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느려도 내 발자국

by zeon

오늘도 지하철 2호선은 도시의 삶을 실어 나른다. 나 역시 그 속에 몸을 싣는다. 출발과 정차, 환승과 종착이 반복되며 서울의 중심을 무한히 순환한다. 목적지로 가기 위한 수많은 발걸음이 교차하고, 각자는 정해진 궤도를 돈다. 2호선은 도시의 시간과 닮아 있다.


탑승하는 순간, 각자의 속도는 지워진다. 모두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눈앞을 스치는 빌딩 실루엣만이 얼마나 빠른지 짐작하게 한다. 뛰어내릴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열차는 삶을 조금 더 가속시킨다. 앞서가는 사람들과 더 멀리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조금씩 뒤처졌다.


트렌드 강연, 성공 스토리, 외국어, 코딩. 벌어진 간격을 좁히려면 더 뛰어야 했다. 더 달릴수록, 더 채울수록, 나의 감각은 무뎌졌다. 감각과 리듬, 방향까지 희미해졌다. 하루는 빽빽하게 찼지만, 나는 점점 지워졌다.


‘아~늦었다.’


수요일 아침, 나는 허겁지겁 달렸다. 늦잠을 잔 것도 아니었고,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두고 온 지갑을 챙기려 잠깐 들어왔을 뿐이다. 하지만 결국 지하철을 놓쳤다. 다음 차는 도착했지만, 지각은 피할 수 없었다. 궤도에서 처음 벗어난 순간, 나는 나의 보폭을 의심했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잠깐만 머뭇거려도, 따라잡을 수 없는 삶일까. 그런 사소한 생각이 내면을 짙게 물들였다.


가벼운 일탈에 불과했지만, 그날 하루는 거칠게 흔들렸다. 아침 회의는 늦어버렸고, 보고 자료는 출력하지 못했다. 기억을 더듬어 발표했지만, 팀장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회의 시간 또한 지연되었다. 하루의 스케줄이 미묘하게 틀어졌다. 나의 하루는 뒤틀렸지만, 도시는 여전히 달려갔다.


하루를 정리하던 오후쯤, 창밖으로 자동차들이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그 소리는 내 생각에 잔향을 남겼다. 저 도로 위의 자동차는 4 기통도 있고, 6 기통도 있다. 변속기를 통해 속력을 조절할 수도 있고, 도로마다 제한 속도도 다르다. 그런데 나는 왜 똑같이 달려야만 했을까. 나의 성능이 다르고, 조절할 여지도 있는데.


도시는 결코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빠른 걸음과 느린 걸음이 뒤섞여도, 결국 하나의 흐름으로 평균화된다. 여전히 지하철은 달리고, 신호등은 깜빡인다. 출근길과 퇴근길의 발소리도 이어진다. 도시의 속도는 언제나 같았지만, 나의 걸음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떠올렸다.

나는 여전히 느리고, 서툴고, 자주 뒤처진다. 그러나 그 느린 걸음 속에서만 내쉴 수 있는 호흡과,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끝없이 순환하는 궤도일지라도, 나는 느린 발자국 하나를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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