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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Sep 17. 2020

호흡은 왜, 잘하려고 할수록 답답해질까?

가끔씩 숨 쉬기 불편한 나와 누군가를 위한 정리

몸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일들 가운데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은데, 호흡도 단연코 그중 하나이다. 우리는 매일 끊임없이 숨을 쉬며 살지만, 문득 호흡을 인식하거나 숨을 '잘' 쉬어 보려고 하면 오히려 숨이 잘 안 쉬어지곤 한다. (사실 숨을 '잘' 쉰다는 게 어떤 것인가? 모두에게 해당하는 '좋은 호흡'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호흡이 원활하지 않아서 느끼는 불편감은 너무 흔해서 경미한 수준이라도 호흡 곤란을 겪어 보지 않은 성인은 아마 드물 것이다. 심지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된 최근에는 숨을 잘 쉬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는 것이 드문 지경이 된 것 같다.


얼마 전에 경미한 호흡 곤란 증상을 겪었던 날의 경험을 적어서 브런치에 발행한 적이 있다. (<숨 가쁜 날의 호흡 관찰 일기>) 내 브런치 통계를 보다가 호흡 곤란에 대해 검색하던 중에 이 글을 읽으러 들어오는 분들이 (많은 수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경험 기록을 위주로 글을 쓰다 보니 호흡 자체에 대해 정리하거나 호흡 곤란 시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제안하지는 못했었기에* 오늘은 이런 내용을 정리해보려 한다. 호흡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매우 많(고 내가 모르는 이야기는 더 많을 것이고, 인류가 아예 모르는 이야기는 더 더 많겠)지만, 여기서는 글 제목이 던지는 질문처럼 호흡을 의식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호흡을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때는 언제일까? 사실 이 질문은 그 자체로 약간의 모순을 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적인 상황에서 호흡이 가장 원활할 때는 호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를 아예 느끼지 않을 때이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가 호흡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은 호흡이 불편하거나 수월하지 않을 때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러니까 숨을 잘 쉬고 있다가도 호흡을 인식하는 순간 숨이 답답하게 느껴지곤 한다.


이 미묘한 지점은 호흡 작용이 지닌 흥미로운 이중성을 암시한다. 호흡은 기본적으로 자율신경계의 통제를 받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지만 동시에 우리가 의식적으로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 이중성이다. 즉, 호흡은 우리가 의도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원한다면 참거나 더 늘리거나 더 짧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대표적이고 주도적인 호흡근인 횡격막이 수의근이냐 불수의근이냐 하는 논쟁도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재활 트레이닝 자격 과정 중 기능해부학 수업을 들으면서 횡격막은 수의근이라고 처음 배웠다. 그때는, '그래 내가 숨을 마시려 하면 마시고, 뱉으려 하면 뱉을 수 있지. 그러니 횡격막은 수의근이군!'하고 넘어갔더랬다. 그러다 나중에 횡격막이 불수의근의 성질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때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잠자며 의식이 없는 밤에도 숨 쉬기는 잘 (어쩌면 깨어 있을 때보다 더 잘) 일어나며, 또 숨을 애써 참으려고 노력하는 경우에도 더 이상 의지로 숨을 참을 수 없는 구간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몸속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가 정상 범위 안에 있을 때에는 의지를 통해 숨을 참을 수도, 좀 더 마실 수도, 뱉을 수도 있지만, 이것이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넘어가면 어느 순간 자율 신경계가 온몸의 통제권을 가져가 어떻게든 숨을 쉬게 만든다. 이것은 우리가 제대로 살아있는 한 조절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이 통제 불가능함이 역설적으로 우리가 끊임없이 숨을 쉬며 생명을 잘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링클레이터의 호흡 발성 훈련법** 중에 "폐 비우기(Vacuum Lungs)"라고 부르는 방법이 있다. 방법은 단순한데,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숨을 내뱉은 후 코와 입을 꽉 막아 숨을 참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막고 있던 코와 입을 열어 공기가 확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다. 링클레이터는 이 훈련을 통해 호흡을 확장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활동을 하다 보면 산소를 갈망하는 몸의 꿈틀거림만은 매우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애써 숨을 참다 참다 보면, 쪼그라든 갈비뼈와 몸통 전체는 물론 머리와 안구까지도 부풀고 싶어 안달 난 것 같은 압력을 느끼며, 횡격막과 늑간근이 몸을 팽창시키겠다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렇게 숨을 원하는 몸의 감각은 숨이 잘 안 쉬어진다고 느낄 때의 가슴 답답증과는 그 원인과 양상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호흡 관찰 일기 글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이런 가슴 답답증은 실제로 산소가 부족해서 느끼는 것이라기보다는 숨을 애써 마시려는 과정에서 호흡을 일으키는 근육들이 긴장을 해서 느끼는 긴장감일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산소가 부족한 문제라면, 씩씩거리며 숨을 마시는 중에도 답답증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다시 말해, 숨이 실제로 필요해서 느끼는 호흡에 대한 몸의 갈망과 숨을 쉬고 있으면서도 해소되지 않는 가슴 답답증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호흡근들이 불수의근의 성질을 갖는다는 이야기는 이 근육들이 알아서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호흡이 이루어지는 동안에 호흡근들은 자율적으로 운동하며 (비명까지는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이제는 마셔야 할 때이고, 이제는 내쉬어야 할 때라는 감각 정보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내 몸이, 특히 호흡을 담는 주요 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의 몸통이 호흡을 갈망하는 감각은 일상적으로는 잘 인식되지 못한다.


