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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Jan 08. 2024

12. 문제는 다른데 있지 않았다.

<행복의 조건>

12. 문제는 다른데 있지 않았다.

배정환


수민이를 혼자 키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회사에서 눈치 보며 일찍 퇴근해야 했고, 저녁 늦게까지 동네 할머니에게 맡겨 키웠다. 아내가 있으나 없으나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주말에는 되도록 어린 수민이와 놀이공원도 다니고, 캠핑도 다녔다. 친구들이 가는 여행에도 같이 다니며 수민이가 외롭지 않게 하려고 했다. 그렇게 자란 수민이가 이제 고등학생이 되어 카페에 나와 아르바이트 겸, 운영을 도와주고 있었다. 나름 태성의 자랑이고, 아픈 손가락 같았다. 하지만 엄마의 부재를 예민한 10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신경이 쓰였다.


유난히 수민이가 옆집 꽃집 여사장에게 까칠하게 대하는 것을 보니, 태성도 선뜻 화정에게 다가서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자꾸 꽃집으로 흘러가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아침이면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려 옆집에 배달했다. 화정도 싫지 않은 듯 특별히 거절하지 않았다.

"이번에 친구로부터 블루마운틴을 가져온 게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한번 마셔보세요."

"세계 최고의 원두라는 그건가요?"

"네, 가격이 있다 보니 아마 취급하는 곳도 많이 않을 겁니다."

"너무 감사해요."

새로 들어온 꽃이라며 아직 정리 전이라 했다. 장미꽃에 파묻혀 커피를 마시는 화정의 모습은 태성의 마음을 홀리기 충분했다. 여성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나 보다. 아내에게서는 빵냄새가 가득 났다면 화정에게서는 향기가 났다. 아내의 머릿속에는 돈이 있었다면 화정의 머리에는 낭만이 가득할 것만 같았다.

"저.. 화정 씨 휴일에는 뭐 하세요?"

"특별히 하는 건 없어요. 공부도 하고, 화훼단지 투어도 하고 그래요."

"휴일에도 꽃 생각밖에 안 하시네요?"

"제가 그런가요? 이제 막 가게 오픈했으니 빨리 자리 잡아야죠. 이 동네에서는 어떤 꽃이 나갈까 궁금해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꽃을 사는 분들이 많은가요?"

"그럼요, 꽃만큼 사람의 마음을 따듯하게 하는 게 있을까요?"

"커피와 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기호품인데요."

화정은 처음 보기보다 사업적 마인드가 강해 보였다.

"저 혹시 화훼단지 가실 때 따라가도 될까요?"

"가게는 어쩌시구요?"

"도성이 그 친구가 아주 잘해요. 걱정 없습니다."


휴일에 태성은 화정을 따라나섰다. 꽃을 보고 싶다기보다 꽃을 따라다니고 싶었다. 상인들과 흥정하는 화정의 모습은 갑자기 다른 사람 같았다. 끝까지 정보를 캐고, 가격흥정을 이끌어내곤 했다. 배달 시점을 정확하게 산출하고 양보할 수 없는 건 정확하게 짚고 넘어갔다.

"사장님 그 조건 안 해주시면 저도 구입 못해요!"

단호하고 명확했다. 태성이 회사 생활 할 때부터 거래처에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하는 습관이 있던 것과는 달랐다. 돌아오는 길에 화정에게 질문했다.

"화정 씨 사업을 여러 개 해보셨어요? 처음이 아닌 거 같은데요."

"저는 사회생활하고 줄곳 자영업만 했어요. 그렇게 안보였나요?"

"네... 예술하시는 분 분위기였어요."

"아니에요. 그렇다면 저에게 속으신 겁니다."

속았다는 말이 태성의 머리에 잔상으로 남았다. 동네에 도착할 때쯤 화정이 말을 이었다.

