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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Nov 06. 2023

03. 카페 열다

행복의 조건

03. 카페 열다

배정환


프랜차이즈로 가게를 차리면 여러 가지로 편해 보였다. 하지만 드립커피도 배웠으니 적당히 잘 배합해서 태성의 이미지에 맞는 가게를 끌어가고 싶었다. 바리스타 동기들 카페에 자주 드나들며 혹시라도 실수는 없는지 체크해 나갔다. 직장생활에서 얻은 꼼꼼함이 여기서 큰 무기가 되었다. 커피 머신은 동기들이 추천해 주는 걸로 했다. 이탈리아산이라고 했는데 뭐가 좋은지 잘 몰랐지만, 일단 핸드 드립으로 승부하기로 했으니 커피 머신은 중간 사이즈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결정했다.

  

혼자 했다면 불안했을 텐데, 동기들이 있어 조언을 받고 서로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카페 인테리어도 저렴한 가격으로 계약했다. 바리스타 학원에서 지정한 인테리어 업체를 거치면 30% 할인된 가격으로 공사를 마칠 수 있어 여러모로 유리했다. 동기들도 대부분 같은 업체라 공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믿음이 갔다. 태성은 유럽의 거리 느낌으로 붉은 벽돌을 쌓았다. 애비뉴라고 하는 마름모꼴 간판도 설치하고 시계탑을 연상시키는 큰 시계도 달았다. 인디고블루 창문틀에 햇빛을 살짝 차단하는 코딩을 입혔더니 제법 벽돌과 잘 어울렸다.

   

가운데 8인용 큰 탁자를 하나 설치했다. 원목으로 두툼하게 제작했기 때문에 의자만 더하면 12명까지 토론도 가능했다. 최근 트렌드에 맞게 사이드로 1인용 테이블도 설치했다. 노트북 하는 고객을 위해 자리마다 콘센트를 설치했다.

“와~ 사장님 정말 꼼꼼하시네요. 카페 몇 개 차려보셨나 봐요. 여기 앉아보세요.”

인테리어 사장님이 태성에게 의자를 내밀며 칭찬했다. 

“아니요. 다 어깨너머로 배웠습니다.”

“처음 하시는 분 같지 않아요. 의자 쿠션은 맘에 드세요? 이걸로 주문하려고 합니다.”

“쿠션은 좋네요. 그런데 좀 내구성이 좋은 걸로 해주세요. 가격이 있더라도.”

“네, 잘 체크해 둘게요. 자 이제 인테리어 끝입니다.”

인테리어도 다 마무리되었고 이제는 간단한 집기류만 들어오면 바로 오픈할 수 있었다.


회사를 마무리해야 할 차례다. 가슴에 품었던 사직서를 가지고 부장실을 노크했다. 

“그래, 어쩐 일인가?”

“부장님... 실은... 죄송합니다.”

태성은 사직서를 부장 앞에 내밀었다.

“결국, 자네마저 나가는가? 카페 준비한다는 소문을 들었어. 나도 여기서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보다 낫네.”

“부장님도 퇴직하면 자영업 하시려고요?”

“나라고 별 수 있나? 우리 와이프도 요즘 요리학원 다녀. 나 퇴직하면 자기가 벌어 먹인다 나 뭐라나. 다행이지 뭐야.”

태성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라 몸에 전율이 올라왔다. '나만 믿어. 내가 직장에서 자유롭게 해 줄게...' 그 말이 어깨를 내리눌렀다. 코 끝이 찡해졌다. 

“왜 눈물을 글썽이고 그래? 퇴직하려니 겁나?”

태성은 웃음 지어 보였다. 부장에게 구차한 설명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회사에 있을 때는 은행에서도 대출이 어렵지 않았다. 인센티브 들어오는 재미도 있었고, 적당한 휴가 쓰는 재미도 있었는데 이제는 진짜 능력제이다. 작은 실수정도는 회사에서 처리했지만, 이제 바로 폐업과 연결된다. 부장은 사직서를 펼쳐 결재서류에 끼워 넣으며 말했다.

