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13. 프랜차이즈 폭격
배정환
화정과의 일이 있고 나서 아내 은지가 부쩍 생각났다. 은지는 화정과 많이 닮아 있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꾸 불쑥 일어났다. 사업을 바라보는 관점도 비슷했고, 자신을 답답해하는 것도 똑같았다. 남에게 손가락질당할 것 하나 없이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같은 자영업자로부터, 그것도 마음에 두고 있었던 여성으로부터 답답하다는 말을 들었다. 은지도 화정만큼 답답해했을까? 한집에 사는 처지다 보니 더 답답했을지도 몰랐다. 태성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직장 생활하던 때의 짧게 자르고 매일 수염을 깎던 모습은 어디 가고 덥수룩한 머리에 대충 맞춰 입은 청바지와 늘어진 남방에 소매를 걷어입고 있었다. 어찌보면 예술가로 착각할지도 몰랐다. 태성 편했지만, 마인드도 복장에 맞게 변했을까?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니 어떻게 변해가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카페를 차리고 반년을 잘 운영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어쩌면 자신을 자만하게 하는 건지도 몰랐다.
아르바이트 들어오는 도성에게 물었다.
"도성 씨 요즘 내 옷 어때? 카페 사장님 같아?"
"요즘은 편하게 입으니까 잘 모르죠. 더구나 앞치마까지 입고 계시니까요."
"그래? 답답해 보이지는 않아?"
"사장님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나요?"
"그래. 말해봐."
"사장님은 이 카페로 만족하실 건가요? 사실 카페라는 게 이 상태로 오래 할게 못됩니다. 사람들은 카페를 유행따라 다녀요.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카페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할 겁니다. 인테리어도 식상하고 메뉴도 그저 그렇다고 느낄 겁니다. 꾸준히 변화하셔야 합니다. 그걸 찾아내지 못하시면 실패는 불현듯 찾아오거든요. 제가 일하던 카페 사장님들도 다 비슷하셨어요. 잘 될 때 준비하셔야 하는데요."
태성은 뭔가 어설프게 만족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 자영업 쉬운 거 아닙니다. 치열하게 헤쳐나가셔야 해요. 조만간 저도 시험 끝나면 그만둘 텐데요. 아마 사장님 마음에 드는 아르바이트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제 자랑이 아니고요. 제가 여기 손님들을 대하는 모습을 잘 배워두셔야 합니다."
태성은 반박할 수 없었다. 태성에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도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도성이 언젠가 그만둘 거라는 생각도 미처 하지 않았다. 아직도 은지가 떠나며 답답해하던 그 모습을 버리지 못한 자기 자신이 보였다.
평소에 인사하고 자주 얼굴 보던 피자집 사장이 카페에 들어왔다.
"사장님 소식 들었어요? 저쪽 코너 길가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생긴다는데요?"
태성은 깜짝 놀랐다. 앞치마를 걷어 테이블에 던지고 코너길로 나갔다. 내부 공사 중이란 글씨가 보이고 '기가커피'라는 상표가 크게 보였다. 그 밑에 한 달 후 고객을 찾아뵙겠다는 인사말이 적혀있었다. 2,000원에 아메리카노를 판다는 프랜차이즈가 아닌가? 식당이 많아서 점심 손님 덕을 봤는데, 그나마 나눠 먹기 장사를 해야 할 판이었다.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공사가 마무리되고 기가커피가 오픈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확실히 손님이 줄었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았다. 키오스크까지 내놓고 줄을 서는 카페를 보며 처음으로 위기를 느꼈다. 아르바이트 세 명이 호흡을 맞추며 빠르게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규모의 경제가 무엇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멀리서 관찰해 보고 테이크 아웃 손님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태성도 한잔 구매해서 가지고 왔다. 맛도 나쁘지 않았지만, 객관적인 의견이 필요해서 피자 사장에게 가지고 갔다.
"커피 맛이 어때요? 차이가 느껴지나요?"
"커피 맛이야 태성 씨가 낫죠."
피자 사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나마 나는 피자라서 다행인데, 사장님은 타격이 있겠는데요. 요즘은 저가 커피점도 매장 규모가 상당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자가은 카페라 생각했는데 안쪽 홀도 장난 아니던데요."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모양입니다."
