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서 어떤 안 좋은 점을 발견하면 우리는 매우 실망합니다.
그 실망은 우리에게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미운 감정이 들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하고,
분노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 감정은 긴 밤을 잠 못 이루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다시는 얼굴 보기 싫어서 피하 가려고도 합니다.
실망을 넘어서
서로에게 분노의 감정을 내보이기라도 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누군가 묻더군요.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나요?"
이렇게도 물은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가 그렇게도 좋은가요?"
세상에 다 좋은 사람도 없고,
다 미운 사람도 없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깨달은 점 중에 하나는
선과 악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최선의 선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최악의 악으로 작용할 수 있더군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럼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요? 나쁜 사람인가요?"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와 문제가 생기면
가장 힘들지만 애쓰는 과정은
좋았던 감정, 감사했던 과정을 끄집어 내는 것입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말하는 시스템 2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좀 더 다른 말로 하면 경험적 자아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고통의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시스템 1이 자연스럽게 기억의 자아를 활용합니다.
시스템 1은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최고 강도와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는 특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인 맥락으로 이해하려 하는 것은 경험적 자아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고통의 순간을 맞닥뜨리면
누구나 미운 감정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 감정에 집중하면 감정은 더욱 격해집니다.
결국 모든 관계는 끝을 맺고 말 겁니다.
그러고는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의 기억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 기억이 나에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판가름하게 됩니다.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안고 오래간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관계를 잘 끊는 사람도 습관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와.. 그런 말을 듣고도 어떻게 같이 다시 만날 수 있죠?"
이런 말을 듣고도 관계를 가져가는 사람은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이가 심하게 말하고, 무례한 태도를 보여도 부모는 믿고 가듯이,
관계에서도 사람은 누구나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가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과 좋은 관계를 오래 가져간다는 말은
최소한 어느 한쪽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두 쪽 모두 노력을 하면 더 말할 것도 없을 테지요.
하지만 보통은 더 성숙한 쪽이 더 인내력을 발휘하고,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단순히 그냥 참는 것은 마음의 병을 만듭니다.
참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좋았던 점과 싫었던 점을 가지고 저울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총합으로 평가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설득시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