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06. 사장의 아르바이트
배정환
아르바이트 제안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분명 태성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알아본 거 같다. 아르바이트가 사장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기도 쉽지 않을 테고, 대 놓고 물어봐도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겠지. 그런 말 듣고 불편하지 않을 사장은 없을 테니, 어쩌면 자기가 이런저런 핑계로 도성을 자를지도 몰랐다. 도성과 이어진 관계가 쉽게 어그러지는 것도 싫었다. 태성은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도성 씨, 지난번에 이야기한 거 있지?"
"네?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아르바이트 말이야. 내가 배울만한 자리가 혹시 있나?"
"아~, 해보실 마음이 생기셨어요?"
"어. 사실 한 달간 카페 오픈하고 마음이 많이 혼란스러웠어. 좋은 자리가 있다면 실무를 배워보고 싶어."
일주일 후 도성이 소개해준 카페로 향했다. 시내 중심상가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다. 그래도 근처에 사무실이 많아 그런대로 목은 좋아 보였다. 아직 가게 오픈전이라 불만 켜져 있었다. 카페에 들어서니 갈색 나무 톤의 인테리어가 다가왔다. 갈색 목재가 서까래처럼 여기저기 들어가 있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주방까지 카페 벽은 좁은 갈색 나무 테이블이 붙어 있었다. 홀 내부 테이블도 약간 높이가 높았고, 의자도 바에서나 쓸만한 높은 의자였다. 아무래도 서서 마시는 콘셉트 같았다. 1인이 테이블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의자가 없는 테이블도 있기 때문에 로테이션이 빠르겠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뜻밖의 테이블 세팅이 궁금증을 유발했다. 여기서는 앉아서 즐기지 않는단 말인가? 주방에도 바 테이블이 붙어 있어서 사실 모든 벽을 돌아가며 테이블이 이어져 있는 것과 같았다. 홀이 넓은 건 아니지만 100명이 한 번에 커피를 마셔도 될법해 보였다.
젊은 사장이 금방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고 간단하게 안내를 받았다. 사장은 30대 중반정도 되어 보였는데, 청바지 차림이지만, 긴소매의 셔츠에 챙 모자를 쓴 모습이 사뭇 세련되어 보였다. 카페 분위기와 잘 맞았다.
"이미 사장님이신데 여기서 일하셔도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습니다. 일 배우러 온 아르바이트라 생각해 주세요."
"도성이 그 친구가 부탁한 거라 수락하긴 했는데, 저도 나름 영업비밀이라서 고민했습니다. 제가 가르쳐드릴 건 없을 거 같고요. 사장님께서 보시고 답을 찾아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충분히 이해합니다."
"들어오시면서 눈치채셨겠지만, 저희는 에스프레소만 전문적으로 제공합니다. 메뉴는 딱 3가지입니다. 정통 에스프레소, 우유거품이 들어간 에스프레소, 초콜릿이 들어간 에스프레소만 운영합니다. 설탕은 취향 것 드시는 걸로 합니다. 그래서 커피를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요. 가격도 저렵하게 유지합니다."
태성은 여기 사장이 잘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내용이야 어디서든 들었지만 정말 이렇게 하는 집은 처음이었다. 보통 카페는 고객에게 맞추기 위해 많은 커피를 준비하는데 여기는 달랐다. 제공하는 건 딱 3가지니까 필요한 사람만 받았다. 사장은 가게에 약간 비트가 빠른 음악을 틀었다. 태성이 할 일은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사장이 알려주는 대로 몇 번 연습하고 맛을 봤다. 확실히 깊은 느낌이라 마니아들만 올 것이라 생각했다.