사실 보통 때에는 이런 감각을 구태여 인식할 필요가 없다. 자율신경계가 이름에 걸맞게 알아서 일을 잘해줄 것이라고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살다 보면 내 몸에 대한 믿음이 깨지며 불안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이때가 바로 호흡을 갈망하는 감각이 필요한 순간이다. 현재 호흡 상황에 대한 육체적 반응을 인지하고 그 욕구에 몸이 따르도록 의식적 통제를 풀어주면 자율 신경계가 알아서 일 하는 리듬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 순간 몸의 감각을 인지하기 전에 "호흡을 해야겠다! 더 시원하게! 더 깊게! 더 잘!" 하는 의지만 앞서면, 호흡근을 의식적으로 수축시켜 목구멍까지 채울 기세로 숨을 마시거나 짜내듯 밀어냄으로써 헤어나기 어려운 가슴 답답증의 굴레로 들어가 버릴 공산이 크다.


문제는 덮어놓고 느껴보겠다고 자리 펴고 앉는다고 해서 자연스러운 몸의 욕구를 감각하는 것이 잘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평생 저절로 이루어진 호흡 덕분에 편하게 살아온 한편, 실제 호흡이 이루어지는 운동 개입하지는 않으면서도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고 지각하는 능력은 상당 부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 그러니까 호흡을 인식은 하되 통제하지 않고 자율 신경계가 작동하도록 놓아주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물론 연습과 훈련은 당연히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링클레이터의 "폐 비우기"도 호흡의 감각을 되찾기 위한 훈련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다만 "폐 비우기"는 숨을 다 내뱉으라거나 최대한으로 참으라거나 하는 부분에 조금은 극단적인 측면이 있어서 하고 나서 반응이 제각각일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나처럼 몸의 갈망을 흥미로운 발견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애써 숨을 참고 한꺼번에 마시는 과정이 너무 인위적이거나 불쾌한 감각으로 다가올 수 있다. 특히 링클레이터 발성 훈련 전체의 체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없이 이 훈련만 따로 떼서 하면 뭐가 뭔지는 모르겠고 그냥 머리만 띵하다는 반응이 나오기 십상이다.


하지만 몸 감각을 느끼기 위해서 꼭 몸이 비명을 내지를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을 연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호흡 생활에 적용하기에도 특별한 방법보다는 일상적인 호흡을 감지하는 쪽이 더 유용할 것이다. 그리하여 아래에서는 호흡 관찰 내지 호흡을 할 때 몸 감각을 관찰하는 방법을 제안할 것인데, 이것은 특별한 호흡 및 관찰의 방법이라기보다는 보다 편안하게 호흡을 관찰하기 위해 충족되면 좋은 조건들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1. 안정적이고 집중할 수 있는 자세


호흡에 온전히 집중하려면 유지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은 안정적인 자세들이 좋다. 다만 눕는 자세가 가장 수월한 이완 자세라고 해도 회사에서 갑자기 숨이 답답해진 사람에게 일단 누워야 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능하면 편안하고 안정적인 지지 기반 위에서 잘 펼쳐진 몸의 정렬이 수반되면 좋겠지만, 상황마다 최적의 자세는 달라질 것이다. 설령 만원 지하철에서 몸을 구기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도 호흡 연습을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것이 낫다.


ex)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당신을 위한 제안: 안정적인 지지를 위해 두 발바닥을 바닥에 내리고 엉덩이는 양쪽 좌골(골반뼈의 바닥 쪽 끝)을 찾아서 앉는다. 등을 펴거나 뻗거나 세우려고 하기보다는, 바닥에 지지하고 있는 두 엉덩이와 두 발을 균형의 참조점들로 삼아 가장 힘을 덜 써도 자세가 편안하게 유지되는 균형 지점을 찾아본다.


