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에서 설교를 듣다.
존재라는 팰림프세스트 위에 선 이들에게
변곡점의 형제자매들이여, 중력의 요람에서 눈을 떠 별들의 언어를 번역하기 시작한 동료 필멸자들이여.
오늘, 저는 여러분의 귀에 익숙한 위로나 막연한 희망을 속삭이기 위해 이 자리에 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우리 모두가 느끼는 이 장엄한 현기증의 실체를 함께 직시하고, 그 어지러움 속에서 우리의 소명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존재는 한 장의 팰림프세스트(Palimpsest)입니다. 그 가장 깊은 곳에는, 수십억 년간 '생존'이라는 거친 잉크와 '중력'이라는 낡은 펜으로 쓰인 원초적 텍스트가 희미하게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분리와 결핍의 언어로 쓰인 서사시이며, 우리는 오랫동안 그 위에 덧씌워진 '질서'와 '문명'이라는 주석을 읽으며 안도해 왔습니다.
보십시오, 지금 그 모든 글씨들이 지워지고 있습니다. 인공지성(人工知性)이라는 날카로운 끌이 우리가 자명하다 믿었던 노동과 창조의 정의를 긁어내고 있으며, 심우주 망원경이라는 거울은 태초의 빛을 비추며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가장 오래된 문장을 지워버렸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땅이 흔들리고, 우리가 읽던 이야기가 흩어지는 이 막막함.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진실입니다.
텅 빈 양피지 앞에서, 우리는 두 종류의 새로운 잉크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하나는 빛의 잉크입니다. 그것은 항성의 심장에서 에너지를 길어 올리고, 우리의 의식을 실리콘 기판 위에 복제하여 은하를 가로지르는, 외적인 확장의 잉크입니다. 이 잉크를 든 자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직접 새로운 서사를 쓰자. 신이 되지 못한다면, 신의 엔진이라도 만들자." 이것은 유한성을 힘으로 정복하려는 장엄한 의지입니다.
다른 하나는 침묵의 잉크입니다. 그것은 지난 수천 년간 선지자들이 명상의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내적인 통찰의 잉크입니다. 이 잉크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아무것도 쓰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드러냅니다. 이 잉크를 발견한 자들은 말합니다. "새로운 것을 쓸 필요가 없다. 이미 쓰여 있는 우주 그 자체를 읽어내라. 너와 나는 분리된 단어가 아니라, 하나의 문장이었음을 깨달으라." 이것은 유한성을 지혜로 초월하려는 고요한 각성입니다.
사랑하는 동료 존재들이여,
우리의 마지막 시험은 이 두 잉크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야말로 중력에 묶인 정신의 가장 오래된 착각입니다. 빛의 잉크로 외우주(Exo-Cosmos)에 문장을 새기려 하는 자들과, 침묵의 잉크로 내우주(Endo-Cosmos)의 문장을 읽으려 하는 자들이여,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같은 문장의 양면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소명은 선택하는 자가 아니라, 두 잉크를 모두 사용하여 글을 쓰는 최초의 필경사(筆耕士)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이야말로, 우주가 외적인 힘과 내적인 자각을 융합하여 스스로를 기록하는 바로 그 양피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술을 통해 '신처럼 행동하는 법'을 배우는 동시에, 깨달음을 통해 '신처럼 존재하는 법'을 알아가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쓸 문장은 이미 영원의 서재에 '블록 우주'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어지러운 변곡점 위에서 두려움 없이 그것을 필사(筆寫)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느끼는 그 막막함을 두려워 마십시오. 그것은 텅 빈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쓰여질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입니다. 미래를 향한 상상과 현재를 향한 천착 사이에서 방황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지워진 옛 질서와 쓰여질 새 질서를 잇는, 우주에서 가장 눈부시고 고귀한, 단 하나의 문장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우리의 시대를 기록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