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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Aug 13. 2020

'해석'되는 것으로서 요가 아사나


요가 강사로서 수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했던 고민과 걱정은 '내가 각각의 아사나를 '옳게' 지도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특정 아사나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정답이 어딘가에 있고, 나는 그것을 배우고 또 완성하여 나와 함께 수련하는 회원들에게 보여주고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동안은 아사나와 관련된 고전적인 문헌들이나 경전을 뒤져서 각 아사나의 본질과 원형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렇게 책과 자료들을 뒤지면서 알게 된 것은 경전이든 고전이든 거기 적혀 있는 것들이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점이었다. 


B.K.S 아헹가의 <요가 디피카>와 스와미 싸띠아난다의 <아사나, 쁘라나야마, 무드라, 반다>는 하타 요가와 관련된 서적들 가운데 고전처럼 읽히는 책들이다. 그런데 이 두 책이 설명하는 아사나들은 같은 이름을 달고 서로 다른 동작을 보여주는 경우도 많고, 분명히 비슷한 동작인데 이름이 다르거나 동작에 대한 해석과 수행 방식이 상이한 경우가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태양경배자세(suryanamaskar)만 해도 이 두 책에서 제시하는 일련의 동작들이 서로 꽤나 다르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동시대 요가 구루들의 티칭을 참고하기 위해 찾는 여러 미디어 자료를 보면, 각 아사나를 지도하는 초점과 디테일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분들은 여기서 다리를 모으라고 가르치는 반면 다른 선생님은 같은 동작에서 다리를 살짝 벌려줘야 함을 강조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럴 때마다 도대체 무엇이 정답이고 무슨 책을, 누구의 이야기를 따라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고 이후에는 이러한 다양성을 받아들이게 됐달까.




그렇다면 우선, 왜 이렇게 다양할까?


내가 내린 결론은 가르친 사람이 달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오래된 철학과 지혜들이 대부분 그렇듯 요가 역시 고대로부터 도제식 교육을 통해 구전(이라고 하기에는 온몸을 통해 전수되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되어왔다. 스승이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 제자들이 다시 스승이 되어 다음 세대의 제자들을 배출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쉬바난다 요가, 아헹가 요가, 싸띠아난다 요가 등 지금은 계시지 않는 선생님들의 이름을 붙여서 수련을 지도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은 이유 역시 각 선생님에 따라 독특한 지도 방식과 초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많이들 수련하고 요가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아쉬탕가(혹은 아쉬탕가-빈야사) 요가 역시, 크리쉬나마차리야의 가르침을 파타비 조이스 선생님이 정리하여 시리즈로 구성한 것이다. 아쉬탕가 요가의 여러 특징들(흐름 있게 진행됨, 정해진 시퀀스가 있음, 에너제틱하고 역동적임 등)이 있지만, 다른 요가 수련 방식과 차별화되는 아쉬탕가 요가 만의 본질은 결국 파타비 조이스 선생님이 정리하고 집대성한 수련 방식이라는 점뿐일 것이다.