2. 몸통의 움직임과 감각을 모니터링 하기


무엇을 통해서 나의 호흡을 감지하고 관찰할 것인가? 우리의 폐에는 감각 신경이 뻗어 있지 않기에 폐에 들어가고 나가는 공기의 흐름을 직접적으로 감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몸이 지닌 다양한 감각 기관들을 활용하여 우회적인 방법으로 호흡의 존재와 그 리듬을 느껴볼 수 있다. 이때 호흡에 대한 내 몸의 반응에 조금 더 집중하기 위해서는 들어가고 나가는 공기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호흡 과정에서 움직이는 내 몸통의 운동과 수반되는 근육의 수축과 이완, 진동 등에 주목하는 것이 유리하다. 몸통 자체의 고유수용감각과 촉각을 통해서도 이것을 느낄 수 있지만 보다 효과적으로 하려면 감각이 아주 예민한 우리의 손을 활용할 수 있다. 손바닥을 갈비뼈가 있는 몸통 위에 놓고 (몸통의 앞, 뒤, 옆, 위 다양한 부위가 가능하다) 손바닥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싸띠아난다 요가에서 제안하는 빠다디라사나, 호흡 균형 자세


ex) 아무도 모르게 호흡 관찰을 연습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제안:

요가 자세 중에 빠다디라사나(Padadhirasnan)라는 자세가 있다. 위 그림에서 처럼 무릎을 꿇고 앉은 상태에서 양 손의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을 반대쪽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고 어깨와 팔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리는 자세이다. 이 자세에서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상체이다. 겨드랑이에 네 손가락을 끼우면 손바닥으로는 가슴의 측면과 앞면 일부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 또 어깨와 팔을 일부러 들지 않아도 그 자체 무게가 손을 눌러 손이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에, 앉은 자세에서 팔을 들어 올리는 수고를 줄이면서 가슴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가슴에 팔의 무게가 자연스럽게 실리면서 내쉬는 호흡이 조금 더 안정적이고 편안해진다. 굳이 꿇어앉지 않고 지금 서거나 앉은 그대로의 상태에서 팔과 어깨만 해봐도 의미가 있다. 더욱이 얼핏 보기에는 그냥 팔짱 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나는 지루한 수업을 듣다가 숨이 답답해질 때 한 번씩 하기도 한다.


3. 자연스러운 호흡의 리듬에 대한 세밀한 정보를 가지고 관찰하기


호흡의 과정에서 호기(내쉬는 부분)는 곧바로 흡기(마시는 부분)로 이어지지 않고 그 사이 잠깐의 공백을 통해 다음 호흡으로 연결된다. 잠시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학 시간의 추억을 되살려 보자. 물리 I 역학 단원: 하늘로 던져 올린 공의 포물선 운동을 떠올려보자. 호흡 운동의 정지점도 이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가다가 모든 운동 에너지가 위치 에너지로 전환되는 순간 공중에서 정지하는 지점, 그로써 운동 방향이 전환되는 지점과 비슷한 순간이다. 이렇게 호흡이 잠깐 멈추어 있는 동안 호흡근의 긴장도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내 몸은 다음번 마시는 호흡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에 따라 다시 호흡근들이 자연스럽게 내쉬는 이완 모드에서 마시는 수축 모드로 전환되어 갈비뼈 안쪽 공간을 넓히면, 그에 따라 흉강의 압력이 떨어지면서 폐로 공기가 밀려 들어간다.

중학교 과학(생물) 시간으로 조금 더 거슬러 내려가 본다. 문과 출신들도 중학교 때 본 위 허파 실험 기구는 생각이 날 것이다. 바닥면을 당겨 압력을 낮추면 빨간색 풍선이 부푼다.

그렇기에 내가 호흡을 위해 근육을 수축한다는 것은 마치 식도가 연동 운동을 하며 음식물을 위로 내려보내는 것처럼 바깥의 공기를 안으로 밀어 넣는 운동이 아니라, 몸통 안쪽 공간을 넓혀 외부와의 압력 차이를 만들어내는 운동이다. 이렇게 압력의 차이가 생기면 공기는 자연스럽게 (물리학 법칙에 의해서) 몸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므로 호흡을 관찰할 때는 내쉬는 호흡 이후에 조바심을 내서 재빨리 다음 숨을 마시려고 하지 않고 잠시 느긋하게 내 몸통을 팽창시키는 근육의 수축을 느껴볼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이 위에서 이야기한 호흡을 갈망하는 몸 감각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4. 태도와 관점: 믿음 회복하기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도 이를 관찰하고자 한다면 바라보는 관점이나 태도를 잘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위에서 이야기했듯 자율신경계의 통제 하에 자연스럽게 호흡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호흡이 자율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요즘 듣는 소마틱스 수업의 김수연 선생님께서는 다른 수업에서 한 학생에게, 갈비뼈가 배꼽 아래를 제외한 몸통 전체를 감싸고 있고 폐가 그 갈비뼈 안쪽을 양쪽으로 거의 가득 채우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자 그가 갑자기 숨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약간 다른 정보나 관점 이동을 통해서도 나와 호흡의 관계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 자신에게 무작정 "믿으라! "고 할 수는 없고 어떤 말을 내 몸에 건네는 것이 도움이 될까? 아래는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생각, 질문, 메타포들을 적어 보았다.


