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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Oct 30. 2023

02. 준비 없는 시작

행복의 조건

02. 준비 없는 시작

배정환


시간 날 때마다 인터넷으로 직장 다니면서 할만한 자영업 아이템을 찾았다. 회사에 묶여 있다 보니 어디 발품을 팔만한 여유도 없어서 인터넷을 자주 애용했다. 직장인들을 위한 바리스타 교육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에서 멀지 않아 퇴근 후에 여유롭게 도착할 거로 보였다. 차장 직책 달고 다른 거 배운다며 눈치줄 것 같아 일단 비밀로 했다. 입장 바꿔 생각해도 후배직원들에게 별로 모범은 아닐 터였다. 다들 저녁에 뭔가 준비한다고 생각하면 움츠려들 일도 아닌데, 막상 직원들을 만나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단 딸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요즘 아이들은 집에 부모가 없는 편이 오히려 도와주는 거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아무리 카페가 많아도 나 하나쯤 창업하지 못할까? 불안과 기대가 반복적으로 찾아왔다. 주변에 물어보았더니 말리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제 다 늦게 망하고 싶냐'라는 말을 들으면 그게 아닌가 싶다가도, 태성이 낼 수 있는 시간이나 자본을 생각하면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낮에 일하며 배우기에는 커피만 한 것이 있을까? 일단, 퇴근 후 저녁 시간과 주말을 투자해 보기로 했다. 호프집을 하다가는 건강이 더 나빠질 것 같고, 치킨은 배달과 조리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커피를 좋아하니까 카페는 그런대로 해볼 만해 보였다. 많은 이들이 조용한 카페에 앉아 커피 내리고 독서하는 삶을 꿈꾼다. 지난번 이사님도 말씀하셨다.

"나는 은퇴하면 책방하나 내고 커피 내리며 살고 싶어."

직원들 모두 그 모습에 공감했다. 태성 역시 그런 삶을 원했다. 

일단 뭐라도 시작해야 불안감이 사라질 듯했다. 퇴근길에 시내에 있는 바리스타 학원에 들렸다.

"안녕하세요. 수강하러 오셨어요?"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묶은 여직원이 검은 앞치마를 두르고 인사를 했다.

"일단 한번 둘러보시겠어요?"

"네. 커피를 좋아하긴 하지만,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분들이 금방 배우셔서 일을 찾으세요."

여직원이 보여준 방에 사람들이 모여 열심히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언뜻 봐도 젊은 학생 같은 친구들과 희끗한 머리의 노인분들이 보였다. 태성은 자기 나이는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저절로 웃음이 났다. 괜히 걱정했다는 생각이 들며 주먹을 꼭 쥐었다.


바리스타 학원에서는 커피 추출, 라테 아트, 에스프레소 메뉴 제조 등과 같은 커피 제조 기술에 관한 이론과 실습이 준비되어 있었다. 커피 원두의 종류와 특성, 커피와 음료의 맛과 향, 그리고 커피의 역사와 문화 등과 같은 이론적 지식을 배우기 위해 책도 구매했다. 첫날 수업에서 원두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놀라며,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정신 차려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집에 원두를 가지고 왔다. 뜨거운 물을 끓이고 원두에 붓자 거품이 일어났다. 태성은 흐뭇한 웃을 지으며 자신이 차릴 카페를 상상했다. 다소 번거롭더라도 핸드드립으로 승부를 걸어볼 생각이었다. 프리미엄 커피라면 노력 대비 단가가 높아서 적게 일하고 많이 벌 거라고 누군가 이야기해 주었다. 


태성은 학원에서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대한민국에 창업을 꿈꾸는 사람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다는 것에 살짝 충격을 받았다. 직장 생활할 때는 미처 몰랐던 세계였다. 나이가 지긋한 분도 계셨고, 이제 갓 졸업한 20대도 많았다. 주부들도 창업 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직장 생활만 믿고 있던 태성은 나태하게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커피 하나 배우는데도 사람이 이토록 많다면, 다른 자영업 시장은 어떨까?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경쟁자로 보였다. 주변에서 우리나라는 카페 공화국이라며, 늦었으니 다른 걸 알아보라는 말도 돌았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책의 말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태성보다 한 달 먼저 공부하던 여자 수강생이 창업했다. 30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자본이 어디서 나서 차렸을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학원 끝나고 축하해 주러 간다고 하기에 호기심이 생겨 따라나섰다. 돈을 모아 화분을 하나 구매했더니 주인이 휘장에 쓸 응원 멘트를 불러 달라고 했다. 어떤 응원을 받고 싶을까? 내가 만약 가게를 오픈한다면 말이다.

