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동하는독서 Dec 04. 2023

07. 사업은 사업답게

행복의 조건

07. 사업은 사업답게

배정환



일주일간의 아르바이트를 통해 태성은 부지런히 가게를 돌리는 것이 왜 중요한지 배웠다. 사업을 사업답게 해야 했다. 카페 차려서 노후 준비나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태성은 카페를 차리고 그리 바쁘지도 않았다. 도성이 일하면서 활기를 찾았지만 자신의 역할이 별로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고용하자마자 사장인 자신은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이래서는 창업으로 성공하기 쉽지 않았다. 도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림잡을 수 있었다. 쉽게 하는 창업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거기서 특화된 서비스와 품질을 가지지 않으면 바로 아웃된다. 태성은 다른 자영업자들의 사업체를 방문하며 더 배워보기로 했다.


태성은 가까운 편의점에 들렀다. 가게를 시작한 지 2년 되었다고 하는데, 젊은 편의점 사장이 아주 성실해 보였다. 손님에게 인사도 잘하고, 한가할 때는 컵라면에 물 붓는 것도 도와주고, 앞 손님 먹고 나가면 바로 행주로 깨끗이 치웠다. 사장이 부지런해서 그런지 알바 여학생도 비슷하게 따라 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역시 리더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자영업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결정 난다는 것을 배웠다. 젊은 친구지만 배울 점이 많아 자주 찾아가곤 했다. 사장이 몸이 편하면 직원도 편해질 테고, 그러면 손님이 불편해진다. 태성은 카페 운영을 통해 어떻게든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태성은 들어가자마자 편의점 사장에게 말을 걸었다.  

“사장님, 여기는 무슨 일 없었어요?”

“왜요?”

편의점 사장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표정을 지었다. 어제 근처 식당에서 무전취식 도주한 이야기를 물어본 건데, 편의점 사장은 아직 전해 들은 것이 없는 모양이다.

   

전날, 근처 횟집에서 남자 네 명이 식사를 했다. 비싼 회에 술까지 꽤 많은 금액이 나왔다. 담배 피우러 나가고 나가고 화장실에 간다고 하더니 손님이 한 명씩 줄었다. 그래도 마지막 한 명이 남았으니 사장님은 결제에 관해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마지막 손님이 돈이 모자란다며 가방 두고 잠시 돈 찾으러 간다고 하더니 그걸로 끝이었다. 싸구려 가방은 텅 비어 있었다.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저지른 일이라 경찰에 바로 신고하고 CCTV로 찾고 있었다.

 

"요즘 경기가 어려우니까. 바로 계산하지 않으면 별일이 다 벌어지더라고요."

"저희는 괜찮아요. 어차피 편의점이란 게 선주문이잖아요."

"아.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 카페든, 편의점이든 선주문 형식이라 무전취식에서 그나마 자유로웠다. 태성은 먹는장사가 그래서 어렵다고 생각했다. 최근 트렌드는 모두 선주문 방식으로 바뀌는 추세가 좋았다. 얼마 전에 생긴 식당들도 테이블마다 태블릿을 두고 선주문으로 바뀐다는 사실이 이해가 됐다. 이제는 결재를 해야 먹을 수 있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야기 도중에 편의점 사장이 자꾸 밖을 두리번거렸다.

"왜요? 누가 오기로 했어요?"

"아니요, 부동산 사장님이 요즘 낯선 사람과 자주 오가고 있어서요."

"부동산이요? 그게 왜요?"

"얼마 전에 통신회사 명예퇴직 뉴스 못 보셨어요?"

"봤죠. 그게 부동산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태성은 아직도 자기가 모르는 세계가 있음을 직감했다.

"자영업도 모르는 초자 사장들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다 프랜차이즈 편의점, 카페, 빵집이죠. 이 부근에 몇 개가 생길지 알 수 없어요. 지금도 500미터 안에 편의점이 5개가 넘어요. 몇 개 더 생기면 나눠먹기 해야 하잖아요. 예민하게 볼 수밖에 없죠. 더 생기기 전에 가게 내놨어요."

