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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Nov 20. 2023

05. 초보라면 초보답게

행복의 조건

05. 초보라면 초보답게라면 초보답게

배정환


도성은 오후 출근 때 맑아 보이는 유리종을 가져왔다. 시키지 않아도 출입구에 종을 달았다. 사장의 허락도 없이 자기 일처럼 하는 저 오지랖은 뭘까? 태성은 어리둥절했다. 문을 여닫을 때 충격이 맑은 소리로 들려 좋긴 했다.

"사장님 일하다 보면 들고나가는 손님을 놓치시더라고요. 이 소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소리 때문에 손님들이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도성은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 대신 가까이 있는 손님을 손으로 가리켰다. 하얀 이어폰이 귀에 걸려 있는 모습을 보라는 말로 들렸다. 정말 누구도 소리 나는 문을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더 유용할지도 모르겠다.


종소리가 날 때마다 도성은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멈추지 않았다. 태성도 어느덧 인사를 따라 하고 있었다. 인사하면 좋다는 거야 다 아는 사실인데 태성에게는 그마저도 어려웠다. 누군가 열심히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따라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누가 사장이고, 누가 아르바이트인가? 한참 동생 같고, 조카 같은 도성을 따라 한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제가 예전에 식당에서 일했는데요. 친구들이 저 보러 왔다가 밥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도성의 말을 정리해 보면 이랬다.

중년을 넘긴 식당 사장님은 무척 뻣뻣했다. 친절함이 잘 보이지는 않아도 불편함은 쉽게 보이는 법이다. 한 친구가 사장님 때문에라도 여기서 밥 못 먹겠다고 했다. 도성이 보기에도 손님 식사하는 모습을 보는 사장의 눈초리가 마치 감시하는 CCTV 같았다. 대기업에서 정년퇴직한 사장님은 아무래도 친절과는 거리가 멀었다. 퇴직금으로 차린 식당이라 애정이 넘쳤을 텐데 좀처럼 어깨 힘을 빼지 못했다. 부하 직원 보듯이 손님을 쳐다보고 있으니 모두가 불편해했다. 손님이 반찬 리필을 시키기라도 하면 카운터에 앉은 그대로 종업원을 불러 가져다주라고 했으니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직장에서 고위급 간부로 퇴직하면 이런 문제가 따른다. 수십 년 동안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정작 아무도 그걸 지적하지 못한다. 그렇게 자기가 왜 망하는지도 모르고 직원 탓만 한다.


"내가 그렇게 보였나?"

태성은 자신이 그렇게 비쳤나 뜨끔했다.

"아니요. 사장님은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그런데 너무 말이 없으세요."

"그렇군. 그런 것 같기도 하네."

"저는 그때부터 손님에게 친절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나중에 습관도시면 종은 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태성도 변화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듯했다. 태성도 나름 팀장까지 했으니 조직 문화 습관이 그대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은근 걱정하던 차였다. 살갑게 인사하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닌데 어색한 목소리와 제스처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손님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편한 것이 가장 좋다'라며 나름 위로하고 있었다.  


도성이 던지는 말들은 태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도성은 손님에게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자주 오던 손님을 만나면 무엇이든 말을 걸었다.

"손님 오늘 눈 화장 끝내주는데요."

이 말을 들은 여성 손님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했다. 싫지 않은 웃음으로 커피를 받아나가는 뒷모습이 가벼웠다. 어떻게 저런 말을 쉽게 던질 수 있을까? 태성은 직장 생활할 때 좀처럼 쓰지 않던 따뜻하고 친절한 말이 부러웠다. 직장 생활할 때는 여직원들에게 특히 조심했다. 손길만 스쳐도 문제가 된다고 하니 점차 여직원들에게 업무 이외에는 말을 잘 걸지 않았다. 아내마저 없으니 더 조심스러웠는지 모른다.


도성은 커피를 내줄 때도 어떤 말이든 했다.

"손님, 커피 두 잔 나왔습니다."

"손님,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들고 가세요."

"손님, 냅킨도 좀 챙겨드릴게요."

"앞에 손님 커피 내리고 주문받을게요."

일일이 안내하고, 양해를 구하고, 잊을만한 것을 챙겼다. 서비스업에서 오래오래 일한 흔적을 감출 수가 없었다. 손님이 늘어가는 것 같더니만, 하루 매상이 두 배로 상승했다. 도성 때문인지? 일시적 요인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도성이 알바를 시작하고 손님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수민이가 가게에 나온 날이면 도성과 짝이 더 잘 맞아 보였다. 젊은 남녀 둘이 카운터를 책임지는 모습이 든든하기까지 했다.

"아빠, 오빠가 진짜 일을 잘한다. 나 많이 배웠어."

수민이도 도성을 엄지로 추켜세웠다. 그런데 왜 이리 작아지는 것 같은지? 나이만 한참 먹었지 자영업이란 정글에서 살아남기가 만만치 않았다.

"수민아, 아빠가 많이 부족해 보여?"

"그건 아닌데, 아직은 초보 맞잖아. 열심히 배워야지."

맞다. 열심히 배워야 한다. 어깨에 힘을 주고 있다가는 도성이 이야기한 식당 사장님 꼴 날지도 모른다. 젊은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라테' 아저씨가 될지도 모른다. 자영업을 너무 쉽게 생각한 듯하다. 태성은 뭐든 자존심 내려놓고 배워야 했다.


이런 보석 같은 친구를 만났다는 것은 태성에게 큰 행운이었다. 도성이 오후를 책임지고 있으면 그를 잘 관찰했다. 표정, 손짓, 말투, 멘트까지 잘 기억하려고 애썼다. 도성의 고객 관리 능력을 보면서 태성은 사장으로서가 아니라 배움의 자세로 들여다봤다.

"도성 씨는 공무원보다는 카페를 차리는 게 맞을 것 같은데. 그런 말 안 들어 봤어?"

도성이 커피를 내리다 말고 태성을 바라봤다.

"사장님 저도 그러고 싶어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 한다고 난리세요."

"나도 직장 생활 오래 했지만, 희망이 없어. 직장인은 미래를 담보로 하는 노예야."

도성이 지어 보이는 끄떡이는 웃음의 의미가 궁금했다. 다 안다는 말인지? 사장의 말에 공감한다는 말인지? 그런데 왜 20년이나 했느냐는 질책인지?


도성이 새로 구해온 원두라며 태성에게 가져왔다. 

"좋은데, 이거 뭐야?"

"제가 아는 분이 블렌딩 한 원두인데요. 맛이 어때요?"

"특별하지는 않은데 나름 부드럽고 좋은데. 이거 어디서 사는 거야?"

도성은 의자를 끌어 가까이 붙었다.

"사장님, 혹시 이분이 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해보지 않으실래요?"

"아르바이트? 내가 왜?"

"솔직히 사장님은 아직 카페 운영이 어색하세요. 다른 매장에서 실질적인 것을 배워오시면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배움의 시간을 단축하는 건 잘되는 카페에서 직접 일해보는 거거든요."

태성은 입구만 바라봤다. 커피잔을 챙겨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무 말 없이 커피잔을 씻었다. 도성도 자기 잔을 가지고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제가 너무 오버했네요."

태성이 주방에서 나오며 도성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니야. 오히려 내가 고맙네. 네가 자영업을 너무 쉽게 봤어. 돈 주고라도 배울 건 배워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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