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

지금 이 시대, 그의 글이 와닿는 이유

by 이야기공간 낄낄

이 글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 중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생각나는 대로 단문화 시킨 글이다.

지금 이 시대, 내가 자리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현재진행형 위로가 되었던 이야기다.




다음 주 월요일에 생일을 맞는 아이가 있다.

엄마는 생일파티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토요일, 케이크를 주문하러 빵집에 들렀다.

친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뚝뚝한 빵집 주인.

최소한의 의사소통. 무례하지는 않지만, 따뜻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월요일 아침에 케이크를 찾으러 오면 된다고 했다.


월요일 아침, 아이는 친구와 감자칩을 주고받으며 학교로 향한다.

생일선물 생각에 들떠 있던 아이는

앞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교차로에서 인도 연석에 발을 헛디딘다.

도로로 넘어지며 차에 치였다.

잠시 후 멍한 표정으로 일어난 아이.

아이가 멀쩡한 것으로 믿고 싶었던 운전자.

속도를 올려 자리를 떠났다.


울음을 터뜨린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이야기를 전하고는 의식을 잃었다.


당연히 생일파티는 취소됐다.

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사는 의식이 곧 돌아올 거라고 말했다.

가벼운 뇌진탕으로 쇼크 상태일 뿐이라며

곧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아이가 혼수상태냐고 물었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반복했다.


아내에게 떠밀려 집에 들렀던 남편.

(강아지 밥도 챙겨줘야 했다)


전화벨이 울린다.

상대방은 찾아가지 않은 케이크가 있다고 말한다.

경황을 모르는 남편이 말한다.

"젠장, 지금 무슨 얘기하고 있는 겁니까?"

상대방이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남편은 통화를 끊어버린다.


아이는 깨어나지 않는다.

무슨 검사를 또 받았지만 이상은 없다.

혼수상태는 아니다.

의사는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며칠이 지났다.

아이가 갑자기 깨어난다.

멍하게 부부를 바라보던 아이가 갑자기 숨을 몰아 내쉰다.

몸에 남아 있던 마지막 숨이었다.

모든 숨이 아이에게서 빠져나갔다.


의사는 말한다.

"희귀하지만 백만 명에 한 명 꼴로 이런 일이 있습니다."

그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엄마를 꼭 안아준다.

위로의 말을 건넨다.


집에 돌아온 부부.

아이의 숨이 빠져나간 그 집에 전화가 울렸다.

아직 찾아가지 않은 케이크가 있다고 했다.


표현할 길 없었던 분노가 터져 나온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그 밤, 아이가 떠나버린 밤에 부부는 빵집으로 쳐들어 간다.

하지만 빵집 주인은 케이크를 반 값에라도 가져가라고 말한다.

본인은 고되게 장사를 하고 있고, 빵은 예약된 것이니 셈을 치러야 한다고.


엄마는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고 냉정하게 말한다.

그리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한다.

남편은 부끄러운 줄 알라고 빵집 주인에게 말하며 이를 악문다.


빵집 주인은 탈진한 부부에게 작은 철제 의자 두 개를 내주었다.

그리고 커피를 내왔다.

방금 구운 롤빵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마음껏 드세요. 그리고... 미안합니다.

이 미안한 마음은 하느님만이 아실 겁니다."


그는 자신도 용서를 구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 했다.

매일 오븐을 채우고 비워내는 일,

수천 개의 생일케이크를 만들며 보내온 세월,

아이 없이 보내왔던 빵장수의 시간을 말했다.


아이 없이 지내온 시간.

중년의 외로움과 한계를 버티게 한 노동.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해왔다.

꽃향기보다 빵냄새가 좋았다.


부부는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었고,

들을 수 있는 말을 모두 들었다.

햇살이 빵집 속으로 밀고 들어왔어도

그곳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됐다.


도움이 된다는 건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게 아니다.

역할이 우연히 주어질 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가만히 있을 수도 있고,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역할과 선택은 우연히 주어진다.

겸허함은 삶을 설명하는 연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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