"다음부터는 아르바이트에게 전적으로 맡기지 마세요. 사람은 믿을게 못 됩니다. 도성 씨야 좋은 사람인 거 알지만, 환경이 사람을 거짓말하게 만들거든요. 사장님이 모든 걸 지휘하셔야 해요. 자! 어서 카페에 가셔서 마무리하세요. 하루 매상도 체크하시고! 안 하시면 카페 펑크 나요."

화정과 저녁이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태성을 밀어내듯 재촉했다.

"사장님 어디 다녀오세요?"

도성이 커피를 내리다 물었다.

"어. 옆집 화정 씨가 꽃을 본다고 해서 따라가 봤어."

"꽃집 사장님 마인드가 장난 아니던데요. 보기보다 대단하세요."

"그래? 뭐가?"

"얼마 전에 카페 오셔서 살아온 과정을 이야기해 주시더라고요. 개인적 이야기라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모아 놓은 재산도 많으시고 여기 카페도 오래할 건 아니라던데요."

"그렇구나... 도성 씨 어서 퇴근해. 나머지는 내가 할게."

도성의 말을 듣고 보니 보통여성은 아니라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카페문을 닫는데 꽃집 불이 아직도 켜져 있었다. 창문으로 화정 씨가 노트북을 켜 놓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밖에 선 태성을 보고 화정이 손을 흔들었다.

"퇴근 안 하세요? 이 늦은 시간에?"

"홍보 안을 짜고 있어요. 사장님도 인별하세요?"

"네? 인별이요? 인스타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아니요.. 저는 당최 그런 거에 취미가 없어서요."

화정이 입을 살짝 내밀었다.

"카페 홍보 안 하세요? 그럼 뭘로 카페를 알리세요?"

"수민이가 인별, 그거 해주는 거 같더라고요. 뭐, 그리고 별 다른 건 안 합니다."

화정은 태성을 위해 의자를 내주었다.

"사장님은 카페를 왜 하세요? 아니, 사업을 왜 시작하셨어요?"

너무 갑작스러운 추상적 질문에 태성은 말문을 닫았다. 화정이 말을 이었다.

"사장님을 몇 주 보니까 카페를 차린 이유가 잘 보이지 않아요. 매출에 신경 쓰시는 것도 아니고, 가게도 아르바이트에게 자주 맡기시고, 홍보에도 별 관심이 없으시고..."

"그렇게 보이셨어요? 화정 씨는 꽃집 왜 하세요?"

"저는 일 년만 할 겁니다. 여기 권리금 키워놓고 나갈 예정입니다. 저는 돈 벌기 위해서 합니다. 명확해요. 수입창출이 먼저거든요. 예전에는 부동산도 그렇게 했어요. 부동산 자격증 따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게 부동산 차리는 거잖아요. 부동산 키워놓고 권리금 높게 받아 그런 사람들에게 팔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요. 자격증 따는 사람도 예전 같지 않고요. 인스타그램을 보니까 꽃집이나 카페가 좋을 것 같아 차렸어요. 사장님도 목적이 확실해야 할 것 같아요."

태성은 시험지에 빨간펜으로 엑스자를 긋는 것 같았다. 사업이 무엇이란 말인가? 회사에서도 업무에 쫓겨 살았는데 자영업은 더 많은 걸 요구했다.

"사장님 직장생활만 하셨다고 했죠? 회사는 하나만 잘하면 그만이지만, 자영업은 안 그래요. 회사에서 하던 모든 걸 혼자 하셔야 합니다. 운영, 재정, 영업, 제조, 마케팅, 직원교육... 이렇게 저를 따라다니실 일이 아니에요. 저도 사장님 좋은 분인 건 알겠는데요. 그냥 도성 씨 이야기 듣고, 사장님을 보니 답답해서 드리는 말입니다."

집에 와서 불도 켜지 않고 화정의 말을 떠올렸다. 몇 주간 혼자 짝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렸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화정이 아니었더라도 카페를 차리고 몇 달간 어떤 자세로 임했는지 돌아봤다. 화정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으니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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