 두 여성이 서둘러 골목을 올라가고 있었다. 누군가 내 차를 가격하고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를 세우고 여성을 불렀다.

"잠시만요. 확인 좀 하고 가시죠."

마흔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 내게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육두문자가 쏟아졌다. 그것도 연변 사투리인지? 북한 사투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욕이었다. 나이 든 여성은 말리며 우리에게 그냥 가라 손짓했다. 순간 멘붕이 찾아왔다.

'내가 그녀를 친 걸까? 그래서 화가 났나? 아니야, 그러면 오히려 나를 불러 세웠겠지? 그럼 뭐지? 왜 이리 욕을 하고 화를 내는 거지?'

달려드는 모습이 주먹이라도 휘두를 기세였다. 목소리는 얼마나 큰지 주변 상인들이 나왔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췄다. 주변 집에서 아주머니들이 나와 싸움 구경을 했다. 생각지도 않게 싸움 중심에 내가 있었다.

"지나가는 차를 쳤으면 사과를 해야지!"

골목에 서 계시던 아저씨가 내 편을 들자, 욕설은 아저씨 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수군댔고, 절대 가만두지 말라며 나를 응원했다. ​


경찰이 도착해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제야 제대로 내 차를 살폈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여자는 경찰에게도 소리쳤고, 경찰 신분증을 보자고 난리였다. 경찰이 4명으로 늘어나자 한대 쳤을 뿐이라며 자백했다. 왜 쳤냐는 경찰 물음에 한번 내리친 건 아무런 잘못이 아니라고 답변했다.

"두 번 처야 진짜 친 거지. 한 번밖에 안 했는데 왜 지랄들이야!"

그녀의 손에는 딱딱한 인형 같은 물건이 들려있었다. 그걸로 내 차를 내리쳤다고 한다. 그 여자의 입에서 내 차는 똥차가 되고 나는 약쟁이가 되었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가, 다음에는 웃음만 났다. 약쟁이란 욕은 출처가 어디일까? 그 와중에도 재미있는 욕이란 생각을 했다. ​

경찰이 나를 조심스럽게 이끌었다.

"신분증 조회를 해보니까, 정상이 아니네요. 지난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경찰은 손괴죄 성립은 어렵고, 모욕죄로 고소하라고 일러주었다. 정상이 아닌 사람을 고소해서 또 뭐에 쓰겠는가? 고소하려면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꾸며야 했다. 귀찮아서라도 그냥 가겠다고 했더니 경찰이 나를 잡았다.

"선생님, 저런 사람을 그냥 둬서는 안됩니다. 한 달 내에 오시면 되니까, 꼭 오셔서 본때를 보여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고성 지른 것에 대해 과태료 처분을 내릴 겁니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돌아왔다.

고소를 하려면 서울을 언젠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갈 일이 있다면 생각해 볼 문제지만, 시간을 따로 내야하고, 수고를 해야 한다. 내가 봐서 합의는 물 건너 갈 것 같고, 그녀는 처벌을 받을 것 같다. 그녀가 처벌을 받는다고 내게 딱히 좋을 일도 없다. 모든 일이 번거롭다. 서울은 지하철을 타도 힘들고, 차를 가지고 가도 힘들다. 두 사건이 논리적 비약이라 해도 내게 힘든 건 사실이다. 어쩌면 내 마음의 여유가 너무 커져버려 작은 번잡함에 마음을 빼앗기는건지도 모르겠다.

김포가 서울에 편입된다는 기사를 봤다. 우리나라 인구의 5분의 1이 서울에 산다. 3분의 1이 수도권에 산다. 서울은 계속 커지고 복잡해진다. 어렸을 때 한 줄, 두 줄이었던 지하철 노선도가 그물망처럼 퍼졌다. 서울의 이미지는 여전히 어렵다. 친구와 가족이 사는 서울인데 마음은 자꾸만 멀어진다. 빨리 여유 있는 우리 동네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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