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 단련_이슬아 지음(2019, 헤엄 출판사)
이슬아 작가의 글을 읽으면 쉽게 벅차오른다. 한 장씩 줄어드는 책의 부피가 아쉽고 날카로운 설명에 감탄한다. 처음엔 진실과 상상의 범위를 가늠하려 했지만 이내 그렇게 착각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수필이라도 글은 가공되어 살이 붙고 골자가 다듬어진다. 나만 해도 어디까지 드러내고 어떻게 배치할지 ‘선택’해서 수필을 적는데 말이다.
너무 잘 쓴 글-나와 주파수가 맞는 글을 읽으면 본능적으로 글을 그만 쓰고 싶어진다. 이름을 붙이자면 지망생에 불과한 내가 다짐하기엔 웃기지만 놀라운 문장을 창조하는 사람을 알게 된다면 그런 감각은 필연이다.
산문집을 읽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책 안에 담긴 생생한 언어들을 알고도 기죽지 않고 내가 쓴 글을 마무리해야 할 용기가.
작년에 출간한 <일간 이슬아 수필집>처럼 대부분의 ‘일간 이슬아’를 모으진 않아 아쉬웠지만 네 가지의 갈래에 따라 모아둔 비슷한 온도의 글은 다정하고 예민해서 좋았다. 마음을 울렸던 문장들을 다 옮겨 적지는 못했지만-건초염이 도질 게 확실했다- 베끼지 않고서는 못 넘어갈 거 같은 표현들이 있었다.
“조심조심 살아가는 느낌이다. 무서운 게 많아서 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꼭 하고 싶은 말을 누구 하나라도 시작한다면 이 가족은 파탄이 날 것이다.”
“인간은 불행의 디테일을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확히 불행해지는 존재 같았다.”
“더위에 한 방 맞은 것처럼”
칠일 중 오일을 여자 기숙사에서 자야 했던 슬아의 이야기는 뭉퉁그려 느끼고 쉽게 잊어버리는 감각을 세밀하게 복기한다. 나와 그 애가 얼마나 말이 잘 통하는지와 별개로 학교 안에서는 그게 전부일 수 없었으니까. 소위 서로의 ‘지위’가 괜찮고 아니고를 결정하고, 그것 때문에 나와 꽤 잘 맞았던 친구를 싫어하거나, 친구에게 배척당하는 게 자연스러웠던 곳이었으니까.
“내가 부끄러워하는 순간 더욱 손쓸 수 없이 초라해지는”
나는 연약하고 비겁했다. 연약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상대방에게 화가 났고 비겁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쉽게 겁을 먹고 상상하고 움츠러드는 경험은 몸 한구석에 아직도 남아있다. 중학생이란 무엇일까, 삼 년 동안 내 삶을 힘들게 한 한심하고 귀엽고 끔찍한 나와 너, 다른 동갑내기들.
“나는 최대한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중략) 꽤 멀리 도망쳤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받았던, 예민하지만 섬세하지는 못했던 시절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깃든, 내가 머물렀던 어린 시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