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성에게 도성이 찾아왔다. 태성이 반갑게 도성을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왔네. 잘 지내지?"
"네 형님, 요즘은 어때요?"
"잘 되고 있어. 카페 경영하는 것보다 컨설팅해 주는 게 훨씬 재미있네."
"다행입니다."
"이젠 수민이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 인테리어, 소품, 독서 모임, 메뉴까지 혼자서 다 끌어간다니까. 내 딸 맞는 거 같아."
태성은 수민이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수민이가 들어왔다.
"우리 딸 왔어? 다녀온 일은 잘 됐구?"
수민이는 평소와는 다르게 얼굴이 어두웠다.
"무슨 일 있니?"
수민이는 아빠에게 다가왔다.
"아빠. 엄마가 아프데."
"어디가 아픈데?"
"얼마 전에 쓰러져 병원 갔는데 암 초기라고 진단받았데."
수민이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태성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10년을 영락없이 살았는데 아프다는 말에는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연락하기에도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형님, 연락해 보시죠."
"자네는 몰라. 수민 엄마는 성공이라면 자다가도 뛰어나가는 사람이야.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아마 아파도 일하고 있을걸. 나갔던 사람은 안중에도 없을 거야."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태성은 도성을 답답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거봐 이해 못 하잖아. 살면서 얼마나 싸웠다고. 성공했다는 소식은 들었어. 참나, 그 사람은 성공했으면 잘 사지…. 왜 아프고 그래…. 아마 이러고 있는 나를 보면서 비웃었을 거야. 직장 생활 좋다고 떠들더니 고작 이러고 있냐고."
"형님도 꽤 성공했는데요. 고생은 하셨지만, 그래도 이 분야에서는 나름 알려지고 있잖아요."
"그 사람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이런 모습으로 찾아가는 것도 그러네."
태성은 수민이에게 말했다.
"나 대신 엄마에게 자주 찾아가 봐라."
갑자기 도성이 태성 앞에 무릎을 꿇었다. 태성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도성을 일으켰다.
"뭐 하는 건가?"
"형님, 저를 여기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무슨 소린가? 보내다니?"
수민이가 옆에서 나섰다.
"아빠, 실은 도성 오빠는 엄마 회사 책임자예요."
"무슨 말이야? 책임자라니? 공부하는 거 아니었어?"
도성이 대답했다.
"사장님이 회사 생활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저에게 도와주고 오라 하셨어요."
태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제야 머릿속에서 상황이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버럭 화를 냈다.
"그러면 지금 모두 나를 속인 거야? 내가 바보 같아서 도와줬단 말이야? 그럼 이게 다 그 사람 계획이란 말인가? 나는 자네를 동생처럼 대했는데... 가게나. 꼴 보기도 싫네. 다들 위선자야!"
"죄송합니다. 그런데요. 제가 형님 동생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거짓으로 한 거 아닙니다. 형님을 돕고 싶었어요. 사장님도 그래서 보낸거구요."
"뭔 동생이야! 됐어."
"형님이 미워한 아버지, 제 아버지기도 합니다. 15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형님에게는 알리지 못했습니다."
태성은 더 이상 서 있지 못하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여자의 아들이 자네란 말을 하는 거야?"
"네. 죄송합니다. 언젠가 해야 할 말인데 오늘에야 하게 됐네요. 형님이 인정하지 않으시니 형수님이라고 할 수도 없겠네요. 사장님은 지금도 형님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계세요. 성공만을 바라보고 뛰었던 자신을 후회하고 계시면서 말이에요. 가정을 버린 벌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도성이 자네가 왜 거기서 일해?"
"긴 이야기는 나중에 할게요."
"지금은 내가 너무 정신이 없으니 돌아가!"
태성은 자리를 박차고 사무실을 나왔다. 뒷산으로 올라갔다. 멀리 보이는 동네 풍경을 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 가정을 버린 아버지를 미워했다. 미움을 안고 살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허무했다.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 자기도 가정을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아내가 아프다. 어제까지만 해도 행복했던 날이라 생각했는데 불행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태성은 찬찬히 도성을 만났을 때부터 오늘까지 도성이 어땠는지 생각해 봤다. 처음 카페에서 오지랖을 발휘할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렇게 자신을 돕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인상도 좋았고, 인사성도 밝았다. 1년을 넘게 같이 있으면서 친동생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친구가 정말 배다른 동생이라니…. 무슨 소설도 아니고,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한 회사를 책임지는 친구라는 말을 들으니 왜 그렇게 경영이나 사람 대하는 능력이 탁월했는지 궁금했던 해답이 보였다. 저런 친구들을 두고 일하는 은지는 어떤 리더십을 갖추고 있단 말인가? 이제 태성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었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