-우리는 숨이 잘 안 쉬어져서 고생했던 기억에 남는 몇 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 아주 숨을 잘 쉬며 살아왔다. 적어도 나의 일부, 내 자율신경계와 호흡 시스템은 숨 쉬기에 있어 마스터급 숙련도를 가지고 있다.

-나의 호흡 시스템은 아주 철저한 위험 대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자율신경계라는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의식적 호흡 조절을 통해 비상시에는 얼마든지 매뉴얼 모드로 전환할 수 있다. 이렇게 두 가지 조절 장치가 있다는 것은 나를 혼란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매뉴얼 모드가 비상시나 특별한 조절이 필요한 경우에 쓰는 것이라면 지금 내가 그런 상황인가? 내가 숨을 조절할 필요가 있을까?

-그럼에도 숨 쉬는 것은 쉽거나 당연한 일이 아니며 아주 복잡한 시스템이 잘 작동해야 가능한 과제이다. 지금  내가 관찰하는 호흡이 조금 버벅거리거나, 아주 원활하지 않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호흡을 잘 관찰하려면 약간은 내 몸과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태도로, 혹은 움직이는 나의 몸을 뒤따르는 모드로 있는 것이 좋다. 호흡을 향해 돌진하지 않는다.

-나의 호흡을 자율 시스템과 의식화 시스템 사이의 대화로서 이해해 볼 수도 있다. 지금 일어나는 이 호흡은 자율적인 시스템이 주도하고 있는지, 의식화 시스템이 이끌고 있는지를 또 다른 3자의 관점에서 관찰해 본다. 어쩌면 메타의 메타 인지가 필요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춤을 추거나 놀이를 하듯 호흡을 가지고 실험을 해본다. 조금 덜 마신 것 같아도 숨을 참아보고 그러다가 갑자기 풀어보기도 한다. 혹은 다른 동물들의 호흡을 흉내 내보기도 한다. 헥헥거리며 무언가를 기대하는 강아지의 호흡(이건 링클레이터 훈련법이 제안하는 것이다)이나, 아주 느리고 긴 거북이의 호흡을 따라 해 볼 수도 있다.

-지금 마시는 호흡이 충분하지 않게 느껴져도 혹은 내쉬는 호흡이 시원하지 않게 느껴져도 나에게는 언제든 다음번 호흡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 그러니까 믿음이나 어떤 태도에 대한 이야기는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하여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적은,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과 감정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편안하게 호흡을 관찰하기 위한 태도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간접적인 이야기, 메타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메타포가 효과가 있을지는 사람마다, 또 날마다 달라질 것이다. 나 역시 하루 전만 해도 호흡을 "뒤따르듯" 관찰하라는 메타포에 영감을 받아 호흡이 잘 되었는데, 다음 날에는 "뒤따르듯" 관찰하다 보니 오히려 가슴에 뻑뻑하고 조이는 느낌이 들어 당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호흡에 있어서 가장 신비롭기도 하고,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기도 해서 언급을 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나의 경험에 기반하여 끄적인 말들이 호흡을 어려워하는 어느 날의 나를 위해, 또한 숨이 답답해서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사실 브런치 통계를 확인하고서 이 글을 다시 읽다가 내가 "이 모든 과정의 포인트는 '애쓰지 않는다'이다."라고 서술한 부분을 발견했다. 또 다른 글(<'이완'의 마력에 대처하는 요가 강사의 자세>)에서 구체적인 방법론 없이 애쓰지 말라고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내가 그 비슷한 짓을 했던 게 아닌가 싶어 덜컥했었다. 그때 덜컥했던 마음이 오늘 이 글을 쓰고 있게 만든 것 같다.

**크리스틴 링클레이터가 고안하고 그 제자들과 함께 발전시킨 호흡 및 발성 훈련법. 기본적으로 연기자의 무대 위 발성과 발화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글을 쓰면서 검색하던 중에 발견한 사실은 링클레이터 선생님이 얼마 전 6월에 돌아가셨다는 점이다.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연기자들을 위한 탄탄하고 과학적인 발성 훈련 시스템을 발전시킨 그녀의 책과 이야기를 꽤 오래 품고 지내왔기에 마음이 상당히 애석하다.

***빌 브라이슨은 <바디: 우리 몸 안내서> 숨을 오래 참을 때 느끼는 불편감에 대해서 "산소 고갈 때문이 아니라, 이산화탄소 축적 때문에 일어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말에 따르면, 숨을 참을 때, 즉 산소를 흡입하지 않을 때에 느끼는 답답함마저도 산소 부족 때문이라기보다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안돼서 생기는 감각이라는 것이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Raj Ran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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