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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Dec 11. 2023

08. 노점에서 배우다

행복의 조건

08. 노점에서 배우다.

배정환




태성은 노점상을 우습게 봤다. 점포도 없이 길거리에서 음식 팔아서 얼마나 남겠는가? 때로는 불쌍한 마음에 붕어빵을 사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사업자의 관점에서 다시 봐야 했다. 그들의 생태계가 궁금해졌다. 며칠 동안 떡볶이 노점에서 음식을 먹었다. 자주 보면 뭐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었다.

"카페 사장님 자주 오시네요."

"네. 요즘 입맛도 없고 해서요. 이럴 때는 분식이 최고죠."

태성은 가져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밀었다.

"이제 날씨도 더워지는데 시원하게 한잔하세요."

"어이쿠! 감사합니다. 오늘 떡볶이는 서비스로 드려야겠는데요."

"아닙니다."

손사래를 쳐보지만, 그렇게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는 것은 마음이 열린다는 뜻이다.

   

태성은 이쑤시개로 떡을 하나 집어 들고 물었다.

"사장님은 전에 뭐 하셨어요?"

"저요? 저 같은 사람이 궁금할게 뭐 있어요? 카페 사장님은 뭐 하셨어요?"

뭔가 궁금한 걸 캐내려고 했는데 도리어 당한 기분이 들었다.

"저요... 저는 그냥 회사 생활했어요. 부장까지 좀 빨리 올라갔는데요. 위험하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덜컥 이렇게 준비 없이 카페를 차렸네요. 배우면서 경영하고 있습니다. 요즘 사업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구나 싶어요. 회사 생활할 때는 그래도 회사가 지켜줬는데요."

떡볶이 사장은 빨갛게 익어가는 음식을 저으며 듣기만 했다. 태성은 자기 이야기를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직장 다닐 때는 회사 간판이 제 스펙이었죠. 은행에서 어렵지 않게 대출받았는데요. 그게 저 때문인 줄 알았어요. 제가 다 잘해서 그런 거라고... 그런데 회사를 나오고 보니 정말 개털 된 기분입니다. 신용과 담보가 아니면 은행이 저를 무시하더라구요."

"우리 같은 사람은 어쩝니까? 변변한 점포하나 없는데요."

"사장님은 현금 만진다고 이 동네 소문이 자자하시던데요."

"쓸데없는 소리들을 하는구만요."

떡볶이 사장은 한발 빼는 듯한 말을 하고 있지만, 인정하는 소리라고 들었는지 살짝 웃음을 보였다. 떡볶이 사장이 갑자기 화재를 돌렸다.

"그나저나. 카페는 잘 되나요?"

"아직은 그럭저럭 되고 있어요. 첨 하는 거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장님은 점포 차릴 생각은 없으세요?"

노점상 사장님은 그전처럼 그냥 웃고 만다. 더 이상 영업 비밀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투이다. 이야기가 상투적으로 도는 느낌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손님도 들어왔으니 이야기는 여기까지. 돌아 나오는데 떡볶이 사장인 불렀다.

"저녁에 끝나고 소주 한잔하실래요?"

"좋습니다."


태성은 도성에게 가페를 저녁까지 맡기고 떡볶이 권사장을 만났다. 술이 한잔 들어가자 권사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무슨 일 했느냐고 물었죠? 저도 원래는 대기업에 다녔어요. 그런데 어린 아들이 교통사고가 불구가 됐죠. 아내랑 교대로 아들을 돌봐야 하는데 회사 생활로는 시간을 낼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퇴직했어요."

"아... 그러셨구나. 어쩌다 그런 일이..."

"아들이 이제 다 커서 스스로 목발 짚고, 전동 휠체어를 탈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준비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태성도 행복할 것만 같던 자신의 처지가 타인의 동정심을 받던 때가 떠올랐다. 세상일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제가 직장 생활은 참 잘했어요. 이래 봬도 제가 서울 명문대 출신입니다. 노점상 하는 사람이 그런데 나와봐야 쓸모도 없지만요. 친구들 만나면 뭐 하냐는 질문이 가장 곤혹이에요. 그래서 모임에도 안 나갑니다. 자기들 대기업 다닌다고 뻐기지만 나오면 모두 나 같은 신세인데 그걸 몰라요."

태성은 노점 사장님의 빈 잔을 채웠다.

"모임이라고 나가봐야 맨 골프이야기, 해외여행이야기, 자기 아들자랑, 자동차 자랑... 지겨워요. 다들 임원 되었다고 난리지만, 그게 얼마나 간다고 그러는지 몰라요."

"그런데 많고 많은 일 중에 노점을 선택한 이유가 있으세요?"