"대박 나세요! 파이팅 ♡♡바리스타 동문일동!"     

태성은 여기저기 카페를 살폈다. 주방의 동선, 커피머신, 원두 브랜드, 얼음 냉장고, 테이블, 앞치마 등. 예전에는 궁금하지도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손님의 눈이 아닌 사장의 눈으로 카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보며 쿠션이 있는 것이 좋을지? 딱딱한 나무 의자가 좋을지? 엉덩이를 돌려보며 그 느낌마저 느껴보았다.

 

총비용이 1억 5000만 원 들었다고 했다. 가게 권리금만 3,000만 원이라니 태성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인테리어 비용을 적게 잡아도 5,000만 원이라 했다. 골목에 작은 카페 하나 차리는데도 이렇게 큰 비용이 들 줄 몰랐다. 태성이 꿈꾸는 카페는 이보다 2배 이상은 되어야 했다. 어쩌면 자신의 모든 재산을 걸어야 할지도 몰랐다. 어렵게 자본에 대해 물었다.

"저 이혼하며 받은 위자료를 모두 투자했어요. 애 데리고 살려면 열심히 벌어야죠."

전혀 이혼한 흔적을 느낄 수 없었는데 돈을 벌겠다는 의도가 꽤나 열정적이라 생각했다. 원두는 아는 목사님을 통해서 구매한다고 했다. 목사님이 직접 로스팅을 하고 계시는데, 주문하면 바로 로스팅해서 보내주신다며 필요하면 소개해 주기로 했다. 일단 명함을 받아두었다. 커피 향을 맡아보니 그런대로 대중성이 있을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다양한 브랜드 원두를 준비해서 손님에게 맞춤으로 제공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카페를 보고 오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벌써 카페를 창업한 것처럼 가슴이 설레고 저절로 웃음이 났다. 벌써 마음은 대박 가게를 차린 사람처럼 회사 일이 우습게 보였다. 부장님의 짜증 내는 표정에도 불안하지 않았다. 이제 몇 달 후면 사장님이 되는데 부장님에게 신경 쓸 필요 없었다. 회식 끝나고 돌아오다 동료들 따라 로또를 샀던 기억이 났다. 돼지꿈을 꾼 것도 아닌데 토요일을 기다렸다. 혹시 내 로또가 당첨이라도 되면 회사에 다닐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했던, 그때보다 좋았다.     

어떻게 비용을 마련해야 할지 계획을 세웠다. 어디에 개점하면 좋을지 벌써 인터넷 부동산에서 상가를 검색했다. 일단 자영업 선배인 지석을 만나보기로 했다.

“선배, 그 자영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어? 왜?”

“선배는 자영업에 대해서 너무 몰라요. 준비하지 않은 자영업을 우리는 생계형이라고 하거든요. 선배는 집 팔아서 할 건데 자칫 다 날려 먹을 수 있어요. 자영업이라고 다 돈 버는 게 아니잖아요. 선배도 거래처 사장님들 봤잖아요.”

“그래도, 내가 저녁마다 바리스타 배운 것도 있고, 도와줄 동기도 많은데 이걸로 안될까?”

“하는 거야 선배 자유지만, 저는 좀 더 고민하셔야 한다고 봅니다. 자영업은 현실입니다. 다들 로또 사고 될 줄 아는 것과 비슷해요. 확률이 600만 분의 1인데 그게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잖아요.”

어제 로또를 생각했던 태성은 옆구리 쿡 찔리는 느낌을 받았다.

“알았어. 내가 좀 더 심사숙고해 볼게.”


집에 돌아온 태성은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지석이 지적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접기에는 부동산에서 연락 온 자리가 마음에 들었다. 비싼 느낌은 있지만, 사거리에서 살짝 벗어난 곳으로 유동인구도 어느 정도 받쳐주는 곳이다. 전철역으로 지나가는 곳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아파트도 끼고 있어 만족스러웠다. 일단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책에서도 꿈을 가지고 행동하라고 했다. 꿈이 크면 행동도 커진다고 했으니 일단 시작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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