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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Aug 11. 2020

언제부터 그렇게 굳건히 서 있었다고

요즘 개인적으로 소소한 챌린지를 진행 중이다. 이른바 "2020-여름 1일 1역자세 챌린지". 매일 역자세 연습을 하고 그것을 촬영하여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로 공유하며 인증하는 것인데, 시킨 사람도 같이 하는 사람도 없지만 나름 재미있게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역자세는 몸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기립하는 방향과 반대로 정렬하는 일련의 자세를 이르는데, 이 중에서도 요즘 내가 연습하는 것은 팔과 머리로 몸을 지지하는 물구나무서기류의 자세들이다. 연습이 너무 잘 되거나 날마다 일취월장하는 것은 아니라 지칠 때도 있지만, 간혹 SNS 친구들이 응원 메시지를 보내올 때면 빠졌던 힘도 되살아나곤 한다.


역자세, 즉 몸을 거꾸로 하는 자세들은 나의 오랜 숙원이었다. 오랫동안 꼭 이루고 싶은 목표였다는 의미에서도 숙원(宿願)이었고, 그렇게 원하고 연습해도 잘 해내기 어려웠기 때문에 원수 같다는 의미에서도 숙원(宿怨)이었달까... 모든 요가 강사가 모든 자세들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많은 자세를 성취해내는 것보다 아사나 하나하나를 꼼꼼히 해석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을 정련하는 것이 요가 강사로서 나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세들을 수월하게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콤플렉스를 느껴온 것도 사실이다.


물구나무서기가 쉬운 자세는 아니다. 머리와 팔을 모두 이용해서 균형을 잡는 기본 머리서기 자세(Headstand /Sirsasana A) 같은 경우 균형을 잡기가 아주 까다롭거나 힘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수련 회원들은 꽤나 두려움을 느끼고 접근하기 어려워하는 자세 중 하나이다. 그리고 여기서 머리를 떼고 팔이나 손으로만 지지해야 하는 역자세들은 더 많은 힘과 숙련된 균형 감각을 요구한다. 자세가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느 정도의 담력도 함께.

https://www.pexels.com/ko-kr/@kseniachernaya


내가 물구나무서기 자세들을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 역시 무섭기 때문이다. (TMI: 나는 기질-성격 검사를 하면 위험회피 성향이 97/100으로 나온다. 이것도 꽤 좋아져서 이 정도인 것 같다. 예전엔 더 심했다.) 10년 전에 처음 머리서기를 시도했을 때 나는 저 자세를 하다가 내 목이 꺾이는 게 아닌가 무진장 걱정했다. 옆에서 친구들은 벽 앞에서 머리와 팔을 바닥에 대고 발을 벽으로 뻥뻥 차고 있는데, 나는 다리 한쪽을 드는 것도 무서워했다. 일단 머리를 바닥에 대서 나의 시야가 반전되는 순간 이미 너무 어지럽고 온 몸이 경직돼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런데 이 무섭다는 감정이 온전히 심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내 몸을 지지할 충분한 힘이 생기고 그것을 내가 느끼면 자신감은 저절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머리서기로 계속 예를 들어 보자면, 앞에서 머리를 바닥에 대면 어지럽고 목이 꺾일까 봐 두려움을 느낀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실 팔로 바닥을 밀어내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밀어내는 힘이 충분하면 그만큼 머리로 가는 하중이 줄어들고, 그러면 바닥에 머리를 대도 그것이 그다지 어지럽거나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팔로 제대로 지지를 해주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머리에 많은 압력이 실리고, 피가 몰리고, 숨도 쉬기 어려워진다. 이런 몸 감각이 어지럽고 어색하고 그래서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또 한 가지 물구나무서기가 어렵고 무서운 이유는 계속해서 흔들리는 내 몸과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힘도 더 기르고 요령도 어느 정도 터득해서 발을 지면에서 띄우고 나면 이때부터는 흔들리는 가운데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내 몸을 정렬하고 힘을 쓰는 방식을 터득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흔들리다 보면 내 다리가 앞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뒤로 떨어지기도 한다. 처음 발을 차올린 원래 위치로 떨어지면 다행이지만, 뒤쪽으로 두 다리가 넘어가면 자칫 몸 전체가 무너져서 바닥에 몸을 찧거나 허리나 손목 등 약한 관절들이 과하게 꺾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부상의 위험이 꽤 높기 때문에 당연히 무섭고, 그만큼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무섭기도 하고 어렵기도 한 물구나무서기 자세들을 연습하다 보면 묘한 쾌감을 느낀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연습을 할 때에는 잡생각이 사라지고 내 몸의 균형과 정렬에 오롯이 집중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거꾸로 서고 나면 짧은 순간이라도 붕 떠있는 느낌을 받는다. 일상적으로는 전혀 시도할 필요가 없는 동작이고 몸의 정렬이지만, 이것을 해내는 것이 괜히 신나고 재미있다. 조카가 처음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을 때 엉덩방아를 찧을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계속해서 일어나려고 하고 계속 걸음을 떼려고 했던 모습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때 그 아이도 이런 흥분을 느꼈을까? 나도 처음 걸을 때 이런 쾌감을 느꼈을까?


