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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Aug 12. 2020

숨 가쁜 날의 호흡 관찰 일기

어젯밤부터 경미한 호흡 곤란 증세가 있었다. 사실 호흡 곤란이라고 하기에 민망한 가슴답답증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요 며칠 뭘 좀 읽으려고 하면 자꾸 딴생각이 침범해서 책을 오래 붙잡고 있질 못하다가 오래간만에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에 푹 빠져 읽던 중이었다. (그나저나 이 소설 정말 재미있다. 아직 다 못 읽었는데 읽는 게 아까울 정도. 이런 세계를 이렇게 치밀하게 그려내는 사람은 어떤 머릿속 풍경을 가지고 살까...?) 너무 재밌어서 쑥쑥 읽던 중에 내가 반복적으로 숨을 몰아 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숨이 잘 안 쉬어질 때면 답답함과 당혹감이 함께 밀려온다. 물론 패닉 상태까지는 아니다. 그저, '왜? 뭐가 문제지?'를 계속 마음속으로 외치게 되는 정도이다. 어떻게든 지금의 내 상태를 이해고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 뿌리를 뽑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무의식적으로 몸 상태부터 체크한다. 옷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다. 자세는... 아까부터 별로 좋은 자세는 아니었다. 리클라이너에 엉덩이를 푹 파묻고 쿠션을 겹겹이 올려 500페이지짜리 책을 받쳐 든 채로 읽고 있었다. 가슴도 배도 그 아래 꾹 눌려 있었다. 가슴 답답증을 유발할 수 있는 한 가지 요인을 발견하고 자세를 바꿔 본다. 일단 쿠션을 치우고 몸을 모로 돌려 가슴과 배와 등이 확장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마련한다. 다시 책을 읽는다. 답답증은 여전히 나의 독서를 방해한다.


아예 자리를 침대로 옮겨서 누워본다. 몸이 전반적으로 조금 더 편안하다. 이야기는 여전히 박진감 넘치게 전개되고 있다. 또다시 내 숨이 거슬린다. 반듯이 누워 책을 천정 쪽으로 쳐든 채로 다시 읽는 중이었는데 내가 턱을 당겨 목을 너무 조이며 누워있었나 생각해본다. 숨 막힐 정도로 치밀한 이야기가 내가 실제로 숨쉬기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닌가 잠시 의심해본다.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몰아 쉬는 호흡 혹은 숨을 몰아 쉬고 싶은 욕구가 울컥울컥 솟아서 독서의 흐름을 끊어 놓는다. 슬슬 짜증이 난다.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쉬어지던 호흡을 억지로 의식하게 되는 그 자체가 그다지 유쾌한 감각은 아니다.


애초에  정도의 불편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요가의 쁘라나야마(호흡법)나 여타 다른 호흡 테크닉을 동원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그걸 하기 위해 책에서 눈을 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어서 책을 내려놓고, 누운 채로 오른손을 왼쪽 쇄골과 1,2번 갈비뼈를 덮는 위치에 올려놓았다. 손의 힘을 빼고 쇄골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다. 마시는 숨에 폐가 부풀어 오르면 그 위를 덮고 있는 쇄골과 갈비뼈도 함께 (누운 상태에서) 천정 쪽으로 밀려 올라간다. 그리고 내쉬는 호흡폐가 다시 줄어들쇄골과 갈비뼈도 아래로 가라앉는다. 손의 감각에 집중하며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호흡과 그에 따른 몸의 움직임을 확인한다.