"아. 그럴 수 있겠네요."

"사장님은 근처에 카페가 몇 개 있는지 세어 보셨어요?"

"아니요. 오픈할 때 5개까지 봤는데 그다음에는 조사를 해보지 않았어요."

"제가 보기에는 3개는 더 생겼을 겁니다."

태성은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시장을 너무 안일하게 보고 있었나 보다. 어쩌면 그 초자 퇴직금 사장이 자기가 아닐까?

"대기업 다니던 사람들이 뭘 하겠어요? 그런 사람들이 자영업에 일단 퇴직금으로 밀어버리거든요. 거기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버텨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편의점을 더 이상 특화 시킬 게 없어요. 그냥 앉아서 나눠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 접어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접는 타이밍을 잡는 것도 실력이거든요."     


태성은 마음이 불안해왔다. 바리스타 동기들도 경쟁자로 보이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 학원에서 바리스타 후배들이 대거 졸업할 거라 했다. 그 숫자는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공부해야 했다. 준비하지 않는 자신을 돌아봐야 했다. 태성이 카페를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자신을 어떻게 바라봤을지 깨달았다.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보겠다는 심산이었으리라. 자영업이라고 해서 그냥 열심히 한다고만 되는 것은 아니구나. 냉혹한 현실이 피부에 와닿았다. 주변에 자영업 사장들과 친해지면서 좀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잘 차려놓으면 직장 다니는 것보다 나을 거라는 착각이 깨지고 있었다.


며칠 후 편의점 사장이 카페에 들어섰다. 손에 들고 왔던 주스 박스를 내밀며

"사장님 저 편의점 넘겼어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왜요? 갑작스러운 소식이네요."

태성은 커피 한잔하자며 테이블에 잠시 앉아 있으라고 했다. 태성은 편의점 사장이 좋아하는 라테를 한잔 내려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실은 가게 내놓은 지 오래됐습니다. 부동산에 알아보니 편의점이 하나 더 생길 거라 하네요. 처음 제가 시작할 때만 해도 한 개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정말 나눠먹기 장사예요. 유동인구가 더 늘어난 것도 아닌데요. 신도시가 생긴다고 제 편의점이 더 잘 될 일도 없구요. 전철역 근처라면 유동인구 덕을 좀 볼 텐데요. 그것도 아니구요."

"그러네요. 자영업은 오래 하고 싶다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네요."

태성은 편의점 사장의 아내도 멀지 않은 곳에서 치킨가게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내분 치킨가게 같이 하려고요?"

"아니요. 그것도 접을 겁니다. 당분간만 같이 하구요."

너무 뜻밖이다. 자영업을 모두 접을 심산이면 오랫동안 구상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먹고사는 문제가 그리 쉽지는 않을 텐데... 남일이 아니다. 자영업 폐업 현실이 이런 거란 말인가?

"뭐 준비한 거라도 있어요?"

태성은 정말 궁금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이참에 조금씩 준비해 보려고요."

"혹시 그게 뭔지 제가 알아도 되나요?"

편의점 사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머뭇거렸다.

"저 서핑 가게 하나 차리려고요."

뜬금없는 서핑? 편의점, 치킨 가게 사장이 서핑?

"바다에서 하는 서핑? 그거 말하는 건가요?"

"네, 작년 여름에 서핑을 배웠는데, 바다에 있으면 너무 황홀해요. 이참에 그걸 해보려고 합니다."

"어디로 가는데요?"

"아직 정하지는 않았는데요. 아마 양양이 될 것 같아요. 지금 양양에 서핑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거든요."

"아는 사람은 있어요?"

"아니요, 없어요. 일단 주말마다 가서 입지와 강사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가게를 접는다? 젊은 사람이니까 가능한 일인가? 그 말을 듣는데 태성의 가슴도 뛰는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 그게 뭘까?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일까? 마지막 악수를 나누고 편의점 사장은 돌아갔다. 양양에 놀러 가겠다고 의미 없는 약속까지 했다. 서핑이란 말이 자유로운 상상을 만들어내는 것만 같다. 서핑이 궁금해서 초록창을 열었다. 요즘 대세라는 말에 언젠가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편의점 사장이 시대를 앞서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새로 차리는 태성이 있는 반면, 다른 인생을 준비하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잘 되는 자영업을 인수해서 더 키우고 권리금 받아 팔아버리는 사업도 만났다. 자영업은 직장 생활보다 더 치열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카페는 자신에게 어떤 일인지 고민이 많아졌다.