머리를 떼고 팔이나 손으로만 지지하는 자세들을 하다 보면 평소에 내 다리를 비롯한 전신이 얼마나 큰 힘을 쓰면서 지면을 딛고 서있는지를 문득 느끼곤 한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정렬이라 용을 쓰면서 버티느라 힘이 더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연습을 해 볼수록 밀어내는 힘이 약하면 하체를 띄우는 것뿐 아니라 위에서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 이 밀어내는 힘은 온전히 손과 팔만의 과제가 아니고 어깨와 몸통의 큰 근육들이 도와줘야 한다. 이렇게 어깨와 몸통이 같이 협응 하는 감각을 기르는 것이 역자세 연습의 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게 체화되어 있어서 잘 느끼지 못하지만 서고 걷는 와중에도 우리는 다리 근육은 물론 골반과 몸통의 근육들을 모두 동원하여 사용하고 있다.


두 다리로 서고 걸을 때에도 우리 몸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 역시 생경스레 깨닫는다. 몸을 직립하는 것은 사실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는 것만큼이나 불안한 균형 자세인 것이다. 물론 다리와 발에는 균형을 조금 더 쉽게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들이 있다. 팔과 어깨에 비해서 훨씬 크고 두꺼운 다리뼈와, 이 다리뼈를 꽉 잡아주는 고관절, 또 발바닥에 있는 아치들이나 몸에서 가장 크고 힘을 잘 쓰는 허벅지와 엉덩이의 근육들은 모두 우리가 서고 걷기 수월하게 만들어준다. 동시에 어느 정도 이런 근골격 구조는 우리가 거의 평생 직립해서 걷고 뜀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통통한 아기발에는 아치가 없다. https://www.pexels.com/ko-kr/@punchbrandstock


그럼에도 흔들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휘청거리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 발바닥 역시 끊임없이 미세하게 균형 조절을 하고 있다. 아마 뇌에서 어느 정도는 노이즈 캔슬링 하는 것처럼 이런 진동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작업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서 있을 때 흔들리는 몸을 확인하는 간단한 놀이들이 있다. 먼저 혼자 해볼 수 있는 것은 한 다리로 균형 잡는 자세를 취해보는 것이다. 요가 자세 중에 대표적으로 나무자세(Vrkshasanan) 같은 것이 있는데, 꼭 이런 자세가 아니더라도 그저 한 다리를 들고 약 30초~1분 정도 유지해보면 된다. 그러고서 다시 두 다리로 내려온 후 눈을 감고 잠시 내 발바닥의 감각에 온전히 집중해본다. 이때 숨을 참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천천히 숨을 쉬면서 충분히 내 발바닥의 감각에 집중하면 미세하게 균형을 조절하고 있는 발의 느낌이나 끊임없이 진동하듯 흔들리는 무게중심이 느껴진다.


두 사람이 같이 해볼 수 있는 방법도 있는데, 나는 이 방법을 더 좋아한다. 두 사람이 앞 뒤로 서서 뒤에 있는 사람이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손으로 누르거나 미는 것이 아니라 내 손바닥으로 상대방 어깨의 목소리를 듣는 느낌으로(이렇게 외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볍고 부드럽게 올려놓는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숨을 쉬면서 각각 어깨와 손바닥의 감각에 집중한다. 흔들림이 느껴진다면 그 흔들림을 그대로 감각하며 따라간다. 긴장해서 숨을 참지 않고 몸 감각에 충분히 잘 집중이 되는 상태라면 어떤 패턴이 있는 움직임이 느껴질 것이다. 사람마다 또 날마다 흔들리는 패턴이 조금씩 다르다.


이렇게 서있는 몸의 흔들림을 발견하는 것은 물구나무서기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몸은 흔들리고 있지만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지기도 하고, 약간 어지러운 것 같으면서도 내가 충분히 이 흔들림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물구나무서기를 할 때 내 몸이 흔들리는 것은 일단 두려움을 가져다 주지만 사실 흔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나의 균형은 언제나 굳건한 고정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동하는 평형점을 통해 찾아진다.


오늘의 연습 Pinchamayurasana(Forearm-stand). 역시 흔들리다 떨어졌다.


커버 이미지: https://www.pexels.com/ko-kr/@suliman-sallehi-218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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