"파자집도 자꾸 생겨나고 나도 오래 못할 것 같아요. 힘드네요."
피자 사장님은 아메리카노를 입에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커피가 맛으로만 승부가 되겠어요?"
태성은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피자 사장님과 눈을 마주쳤다.
"네? 무슨 말이시죠?"
"카페는 잘 모르지만, 요즘 사람은 커피 맛으로만 카페를 가는 건 아니잖아요. 카페 문화라는 게 있으니까. 특히 동네 장사하는 우리는 손님들의 니즈를 잘 파악해야 해요."
태성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리스타 교육을 받을 때 동기들이 한 말이 생각났다. 자기들은 핸드드립을 배우면서 정작 쉽게 마시는 커피는 테이크 아웃점이라며 웃던 기억이 났다. 그래도 자존심을 가지고 커피 맛을 지켜보자고 했는데, 그 현실이 자신 앞에 다가와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믹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아닌가?
피자 사장님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이탈리아 정통 피자를 배웠어요. 그런데 가격 비싸면 맛있어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빨리 고객이 원하는 피자로 바꿨어요. 일단 근처에 아파트 단지도 많으니까, 아이들과 먹을 수 있는 큰 피자, 토핑을 아이들 입맛에 맞게 선보였죠. 그게 먹히더라고요."
태성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영업을 너무 쉽게 생각했나 봐요. 회사도 거래처 하나 만드는데 엄청난 시간을 가지고 분석하는데, 카페는 그냥 차리면 되는 줄 알았다니..."
피자님 사장님은 태성의 어깨를 다독였다. 태성은 가게로 돌아와 도성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또 들었다. "자영업은 경쟁이다." 이 말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태성도 고객 분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서 컨설팅을 받아야만 할까?
문을 닫고 다음날 재료를 사기 위해 대형마트로 차를 몰았다. 큰 사거리를 돌아가는데 감자탕 집에 천이 둘러져 있었다. 1, 2층에 프랜차이즈 감자탕이 있던 곳이다. 대형 프랜차이즈라서 꽤나 장사가 잘됐다. 식사 후 커피 마시러 몇 분의 손님이 들르기도 했다. 태성이 카페자리를 알아볼 때 식당이 많은 곳을 찾은 이유였다. 매출에 도움 되는 식당 중 하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하게 차를 세우고 감자탕 집 앞에 섰다. 우리나라 최대의 카페 프랜차이즈 <스타버즈> 마크가 보였다. 태성은 온몸이 감전으로 마비되는 것 같았다. 멍하게 서서 2층을 올려다보았다. 지난번에 <기가커피>는 서막에 불과했다. 상권이 발달하는 지역에 자본이 몰리고 있었다. 저자본으로 사업하는 것은 기름통 들고 불로 뛰어드는 것과 같았다. 큰일은 한꺼번에 찾아왔다. 조만간 도성까지 그만두고 나면 자기 혼자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지 무섭기까지 했다.
드디어 스타버즈 오픈하는 날, 태성은 사거리로 갔다. 어디서 그렇게 소문이 났는지 사람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고 있었다. 굿즈를 준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너도 나도 몰렸다. 태성에게 가장 도움이 되던 곳이 최대 경쟁자가 되고 말았다. 동네사람들은 스타버즈 커피가 맛이 없다고 했지만, 정작 거기 커피를 손에 들고 다녔다. 자주 오던 손님에게 용기를 내어 물었다.
"손님, 혹시 친구들이 왜 스타버즈 가는지 아세요?"
"음... 우리 친구들은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잖아요. 거기는 2층에 화장실이 있으니 펼쳐놓고 다녀도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작은 카페는 밖으로 나가서 번호키까지 눌러야 하고, 사람 있으면 기다리고, 남자들도 바로 옆에 화장실 이용하면 소리까지 나니까 좀 신경 쓰이긴 하거든요."
다른 손님은 주차문제를 이야기했고, 어떤 손님은 SNS로 받은 쿠폰을 말했다. 모두 태성이 할 수 있는 범위 밖의 문제들이었다. 대규모 자본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