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11. 다름을 좁히지 못하다
배정환
아내가 원하던 빵집을 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자기 일을 갖게 된 아내는 '열정이란 이런 거야'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듯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다. 학원에서 베이킹 수업을 열심히 듣더니, 그게 단순 취미가 아니었다. 빵집을 준비하기 위한 원대한 계획의 하나였음을 알았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집안일을 도우려 애썼다.
아내는 동네 빵집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공단에 영업까지 다니며 간식으로 빵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집안 살림하며 겸업으로 할 거라고 생각은 너무 안일했다. 일거리가 늘어나자 직원도 같이 늘어났다. 당연히 집에 들어오는 시간도 점차 늦어졌다. 배달만 전문적으로 하는 직원까지 생겨나며 가게에서 아내를 볼 수 없었다. 빵집은 자영업에서 회사로 변해갔다. 4대 보험까지 처리해 주는 직원까지 생겨나며 아내의 일은 빵에서 경영으로 나아갔다.
저녁에 들어온 아내와 식탁에서 마주 앉았다. 아내의 건강이 걱정되어 태성이 물었다.
"당신 피곤하지 않아?"
"아니, 나 너무 재미있어. 이제 뭔가 사는 거 같아."
아내의 눈에서는 행복이 글썽글썽 맺혀있는 듯 보였다. 수민이를 낳고 힘들어하던 얼굴이 이토록 생기가 돌 수 있는가? 대화를 나누면서도 엑셀에 입출 입고, 매상, 수금 정보를 넣고 있는 모습이 이제 어엿한 기업인의 모습으로 비쳤다. 은행에서 근무했던 이력 때문인지 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정리했다.
"당신도 좀 있으면 회사에서 나올 수 있어.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태성은 걱정한 적이 없는데, 아내는 무슨 걱정을 말하는 걸까? 태성은 직장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적당한 수입에 주말이면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삶이 좋았다. 걱정이라면 이번 휴가 때 가족과 어디를 가서 시간을 보낼지 계획을 짜는 정도라고 할까? 직장 생활이 쉽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을 보면 그나마 명퇴 걱정도 없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직장은 없을 거라 자부하고 있었다.
"내가 퇴사해야 하는 거야?"
"그럼 남의 밑에서 평생 일할 거야?"
태성은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래가 준비되지 않은 건 아니라 생각했다. 마치 자신이 멍청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한 아내의 눈빛이 싫었다. 아내의 말대로라면 자신은 비전도 없는 일에 평생을 바치는 사람이란 말인데, 태성은 직장에서 이사까지 올라갈 자신이 있었다. 이사가 되면 아내가 매일 나가서 하루 종일 고생하는 것보다 나은 수입이 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어느덧 아내의 수입이 태성의 수입을 앞지르고 있었다. 아내의 수입이 늘어날수록 태성은 자존심이 긁히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내는 태성이 만들어 놓은 직장생활을 무시했다. 아내의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태성의 목소리는 작아져갔다. 바빠지는 만큼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처음에 태성은 고맙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해서 되도록 일찍 퇴근해서 딸을 봐주려 했다. 하지만, 유치원에 다니는 수민이는 점차 엄마의 손길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저녁과 주말임에도 아내 없이 수민과 태성 부녀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태성이 대형 프로젝트를 맡아 마냥 일찍 오기 어려운 날이었다. 아내도 가게 문 닫는 시간이 점차 늦어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딸을 동네 할머니께 맡기기로 했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태성이 퇴근하고 수민이를 데려와 침대에 눕혔다. 태성은 수민이 혼자 자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밀려왔다. 딸을 키우는 건지 그냥 기르기만 하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늦게 퇴근하는 아내를 보자마자 큰소리를 질렀다. 그럼에도 아내의 말을 한결같았다.
"우리 일찍 모아 두어야 해. 그래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자기가 조금만 이해해 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태성이 꿈꾸는 삶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이게 우리가 원하는 삶이야? 우리 같이 여행 가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해?"
"자기는 자영업을 안 해봐서 그래. 언제까지 그 월급으로 우리가 살 수 있을 것 같아?"
아내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성공도 젊어서 해야 하는 거야. 자기는 너무 물러서 돈에 대해서 너무 몰라."
"그냥 버는 만큼만 쓰면서 살면 되잖아. 왜 그렇게 돈에 연연해?"
끝없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얼굴 보는 시간도 별로 없었지만 밤늦게 이런 다툼이 이어지며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수민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아내는 너무 바쁘다며 입학식에 대신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태성은 출근하자마자 병원에 간다고 외출신청을 했다. 딸 입학식에 간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태성은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아 아내와 진지하게 대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의외로 아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나 2호점을 차리고 싶어. 아파트를 빼서라도 하고 싶은데 해줄 수 있어?"
"그래, 빵집이 잘 되는 것은 사실이야. 당신은 이미 성공했어.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잖아. 수민이가 크면 그때 해도 늦지 않아."
"수민이 수민이 하지 마. 수민이가 어때서? 잘 크고 있는데."
태성은 어이가 없었다. 딸을 생각하는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다른 집 애들은 뭐 다르게 커? 다들 어린이집 다니고, 적응하고 그렇게 컸잖아. 우리는 별 다르게 컸어? 왜 이리 유난을 떨고 그래? 나도 수민이가 안쓰럽지만, 당신이 자꾸 불쌍하다고 하는 정도는 아니야!"
태성은 아내의 사랑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튼 물들어올 때 배 저어야 한다고, 지금이 기회야. 그러니 2호점 차릴 거야."
"안돼! 당신 어디까지 갈 거야? 우리 수민이도 생각 좀 해줘."
다시 다툼은 이어졌고 아내는 결국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우리 이혼하자. 당신과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너무 다르다. 난 일로 성공하고 싶어."
3년여 동안 이어져온 풀리지 않는 숙제에 태성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마음에도 없던 말을 내뱉고 말았다.
"꼭 그 방법밖에 없다면 네 맘대로 해라."
그렇게 두 사람은 이혼절차를 밟았다. 아내에게 수민이를 맡기면 큰일 날 것 같아 태성이 키울 거라고 고집을 피웠다. 포기 못한다고 고집을 피우던 아내도 결국 수민이를 양보했다. 태성은 딸만은 지키고 싶었다. 아내에게서 잃은 가정의 행복을 지키고 싶었다. 수민이를 보고 있으면 엄마 없이 잘 키운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수민이가 엄마를 만나고 와도 일부러 안부도 묻지 않았다. 다만, 수민이가 용돈을 두둑히 쓰는 것 같은면 아내의 사업이 그런데로 잘 굴러간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하면 카페를 살려갈지 고민하고 있으니 문득 아내가 생각났다. 아내에게 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머리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