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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Jul 08. 2024

38. 회복

태성은 일주일 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수민이는 엄마가 아픈데 왜 그렇게 생각이 많으냐고 재촉했지만, 태성은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 이러다 엄마 떠나면 후회하려고 그래? 아무리 헤어진 지 오래됐지만, 엄마는 아빠를 돕고 싶어 했어. 아직도 엄마 마음을 모르겠어?"

"그런 사람이 왜 먼저 다가오지는 않는 거니?"

"아빠, 지금 그런 게 중요해? 아빠도 지금까지 혼자산건 엄마를 못 잊은 거 아니야?"

태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왜 혼자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수민이만 잘 되면 될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어쩌면 가정을 깨뜨린 자신에게 벌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태성은 은지에게 가보기로 했다. 용기를 내야 할 것 같았다. 어쩌면 깨진 가정을 다시 바로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굳모닝 공장은 제법 컸다. 지나가면서 보기는 했지만, 막상 들어서니 더 웅장해 보였다. 마치 은지가 웅장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그토록 반대했던 사업을 이렇게까지 키우다니... 막상 사업이란 걸 해보니, 성공이란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느끼는 바가 많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은지가 소파에 앉아 태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왔네."

은지가 짧게 인사했다.

"얼굴 좋아 보이네. 몸은 괜찮아?"

"많이 늙었지... 뭐..."

"그래 시간 참 빠르다." 

수민이는 아빠와 엄마를 두고 나갔다.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커피를 가져온 수민이가 입을 열었다. 

"엄마, 수술하고 나면 사업에서 물러나기로 했어."

"그럼 이 큰 회사를 누가 경영해?"

"도성 삼촌이 해야지. 아빠도 돕고."

"내 것도 아닌데 아빠가 뭘 도와...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말고."

은지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당신과 헤어져 살고 알았어. 행복은 현재에 있다는 사실을... 내가 너무 미래의 행복만 바라보며 수민이에게도 당신에게도 가혹했어. 이렇게 시간이 빠를 줄이야. 우리 가정의 행복은 어디로 가고 이렇게 다 커버린 딸과 중년의 우리만 남았네."

도성은 아무런 말도 없이 커피를 마셨다. 수민이가 나섰다.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야, 매일 나에게 말했어. 진작에 준비하면서 살걸... 나이 먹고 사업하려니 맘처럼 되지 않는다고 했어. 사업하는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고..."

태성과 은지는 동시네 피식하고 웃었다. 태성이 말했다.

"우리 둘 다 너무 극과 극을 달렸나 보다. 중간이 없어. 중간이..."

태성은 은지 수술하는 날 수술실을 지켰다. 수술 끝날 때쯤 수민이가 병원에 왔다. 

"아빠, 엄마 사진이야."

사진에는 은지가 은행에 근무할 때 모습이 담겼다.

"이 모습에 반해 매일 은행에 갔다면서."

"그랬지. 그런데 왜 그렇게 쉽게 헤어졌을까?"

"너무 젋었나보지. 두 분 다 열정이 넘쳐서."

그렇게 열정 넘치던 은지도 나이를 먹고, 아픈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니 고집 피웠던 과거가 후회로 다가왔다. 그저 함께 하면 그게 행복인데... 무슨 행복을 바라고 여기까지 왔을까? 

담당의사가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다. 회복실로 옮긴 후 오랜만에 세 사람이 병실에 남았다. 수척해진 은지가 말을 꺼냈다.

"이렇게 같이 있는 것이 행복인데... 이걸 이제 깨닫다니."

"우리는 참 바보 같은 사람이야."

태성이 은지의 손을 잡았다. 수민이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은지도 따라 울었다. 

"엄마, 울지 마, 회복에 안 좋아."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도성과 미진이 들어왔다. 미진이 태성을 손을 잡았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때는 내 생각만 하면서 살았어요."

태성의 사과에 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용서를 했다고 볼 수도 없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물러져 있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사업이 망하고 스트레스로 쓰러지셨어요. 돌아가시면서도 태성 씨와 엄마 걱정을 하셨어요. 죽을죄를 지었다고... 나중에 꼭 갚아달라고 하셨어요."

태성은 예전 이야기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미움과 고집으로 버린 수십 년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현재 같이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삶이었고, 그에 맞춰 다른 가족은 또 나름대로의 삶을 살았으면 됐다. 누구를 원망하며 보낼 시간에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은데 말이다. 

"도성이 혼자서 잘 키우셨네요. 진짜 친동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도성이 말을 꺼냈다.

"저도 외롭게 자라서 그런지, 형수님과 형님과 일하는 것이 좋았어요. 두 분이 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며 좋은 분들이 헤어져 사는 게 마음 아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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