멀지 않은 사거리에 떡볶이 노점이 보였다. 오늘 점심은 그대로 떡볶이로 대신할까 싶었다. 태성은 잠시 도성에게 맡기고 큰 리어카로 만들어진 노점으로 들어섰다. 떡볶이 2인분에 순대를 주문했다.

"사장님, 편의점 문 닫는다네요."

"그래요? 그럼 뭐가 들어선데요?"

역시 자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근처에 뭐가 들어서는지부터 궁금해했다. 감상적으로 생각하는 자신과는 너무나 달랐다. 태성은 하고 싶은 일에 가슴 뛰는데 다른 이웃은 사업의 미래를 생각했다. 아직도 사업가의 자세가 부족한가 싶기도 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저녁에 부동산 가봐야겠다."

"거기에 뭐가 들어서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뭐 하나 차려볼까 싶어요."

"노점을요? 매일 장사 안 된다고 하시더니 옮기려고요?"

노점 사장은 그냥 웃고 말았다.


편의점이 문 닫기 전에 물어봐야겠다. 뭐가 들어서는지 궁금해졌다. 마무리 준비하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혹시 이 자리에 뭐가 들어서는지 알 수 있어요?"

"편의점은 아닙니다. 계약한 분은 편의점에는 관심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권리금도 얼마 못 받았어요. 아이스크림 가게가 들어올 거라는데요. 요즘 유행하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같던데요. 잘 모르겠어요."

아이스크림 가게와 카페의 연관성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생각이 나지 않으니 경쟁관계는 아닌 듯싶었다.

"떡볶이 아저씨가 궁금해하더라고요."

편의점 사장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 아저씨 조심하세요. 이 지역 노점상 협회 회장님입니다. 잘 로비해서 상생하시면 도움 될 겁니다."

"노점하는 분과 무슨 상생이에요."

"노점한다고 우습게 보지 마세요. 가게 세 안 내잖아요. 카드 수수료도 안내요. 다 현금으로 주고받으니 세금 없는 수입입니다. 아마 한 달 600만 원 이상 벌걸요."

"매번 장사 접어야겠다고 하던데..."

"카페 사장님 정말 순진하시네요. 그거 그냥 하는 멘트예요. 이 동네에서 가장 많이 벌지도 몰라요. 시청에 로비로 내는 돈도 만만치 않다고 들었어요. 돈 못 번다고 해야 경쟁을 피하죠. 하긴 그 아저씨 허락 없이는 노점 새로 열지도 못해요. 실세예요. 실세."


열흘 후 편의점이 나가고 그 자리에 가게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일 때, 가게 앞 인도에 작은 노점이 하나 세워졌다. 다코야키를 하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코야키를 사며 혹시 떡볶이 아저씨를 아는지 물었다.

"아. 떡볶이, 우리 아저씨예요."

역시나! 아저씨는 타인의 변화를 자신의 사업으로 바꾸고 있었다.

"아이스크림과 다코야키라... 조합이 좋은데요."

"여기 아이스크림 가게 아닌데... 무인 카페예요."

자연스럽게 넘어가던 다코야키가 목에 턱 걸렸다.

"무인카페라고요? 또 카페예요?"

"무인카페에는 디저트가 없잖아요. 다코야끼와 커피 괜찮아요?"


태성은 자신만 모르고 있었나 싶다. 주변의 변화가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변했다. 가게가 나가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전혀 의심이 들지 않았다. 편의점 사장이 몰랐던 것일까? 자신이 너무 타인의 말을 쉽게 생각한 것인가? 부동산에 가서 제대로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공사가 이루어지는데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어느 하나 걸리는 것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데 자신만 문턱에 걸려 넘어진 듯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