11:00가 되고 사람들이 한 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인데 연인끼리 오기도 했다. 그들은 작은 잔의 에스프레소를 받아 선채로 커피를 즐겼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서 즐기는 것에 불만이 없어 보였다. 마치 파티에 온 사람처럼 작은 잔을 손에 들고 서서 대화를 나눴다. 에스프레소는 커피 마니아만 즐기는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라는 답을 찾았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첫 손님이 커피 잔을 돌려주고 나갔다. 대부분 손님이 30분을 넘기지 않았다.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오래 있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로테이션이 빨리 진행되는 것을 보니 매출이 보였다. 그만큼 커피잔을 세척하는 손놀림도 바빠졌다. 근처 대학 교수라는 분도 에스프레소를 한잔 즐기고 나갔다. 새로운 커피 문화를 접한 것 같았지만 콘셉트가 너무 달라 뭘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망막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손님이 더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태성은 정신없이 커피 내리고 설거지했다. 사장은 주문을 받고 다른 아르바이트는 내린 커피에 거품을 얹고 내주기 바빴다. 그런데 아무리 바빠도 손님과 약간의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대부분 단골손님인지 안부를 묻기도 하고 커피 맛에 관해서도 담소를 나누었다. 손이 남으면 손님이 머물고 간 자리를 치우기도 했다. 3명이서 이 많은 사람을 상대할 수 있는 건 메뉴가 간소하기 때문이다. 홀에 나올 일도 거의 없었다. 단골이 주로 오기 때문에 매출 변동이 적을 것으로 추측했다.
점심시간만큼은 아니어도 오후 내내 손님이 꾸준히 이어졌다. 그나마 저녁이 되니 손님이 줄었다. 7:00시가 되자 사장은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문을 닫았다. 오늘 나간 커피잔이 350잔이라고 했다. 태성에게는 꿈의 숫자에 가까웠다. 물론 저렴하다고는 하지만 양이 만만치 않았다. 도성이 왜 여기를 가보라 했는지 조금 짐작이 갔다. 비록 태성이 생각했던 카페의 모습은 아니지만, 치열하게 움직이는 카페를 보며 사업이란 무언가에 집중할 필요가 느껴졌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에스프레소에만 집중했어요. 처음에는 머뭇하던 손님들이 이제는 단골이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늦게 열고, 빨리 닫습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합니다."
"오늘 많이 배웁니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내일은 제 다른 가계에서 일해보시겠어요?"
"다른 가게요? 거기도 에스프레소 바인가요?"
"아니요, 그거는 배달전문입니다."
태성은 놀랍기만 했다.
다음날 사장인 안내해 준 카페로 출근했다. 거기는 대형 빌딩 지하였다. 작은 카페가 앉을자리도 없이 오직 배달 전문만 한다고 쓰여있었다. 여기는 아르바이트 3명으로만 돌린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커피가 팔릴까? 가끔 사장이 나오는 건 아르바이트가 쉬는 날이라 했다. 아르바이트 한 명이 쉬는 자리를 태성이 맡기로 했다.
"제가 어떤 일을 도와야 하나요?"
"일단, 저희는 아메리카노와 라테만 취급하는데요. 배달전문이라 부족하면 배달도 하셔야 합니다."
매장 한쪽에 걸려 있는 태블릿에 카톡 메시지가 떴다.
"아메리카노 3잔, 라테 2잔이네요. 자! 시작하죠."
커피가 준비되자 직원이 캐리어에 담긴 커피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12층 회의실이요."
태성은 이 건물이 15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무실이 총 50개는 되고도 남아 보였다. 거기 직원들이 여기서 한잔만 시켜도 하루에 200-300잔은 나가겠지. 배달 직원이 나가고 또다시 배달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태성이 나갈 차례였다.
"7층 00 인터내셔널 총무과입니다. 아메리카노 5잔이요."
태성은 양손에 캐리어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총무과에 들어서자 여직원이 커피를 받아 들고 들었다. 태성은 여직원에 물었다.
"굳이 커피를 시켜드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네? 그건 왜 물으세요?"
"저희 카페가 고객 조사를 하고 있어서요."
"아... 예전에는 커피 머신을 두었는데요. 관리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여기는 지하에 있고, 배달도 빨리 해주시니까 굳이 따로 둘 필요가 없어졌어요. 카페 사장님이 우리 사장님을 찾아와서 영업을 잘하시던데요."
영업이라는 말에 태성은 무릎을 쳤다. 카페 사장이라고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 빌딩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시켜 먹으면 회사에서 일정 부분을 보조해 준다고 했다. 직원들 복지 차원에서 회사가 해주는 것이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특히 야근하는 사람들이 카페 문 닫기 전에 주문을 몰아하는 경향도 보았다.
일주일 동안 두 군데의 카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태성은 자기 카페로 복귀했다. 이제는 자기 가게를 어떻게 특화시켜야 할지 고민이 남았다. 출근하는 도성의 손을 잡았다.
"도성 씨,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