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바라보는 건조한 시선
첫 번째 수직선이 그어지면, 잔뜩 배를 채운 스마트폰이 오늘 치 후불 영수증을 내밀었다. ‘나의 하루는 임대일까, 유산일까?’, 질문할 겨를도 없이 해제 버튼을 눌었다. 나는 씻고, 옷을 챙겨, 정해진 곳으로 숨 가쁘게 달렸다. 우리 팀 박 과장도, 이 대리도, 수많은 얼굴들도 나와 같은 길일 것이다.
빽빽한 지하철 속에서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 뉴스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아무 말 없이 채팅방을 주시하거나. 누구도 말하지 않았고, 누구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거대한 침묵 속에서 오직 안내 방송만이 약간의 균열을 일으켰다.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했지만, 발걸음은 모두 같은 속도로 옮겨졌다. 하늘로 솟은 수직선, 모두가 그 속으로 입장했다.
마트의 하루치 상품처럼 박 과장은 윗 칸에, 이 대리는 아랫 칸에 가지런히 놓였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땀을 쓰고, 꿈을 소모했다. 시계는 느리게, 때론 빠르게 돌아갔다. 어느덧 창 너머 태양도 꺼져 갔다.
두 번째 수직선이 그어지면, 하루를 다 태운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검은 파도의 행렬이 잠시 이어졌다. 표정 잃은 얼굴과 표적 잃은 몸짓은 뒤엉켜 촘촘한 수직선 사이로 흘러갔다. 저마다 자신의 시간 속으로 퇴장했다. 어떤 이는 집으로 향하고, 다른 이는 학원으로 갈 것이다. 나처럼 여유를 누릴 수도 있다.
지하철 역으로 뛰어가는 권 과장은 아내와 딸의 곁으로 갈 테지만, 혼자인 나는 친구를 단골 술집으로 호출했다.
“오늘 한 잔 어때?”
잠깐의 대화는 나를 채웠지만, 이내 휘발되었다.
어둠이 도시에 깔리면, 어김없이 고독도 짙어진다. 상속된 유전자든, 흘린 땀이든, 아니면 직급이든. 서로 다른 가격표를 붙인 채, 서 있는 칸만 다를 뿐이다. 타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진열품, 진열품, 벗어날 수 없는 진열품…
시계침, 고층 빌딩, 그리고 사람. 메마른 도시 속 두껍고 얇은 수직선들이 줄지어 정렬되었다.
누군가의 손끝이 닿자,
‘삑-’,
전자음이 울렸다.
그 순간, 나의 하루도 계산되었다.
“10,030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