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과 노력
계속 쓸 수 있을까 의심할 때마다 내게 재능이 있는지 확인받고 싶었다. 타로, 사주, 신점과 같은 불분명한 예언에 기댄 것처럼. 믿음직스러운 누군가가 너는 재능이 있으니 조만간 빛을 볼 거라며 단언해 주길 바랐다.
‘글을 쓰면 다 작가지’라는 태평한 문장은 무용했다. 나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였으니까.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는 5월에 환급이 아니라 추가 납부를 할 만큼 벌고 싶었다. 국세청에서 ‘네가 이렇게 못 벌 줄 몰랐어, 미안’하며 내주는 환급금은 마냥 기뻐하기엔 씁쓸했다. 나 역시 세무사를 수임해 왜 이렇게 떼가는 게 많냐며 투덜거리고 싶은데, 아직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세상에 잘 팔리는 작가는 넘쳐났다. 개성이 진한 글로 독자를 휘어잡는 작품은 쏟아졌고, 나는 그런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잔잔한 불안함을 느꼈다. ‘이런 작품이 있는데 내 글을 읽을까?’ 하며 우울한 패배감에 젖기도 했다.
내 글만의 매력이 있을 거야, 그 매력은 나만의 고유한 강점일 거야, 그걸 갈고 닦아 보자.
그런데…… 내 강점이 뭐지?
나는 가만히 내 강점을 고찰하는 대신 일단 쓰기나 했다. 꾸준히, 이따금 달리는 댓글을 보며 ‘이게 내 글의 특징인가?’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저 계속, 의심도 고찰도 뒤로 한 채 성실하게.
계속 쓰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오늘 쓴 글이 어제보다 나은지는 몰라도 어제도 오늘도 글을 썼다는 사실만은 명료했다. 재밌든 구리든 간에 매일 두 편의 글을 완성한 건 단순한 진실이었으니까. ‘이 글 재밌나?’하는 의심보단 오늘도 썼다는 지표가 훨씬 명쾌했다.
그렇게 4년을 썼다. 아주 가끔 게으름을 부리기도 했지만 대체로 성실하게, 한 달에 10만 자에서 15만 자 사이를 집필했다.
Q. 그러면 노력한 만큼 쭉쭉 잘 풀렸겠네요?
A. 아니요.
10질이 넘는 소설을 완성하며 허투루 날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집필 중반부쯤 힘이 빠져 괴로워할지언정 그날그날 할 수 있는 만큼 힘껏 썼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노력과 상응하는 결과를 얻진 못한다. 바라던 성과를 거둔 적보단 미미한 반응조차 없이 묻힌 적이 압도적으로 많다.
공들여 작업한 소설이 외면받는 경험은 흔하다. 게다가 똑같은 시간을 들였다고 해서 똑같은 결과물이 나오지도 않는다. 굳이 타인과 비교하지 않아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글을 쓴다. 문장의 상태도 짜임새도 전체적인 완성도도 제각각이다. 노력은 이 변덕스러운 글의 특징을 완벽히 통제하지 못한다. 다만 내 글이 100까지 구릴 수 있다면 이 구림의 상한선을 90으로, 80으로, 70으로 낮춰지길 바랄 뿐.
‘어떤 사람’이 작가가 되어야 하느냐에 관한 의견은 도처에 넘쳐난다. 유튜브를 포함한 여러 소셜미디어엔 ‘웹소설로 1억 벌 수 있는 적성 테스트’ 따위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다.
재능 있는, 1억, 적성, 재능,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한때는 그들이 말하는 조항에 내 경우를 대입하며 항목 하나하나에 좌절하거나 기대하기를 반복했다. 어떤 게시글에선 나 정도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했고 어떤 영상에선 그 정도론 어림도 없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연 매출 1억을 찍어보지 못했다.
작가의 재능. 하고 많은 갈래 중 웹소설 작가의 재능. 갖추면 유리한 소질이야 많으리라. 1시간에 한 편씩 척척 써내는 집필 속도, 트랜드를 발 빠르게 파악하는 분석력, 클리셰와 취향을 잘 버무리는 응용력…….
자질, 조건, 재능. 엇비슷한 단어로 변주되는 무수한 채점표. 나는 그것들을 살피다 누군가 내게 ‘작가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 답할지 고민했다. 떠오르는 답은 두 가지였다.
하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둘,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누군가는 너무 기본적이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내 눈엔 정말 이 정도면 충분해 보였다.
자기 자신이든 가상의 이야기든 무언가를 표현하는 수단이 넘치는 21세기에 그림도 영상도 다른 무언가도 아닌 ‘글’을 택한 마음. 슬프지만 당연하게도 요즘 같은 세상에 굳이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 없다.
활자와 친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웹소설 헤비 독자인 내 친구만 해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딱 잘라 말했다. 그 친구는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다른 사람이 써주길 바라지 자신이 쓰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그때 깨달았다. 모든 사람에게 ‘쓰고 싶다’는 갈망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거다. 자연발생처럼, 어디선가 쑥 나타나서 펜이든 키보드든 만지작거리는 부류가.
만약 누군가 하고 많은 방법 중 굳이 굳이 글을 골라 굳이 굳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면. 이야기 하나를 마친 뒤에도 다른 이야기가 계속 계속 떠오른다면.
이 외에 달리 무슨 재능이 더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