"아이 병원비로 나가고 나니가 뭐 하나 차릴 여유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여기 노점상 회장님을 졸랐어요."

"사장님이 노점협회 회장님 아니세요?"

"아니요. 중심상가에 있던 네 컷 사진 사장님이 회장님입니다. 저는 부회장 정도... 허허"

권사장이 인심 좋게 웃었다. 부회장이란 직책이 정말 있는 걸까?

"회장님을 따라다니며 졸랐더니 자리를 지정해 주시더라고요. 거기서 떡볶이를 해보라고. 그래서 열심히 배웠어요. 아내가 재료 준비해 주면 나와서 밤 낮 없이 일했죠."

"자리도 지정해 주나요? 아무 곳에서나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여기도 나름 룰이 있어요. 동종 장사 금지, 일정 거리 유지."

그래, 맞다. 아무나 점포를 차리면 인도를 가득 매울 것이고, 너도 나도 다 죽어나가겠지. 자영업에도 보이지 않는 룰이 있구나. 태성은 오늘도 소주 한잔으로 많은 걸 배워갔다.

"그런데 점포 가지신 분들이 싫어하실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상생해야죠. 서로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업종으로... 그래야 신고도 안 들어가고. 우리 협회가 시에 돈을 많이 냅니다.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내는 돈이 꽤 많아요. 그러니 시에서도 눈감아 주는 거구요."

"아! 그렇군요."

세상에 그냥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작은 점포 하나 차릴 수 있는 돈이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작은 카페지만 차리고 보니 사장이 되었고, 주변에서 사장이라 불러주니 좋았다. 하지만 노점 사장님보다 더 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가게세, 카드 수수료 빼면 그게 그거 아닌가 싶다. 태성은 노점 사장님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버세요?"

"에이... 그런 걸 물어요?"

"그래도 대강 알려주실 수 없으세요?"

"왜. 노점 차리시게?"

"아니요... 사업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서요."

"음. 액수를 말하기는 그렇구요. 대기업 다닐 때 보다 많이 벌어요. 그런데 카페 사장님은 차리지 마세요. 더울 때 덥고, 추울 때 추워요. 그게 제일 힘들어."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성은 집에 돌아와 권사장과 나눈 이야기를 노트에 정리해 보았다. 직장 생활할 때의 권위를 빨리 빼고 자영업의 물을 들여야 했다. 이제 누구도 자신을 보호해 줄 회사는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실력과 전략으로 홀로 서기 해야 했다.


노점의 생리를 들어보니 장점이 많았다. 달리 보면 점포 가진 사람이 손해가 아닌가? 어떻게 하면 상생할 수 있을까? 길거리에 보이는 붕어빵, 다코야키, 떡갈비, 꼬치구이 사장들이 달리 보였다. 그들의 가게에 들르며 노점 사장들과도 친분을 쌓아갔다. 다코야키 젊은 사장은 노점으로 번돈을 가지고 내년에 유학을 떠난다고 했다. 오히려 태성에게 다코야키를 인수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인수 비용이 얼마인데요?"

"권리금으로 2000만 원 받으려고요."
"2000만 원이요? 여기 자릿세가 그렇게 비싸요?"

"저 들어올 때도 500만 원 냈는데요."

태성은 주인 없는 거리를 돈 주고 산다는 게 이해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자리에서 돈 벌어 유학자금을 마련했다는 젊은 사장을 보고 있자니 후배라도 부러웠다. 저런 경험을 쌓은 젊은 친구는 어디가도 뭘 해도 성공하겠지.


며칠째 떡볶이 시장님이 안 보였다. 아내분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자가게 최사장을 찾았다.

“뭐 아는 거 없어요?”

“아~ 사거리에 상어 떡볶이 매장을 오픈하나 봐요. 그 사장이 시청에 노점단속을 강력하게 항의했다고 하더라고…”

“그게 가능해요?”

“노점은 노점이니까… 상어 떡볶이 사장이 시청에 아는 사람이 좀 있나 보던데요.”     

예전 같았으면 약자를 위한 동정심이 앞섰을 텐데, 얼마나 버는가 들어서인지 마음이 차가웠다. 은근히 노점에 배가 아팠나? 어느새 친구도 아닌, 경쟁자도 아닌 그런 관계에 익숙해지는 자신에게 놀랐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주변 상인을 죽이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날 것이다. 특히 동종업계는 특히 치열해질 것으로 보였다.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던 떡볶이도 이제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무대가 되어갔다. 딸에게 상어 떡볶이에 관해 물었더니 웬만큼 주문하면 2만 원도 넘는다고 했다. 이제 분식이 더 이상 서민음식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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