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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기 Mar 26. 2019

나의 운 좋은 생존에 관하여

나는 어디서 살아야 할까?


    

클럽 버닝썬에서 일어났던 약물 강간 등 일련의 사건이 드러나고 있다. 클럽 하나가 아니라 공권력까지 거미줄처럼 얽힌 문제였고 그 과정에서 여러 남성 연예인이 불법 촬영물을 공유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졌다. 이 사태만큼 끔찍한 건 ‘재수 없이 걸렸네’, ‘이런 거 다들 하지 않느냐’는 반응이었다.


세상에. 이래도 일부 남자들의 일로 일반화하지 말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부디 현실에서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해자의 상황은 조금도 염두 하지 않은 채 가해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이입하는 댓글이나 기사는 다 읽지도 못할 정도였다.


조금 다른 말을 하자면, 나는 클럽을 간 적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곳이었는지 몰랐다. 내가 아는 거라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본, 여성은 무료입장인 곳이 많았으며 삐끼에게 붙들려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선보이는 거다. 남성은 테이블에 앉아있고 여성은 간택 받는. 성인이 되어 클럽을 다녀온 친구는 EDM에 맞춰 춤을 추는 건 재밌지만 담배 냄새가 심하고 동의하지 않은 신체 접촉이 많다고 했다. 나는 순진하게도 이것이 시사하는 바를 명확히 알지 못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나는 하교를 하다가 승용차를 운전하던 남자가 차창을 열어 번호를 달라고 한 적도 없었고 손찌검을 하거나 사생활을 무시한 애인이 있지도 않았으며 직장에서 상사가 직접적으로 몸을 더듬은 적도 없었다. 

내가 운이 좋은 걸까?


버스정류장에서 여학생의 얼굴과 몸을 품평하고 조롱하는 남학생 무리가 있었고 취업 시장의 현실을 직시하라며 노골적으로 생김새를 지적한 교사가 있었고 수많은 성희롱, 성추행을 했지만 공론화가 된 적도 없는 남성 동료가 있었다. 

나는 운이 좋았던 걸까?


진정 운이 좋았다면- 아니 그러지 않더라도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 게 당연한 거다.


학생 때 배운 성폭행은 남성의 성기가 강제로 ‘삽입’해야,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껴야 성립되었다. 지금은 그 되먹지도 않은 교과서가 개정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일이 없었던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인가? 우연히 길을 마주친 사람이 홧김에 나를 죽이지 않고 일하는 중 자존심이 상한 고객이 나를 위협하지 않아서? 


한낮에도 택시를 탈 때는 친구에게 차량번호를 보내주며 제대로 가는 길인지 긴장하는 게,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성의 시야에 벗어나려 빠르게 걸었던 게, 늦은 시각 자취방에 들어갈 때마다 숨을 죽였던 게, 공중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구멍이 없는지 살핀 일련의 시간은 여상한 일인가?     




나는, 여성은, 여성으로 인식되는 몸은 철저히 상품으로 취급되었다. 미디어에서 성녀와 악녀로 나눠 한쪽은 추앙하고 한쪽을 비난하는 것처럼 등급이 매겨지고 높은 점수를 트로피로 여기게끔 학습시킨다. 어렸을 때부터 얘는 눈이 커서 예쁘네, 인물이 있네 없네 따위의 평가를 받으며 학교에서는 여자애들의 외모 서열을 매기는 남자애들과 같은 교실에서 생활하고 취업 준비를 할 땐 기업이 원하는 이미지에 맞추기 위해 치아교정, 쌍꺼풀 수술 등을 하며 안경을 벗고 화장을 한다.     


나는 클럽을 간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사회는 여성을 재화의 하나로 다루었다. 나이가 들거나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값이 깎이는 세계 절반의 상품.


중추신경 마비제는 몇 시간이면 구할 수 있고 돼지흥분제를 여성에게 사용하려 했다는 범죄행각을 유머로 소비할 수 있는 권력을 알게 된 나는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천국을- 유토피아를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지옥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이만하면 괜찮지, 하며 안주하길 바라지 않는다. 한창 여성 혐오 범죄와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가 화두에 올랐을 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이 망할 조국을 떠나게 되길 빌었다.


태어난 나라에서 영원히 살 필요는 없고 다른 나라에서 생활할 거란 꿈을 키우긴 했지만 그 기점으로 난 더 절박해졌다. 해외에서 장기간 체류할 수 있는 수단을 알아보며 그 나라 말을 공부하고 진로를 계획했지만, 하루걸러 들려오는 인종차별자의 만행이 들려올 때면 나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초면에 ‘니하오’라고 하는 게 왜 무례한지, ‘다른 동양인/한국인과는 달리~’라는 표현이 왜 불쾌한지 모르는 사람들, 동양인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거친 나는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나는 2등 시민이지만 다른 나라의 나는 시민으로 받아들여지기나 할까? 길을 걷다가 누군가 뛰쳐나와 소리를 지르고 가거나 번화가에서 집단린치를 당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나고 자란 이 나라에서조차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단언할 수 없었다. 초면에 반말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위협을 당하거나 성추행범을 만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난 여성이었고, 이 국경을 벗어나면 동양인이기까지 한데.      


지극히 상식적인 세상을 바라는 나는 너무 이상적인 꿈을 꾸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내가 선택하지 못하는 부분–설령 선택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으로 불합리함을 인내해야 하는 게 평화로운 세상인가? 그들이 세운 잣대로 만든 왕관을 받으려 애써야 하나? 미소와 순종으로 그들이 상상하는 고정된 역할을 감수하면서? 


내가 왜?      




나는 어디서 살아야 할까? 어디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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