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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기 May 24. 2019

보이는 몸, 보이지 않는 몸_(2)

탈코르셋, 내 몸에 뭘 걸칠지는 내 마음이다


       

상관없는 얘기를 먼저 해보자. 나는 보수적이라는 회사에 다닐 때 머리를 ‘샛노랗게’ 해서 다닌 적이 있는데 엄연히 말하면 탈색을 세 번 하고 겉에는 베이지 핑크를 안에는 핫핑크로 염색했으나 일주일도 안 되어 색이 죄다 빠지는 바람에 금발이 되어버린 거다. 

그때 있었던 구설수는 먼저 밝혔었지만, 간간히 ‘젊음의 치기’로 이해해주는 분 중 어떤 과장님은 내게 세월이 지나면 언젠가는 머리색도 더 다양해질 거라며 미국에서는 브래지어도 안 하고 출근도 한다더라며 속삭였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하고 덧붙이는 과장님 앞에서는 그저 웃기만 했지만-     



음, 저 지금 브라 안 했는데요.     



입사부터 퇴사까지 출근한 횟수를 헤아린 후 꼽아본다면 브래지어를 한 날보다 안 한 날이 많을 거다. 어렸을 때는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게 성장의 지표로 여겼다. 미디어에서는 여성의 가슴 크기에 따라 매력 있는- 정확히는 여성성의 ‘’을 나누었다. 


그래서 또래에 비해 성장이 더딘 몸이 속상했다. 한창 걸그룹 멤버들에게 ‘꿀벅지’니 ‘베이글녀’니 하는 별명을 붙였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런 섹시 아이콘 중에는 미성년자도 있었지만 그때는 그런 게 당연했었다. 

너무 마르지 않고 보기 좋게 살이 붙었지만 지방이 출렁거리면 안 되는. 웹툰도 여성의 가슴이 성적인 도구로만 이용되는 장면이 빈번하게 나왔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때였다. 


어쨌든 이유도 모르고 매체에서 찬양하는 ‘-컵’을 동경했던 시기를 지나 여성에게만 강제적으로 부여되는 꾸밈노동, 코르셋이 가시화 될 즈음 나는 무의미한 브래지어를 벗고 짐처럼 남겨두었던 화장의 압박을 내려놓았다.


그게 쉬웠던 이유는 애초에 내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 때는 졸업식 때나 친구의 손을 빌려 화장을 받았을 정도로 메이크업과는 인연이 없었고 입사를 했을 때도 어떤 대단한 눈초리를 받은 게 아니라 민낯에 안경을 쓰고 다녔다. 립스틱도 버릇하지 않아서 창백한 입술로 다니다가 다른 여성 직원의 배려인지 뭔지에 의해 색이 나는 립밤을 발려진 후 출근할 때 한 번 바르는 수준이었다. 


렌즈는 끼기도 끼고 있을 때도 벗기도 불편했고 화장은 얼굴 위에 한 겹 올라간 느낌이 싫었으며 브래지어는 땀이 차고 갑갑한 주제에 어깨끈까지 내려가는 게 짜증 났다. 그래서 셋 다 관뒀다. 하나씩 얘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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