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젠젠 Oct 28. 2019

크루즈 세계일주 시작! DAY1

기항지에서 설치되는 갱웨이

항구와 배를 잇기 위해 설치된 출구를 갱웨이라 부른다. 보통 출도착 항구에서의 갱웨이는 길고 투명한 구름다리이고 기항지에서는 육지와 배를 작은 사다리로 바로 연결한다. 상하이 바오산 항구에서 임시로 만들어진 꼬불꼬불한 구름다리를 건너니 클로즈업된 배의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 볼 때는 거대하고 웅장한 하나의 완성된 모습이었던 배는 가까이서 보면 더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다. 

크루즈 옆에 설치되어 있는 구명정

배의 옆면에는 주황색의 작은 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그게 바로 구명정이다. 배에 배가 달린 모습은 새끼를 앞주머니에 품은 캥거루와 닮아 보였다. 배에 이상이 생기면 어미는 자신은 침몰하더라도 새끼를 떼어내어 사람들을 살리겠지. 


"웰컴 투 셀러브리티 크루즈~" 


갱웨이의 끝에서 정갈한 제복 차림의 선장과 크루들이 승객들을 반기며 샴페인을 나누어준다. 하얀 머리의 친구들을 따라 투명한 굴을 통과한 후 맞이한 이 화려하고 낯선 세계는 날 자연스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길을 안내해주는 토끼는 없지만 내 앞에 나타날 체셔 고양이와 하트여왕은 어떤 모습일까? 나의 흥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승선하고 나서는 모두 한자리에 모여 안전 교육이 이뤄진다. 비행기를 탈 때는 안전교육에 제대로 귀 기울여 본 적 없는데 사뭇 진지하게 교육을 듣게 된다. 그것은 내게 닥칠 불분명한 공포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모두가 잊지 못하는 그 날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 때문일 거다. 


크루즈의 꽃을 하나만 꼽자고 하면 ‘정찬’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크루즈를 예약할 때 저녁 식사 시간을 미리 설정해놓는데 이것은 정찬을 위해서이다.  


"헬로우~ 나는 엘비스고 너희의 테이블을 담당하는 웨이터야. 식사 시간에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내게 말해줘." 


내 동행과 나의 테이블은 우리 둘만 앉을 수 있는 2인용이었고 웨이터 엘비스와 그의 보조인 예시와트가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었다. 둘 다 인도인으로 고아 출신이었다. 세 가지 소스와 세 가지 종류의 빵부터 시작해 에피타이저, 메인, 디저트까지 골라서 먹을 수 있었다. 메뉴판에는 그날의 스페셜 메뉴와 고정 메뉴가 빼곡히 익숙하지 않은 명칭으로 적혀있어 하나만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엘비스! 혹시 에피타이저, 두 개 시켜도 돼?"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엘비스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뭐든 네가 원하는 만큼 다 시켜도 돼." 

크루즈에서 먹었던 코스 요리들

천국에 레스토랑이 있다면 분명 이런 모양일 것이다. 난 감동받은 채로 에피타이저 두 개와 메인 메뉴 한 개 디저트 한 개를 시켰다. 크루즈 승선이 까다롭다는 말에 긴장을 잔뜩 한 데다 이동시간과 대기시간이 길었던 탓에 상당히 지쳐있었는데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런 맛이었다. 밥을 먹는 사이 배는 그 운항을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배가 출발한다는 방송도 폭죽도 사람들의 환호도 없는 조용한 출발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상한 크루즈의 앨리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