“먼저 나가서 길 잘 닦고 있어. 내 자네에게 도움 받을지 아나.”

미울 일도 많았던 부장이 지금은 형님처럼 느껴졌다.

“혹시 나와 일하며 마음 아팠던 일 있었으면 다 용서하고, 잘해보게나. 20년 동안 수고했어.”

태성은 부장과 악수를 하고 보름 정도 더 다니며 인수인계하기로 했다.


낮에는 외근 신청을 하고 짬짬이 둘러봤다. 저녁에는 작업한 곳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수정할 부분은 사진을 찍어 인테리어 사장님에게 전송했다. CCTV도 3개를 설치했고, 카드단말기까지 설치하니 이제는 제법 카페다운 모습이 보였다. 컵과 접시를 구매하러 딸 수민이와 고속버스 터미널 상가에 나갔다. 아무래도 여자 감성이 필요했는데 수민이가 안목이 좋았다.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공부보다는 패션,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도움이 되리라 믿었다. 인테리어에 맞게 클래식보다는 모던한 머그컵 형태로 구매했다. 아이스 음료를 담을 만한 크고 예쁜 유리컵도 골랐다. 케익을 낼 작은 접시와 포크도 추가했다. 

“아빠 포크는 손잡이 일체형으로 사자. 설거지하려면 쉽게 닦이는 게 좋아. 너무 이쁘고 복잡한 거는 실용성이 떨어져.”

“오~ 우리 딸 설거지 좀 했는데.”

회사 나간 아빠를 돕는다고 빨래, 설거지를 주부 수준으로 해내는 딸을 보며 태성은 미안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이제 인테리어도 집기류도 다 했으니 고사 지낼 일만 남았다.


돼지머리를 사고 떡을 맞췄다. 상이에 하얀 전지를 깔고 접시에 음식을 올려두었더니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인테리어는 현대식인데, 구식 음식이 어쩐지 부조화스러웠다. 그래도 카페 동기들이 꼭 해야 한다고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마련했다. 

"태성 씨 가게 잘 되기를 빕니다."

바리스타 총무가 돈 봉투를 돼지 입에 꽂았다. 뒤로 10명 남짓 동기들이 서서 고개를 숙였다. 입구에는 '대박 나세요.'라고 휘장을 감은 화분이 양쪽을 지켰다. 회사 동료들도 퇴근시간에 맞추어 찾아왔다. 부장이 대표라며 태성에게 돈 봉투를 내밀었다. 돈을 받아 돼지 입에 추가했다. 

"윤 차장, 아니 윤사장 자네도 이런 미신을 믿나?"

"아닙니다. 그래도 들어간 돈이 있으니까, 안 하면 찝찝할 거 같아서요."

"그래도 가게가 제법 근사한데."

"감사합니다."

"그래도 자영업은 항상 조심해야 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도 자영업 비중이 가장 많지 않은가? 80%가 5년 내에 도산한다는 이야기 들었지? 나도 매번 고민하는데 결정을 못하고 있어."

퇴직하고 나왔지만 부장은 여전히 상사 노릇을 했다. 개업식에 와서 도산이라는 표현을 하다니? 눈치가 없는 건지? 진짜로 태성을 걱정하는 건지? 부장이 돌아가고 난 후 주변 상가에 떡을 돌렸다. 

"저희 카페 애용해 주세요!"

"아유~ 요즘 누가 떡을 돌려? 그래도 잘 먹을게요. 이제 다른데 안 가고 거기서 커피 마셔야겠네요. 축하해요!"

요즘은 개업떡 같은 거 안 돌리는가 보다. 태성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선배 창업자들이 남들이 안 하는 거 해야 한다고 해서 용기를 내봤다. 주변 상가 분들의 축하해 주는 말이 듣기 좋았다. 막걸리를 가게 앞에 뿌리며 간절히 빌었다.

"제발 대박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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