숨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 의식적으로 숨을 더 깊게 혹은 더 길게, 더 자주 쉬려고 하다 보면 호흡을 일으키는 주요 근육인 횡격막과 늑간근뿐 아니라 몸통에 붙어 있는 거의 모든 근육들이  더 많은 공기를 마시려고 긴장하게 된다. 몸통의 근육들이 충분히 이완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수축하는 일 반복면서  (마시는 공기의 양은 더 많아질 수는 있어도) 답답한 느낌은 잘 가시지 않는다. 유산소 운동을 하는 상황처럼 단순히 우리의 몸이 더 많은 양의 공기를 필요로 할 때에는 이런 호흡이 유효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가슴의 답답함을 느낄 때에는 몸의 모든 근육을 끌어당겨 호흡하는 것이 오히려 숨 가쁜 느낌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호흡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호흡에 의해 일어나는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편이다. 몸 감각에 집중하면 의식적으로 호흡근을 수축시키는 행위를 덜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긴장도가 떨어질 때가 많다. 위에 적은 것처럼 쇄골과 흉곽 전면을 손으로 모니터링할 수도 있고 흉곽 측면을 모니터링하기도 한다. 사람들마다 습관적으로 확장시키는 방향이 있고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제한되는 방향도 있다. 제한된 이 있다면 그 방향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확인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우회적으로 호흡의 감각을 확인하는 것으로 긴장감이 해소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몸 감각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든 날도 있고, 이런 것이 익숙하지 않 사람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내쉬는 호흡에 집중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와 수업을 하는 회원들에게도 그런 식의 지침을 주곤 한다. 마시는 호흡에 집중하지 않고, 내쉬는 호흡이 충분히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려 준다. 숨을 억지로 길게 하거나 애써서 짜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호흡을 마실 때에는 좀 부족하다 싶어도 애쓰지 않고 마실 수 있는 만큼만 마신다. 이 모든 과정의 포인트는 '애쓰지 않는다'이다. (이 글을 책임져보려고 호흡이 답답한 이유와 시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했다. <호흡은 왜, 잘하려고 할수록 답답해질까?>)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애쓰지 않는 게 어려운 날이 있다. 어제의 나처럼...


그래서 그냥 이도 저도 다 안 해버리기로 했다. 사실 잠도 오지 않아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기어코 영화를 한 편 때렸다.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동안은 한 다섯 번 정도만 숨을 몰아쉬었던 것 같다. 나쁘지 않다. 그렇게 눈과 귀를 충분히 피로하게 만들어주고 나니 잠이 안 와도 자고 싶어 졌다. 반듯이 누우니 답답증이 또 도져서 한쪽으로 웅크린 자세로 누웠다. 엎드린 자세는 가슴에 지긋한 압력을 줘서 호흡이 조금 더 편안해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생각보다 금세 잠이 들었다는 것은 아침에 깨고 나서 깨달았다. 아침의 상태는 어젯밤보다는 한결 나아져 있었다. 일단 숨을 몰아쉬는 빈도가 적어졌다. 자면서 전신이 많이 이완이 된 것 같았다.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려고 보니 확실히 목 앞쪽에 평소보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어젯밤 숨을 몰아쉬어대며 얻은 긴장감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운동을 하며 땀을 좀 내고 샤워도 하니 조금 더 가벼운 느낌이었다.


상담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상담하러 가는 길에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하지...?' 잠시 생각했는데 상담실에 가서 앉자마자 웬걸... 토하듯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뭔가 나도 모르게 눌러 놓았던 이야기들이 많았던 것 같다. 지난주에 호기롭게 체육관 수업을 그만둔 일의 여파와, 9월부터 새로 시작하는 일들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주 종목이었다. 문득 어젯밤의 답답증과 지난 주말에 겪은 두통과 며칠 간의 집중력 부족이 뭔가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몸을 통한 대처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긴장도 있다. 사실 많다. 선생님과 오십 분을 넘치게 채우며 얘기를 나누고서 상담실을 나오는데, 숨 맛이 달콤했다. 인상적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목 앞쪽에는 약간 뻣뻣함이 남아 있지만 호흡은 약간 신경에 거슬리는 정도이지 물리적으로 불편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몸이 앞으로 어떻게 이번 스트레스 상황에 대처하며 숨구멍을 찾아 나갈지 두고 볼 일이다.




커버 이미지: Engin Akyurt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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