내가 이수한 지도자 과정에서는 <요가 디피카>를 주로 참고하며 수업을 진행했는데, 나의 선생님은 각각의 아사나를 설명해주면서 이 책에 나와있는 동작 설명과 사진들 중에 따르지 말아야 하는 지침들 혹은 변형해서 수련해야 하는 것들을 함께 짚어 주시곤 했다. 아무리 고전이라고 해도 바이블은 아니기에 이것이 가능하다. 아니, 사실 나는 이러한 재해석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며, 대부분의 요가 강사들이 이 작업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점이 요가 지도와 수련이 이루어지고, 또 지도자들이 양성되는 장에서 조금 더 명확해졌으면 좋겠다. 이러한 명확성이 수련자 개개인이 보다 적극적으로 자기 관점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부생 시절에 미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원래 전공은 화학이었는데, 대차게 마음을 먹고 Theatre&Dance 전공으로 교환학생을 지원해서 1년 간 원하던 연기, 무용 수업을 들었다. 그동안 참여했던 프로그램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워크숍이 하나 있는데, 스즈키 메서드(연기 훈련 방법론)에 대한 단기 워크숍이었다. 스즈키 메서드는 일본의 연출가 스즈키 타다시 및 그 극단 멤버들이 함께 고안한 연기 훈련법으로 하체 사용을 중심으로 엄격하고 철저한 신체 단련을 통해 배우의 무대 위 능력을 끌어올리는 트레이닝 시스템이다. 연출가 앤 보가트 및 그녀의 극단(SITI Company)과 협업하면서 미국에서도 널리 알려지고 시티 컴퍼니의 뷰포인트 훈련법과 함께 현재에도 많이 활용되는 훈련 메서드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워크숍의 주 내용, 그러니까 스즈키 메서드가 무엇인지 어떻게 훈련하는지에 대한 내용보다 워크숍을 시작할 때 강사로 온 선생님이 한 이야기였다. 그 선생님은 미국인 남성이었는데 일본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밝히며 다음과 같은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본인이 "스즈키 메서드"를 가르치겠다고 이 워크숍을 열었고 여러분들은 그 "스즈키 메서드"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 이 자리에 와 있지만 사실 본인은 일본에 가 본 적도, 스즈키 타다시를 만나 본 적도 없다. 자신은 시티 컴퍼니의 강사들을 통해 이 훈련법을 배웠지만 그것이 얼마나 '스즈키'가 창안한 원형에 가까운지는 잘 모르겠고, 더욱이 지금 자신이 하는 수업의 내용 역시 시티 컴퍼니를 통해 배운 것을 온전히 복사하듯 되풀이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은 나름대로 자기가 배운 것을 해석해서 이 워크숍 프로그램을 준비했으며, 자기에게 "스즈키 메서드"를 가르쳐준 이들 역시 그렇게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내가 강의하는 내용이 원형의 "스즈키 메서드"일 것이라는 환상은 버리고, 이 방법론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잘 '경험하고' 여러분의 몸을 통해 '해석해서' 가져갔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데, 뭔가...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이니, 링클레이터 발성 훈련이니 미카엘 체호프의 방법론이니 하는 내가 만난 적도 잘 알지도 못하는 '선생님'들의 이름이 붙은 여러 훈련법들을 접하고 배우면서 느껴온 그 어떤 찜찜함이 씻겨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교육 현장의 맥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나는 어떤 기대를 가지고 어떤 태도로 이 훈련법을 배워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원형에 대한 기대나 집착을 버리기(물론 원형을 파고드는 것이 모든 맥락에서 의미가 없는 작업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 몸을 통해 경험하고 나의 관점을 가지고 해석하여 흡수하기.




요가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도 연기 교육 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 대부분이 아헹가, 파타비 조이스, 싸띠아난다 선생님을 만나보기는 커녕 이런 이름들이 사람 이름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어떤 요가'를 배우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요가 수련을 하고자 하는 모두가 요가 매트를 싸들고 인도로, 영국으로, 미국으로 유명한 구루들을 찾아 떠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수련이 어떤 선생님의 제자의 제자의 제자의 제자의.... 제자가 해석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나 역시 한 사람의 수련자로서 나의 몸을 통해 아사나를 해석하고 받아들이겠다는 입장 정리가 훨씬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할 때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정답'에 대한 추구를 살짝 내려놓고 조금 더 적극적인 태도로 아사나를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사나의 정답이나 완성된 아사나 같은 것은 (별로... 거의... 아마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아헹가 선생님의 몸과 나의 몸이 너무나도 다르고 나와 내 수련 회원의 몸도 너무도 다르다. 이 다른 몸들이 모두 같은 형태와 정렬의 자세를 만들어내기 위해 몸을 다그칠 필요는 (별로... 거의...) 없다. 오히려 아사나라는 창을 통해 나의 몸을 새롭게 발견하고 경험하는 것이 훨씬 큰 자산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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