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품은 가장 작은 체온
불 꺼진 거리를 홀로 지키는 등대.
밤이 찾아오면, 도시엔 피어나는 불꽃이 있다. 야근에 지친 난, 오늘도 그 빛을 따라 문을 두드린다. 좀 우울한 날은 4캔에 만 원짜리 맥주를 담고, 일이 바빠 저녁을 건너뛴 날이면 간단한 요깃거리를 집는다. 그렇게 나를 당기는 이 불빛은 사실 특별한 곳은 아니다. 도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이다.
상가 구역부터 아파트 단지까지, 10분 이내로 발이 닿는 거리엔 늘 편의점이 있다. 1인 가구용 식품들이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맞은편 진열대엔 생필품이 자리한다. 직원도 대개 1명이 관리한다. 그곳에서는 나도, 직원도, 서로의 이름을 알 필요가 없다. 24시간 이용 가능한 도시의 발명품. 가장 기계적이면서, 가장 고독한 공간이다.
컵라면, 삼각김밥, 간편 도시락까지, 바로 먹거나 전자레인지로 요리가 된다. 오직 신속성과 간편성만 판다. 고른 물건을 계산대 위에 올리면, ‘삑’ 하는 스캔 소리만이 잠깐 울릴 뿐, 다시 정적이 찾아온다. 나는 신용카드를 밀어 넣고, 물건만 챙겨 문을 나선다. ‘잠깐만요, 하나 더 가져오셔야 해요.‘ 간혹 들려오는 안내, 하지만 대부분은 말없이 끝난다. 이 무언의 거래 속엔 도시가 길러낸 쓸쓸한 익명성이 짙게 배어 있다.
야근 후 집으로 가는 길, 피로와 함께 허기가 몰려왔다. 편의점 문을 여니, 서늘한 공기가 나를 스쳤다. 냉장칸으로 다가가 도시락을 찾았지만, 그 자리는 텅 비었다. 그 순간, 김이 솔솔 올라오는 집밥이 그리워졌다. 나물과 장조림, 그리고 김치찌개로 차려진 그 집밥. 잔치상은 아니지만 그 안에는 어머님의 체온이 스며있었다. 그동안 채우지 못한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뜨거운 물을 받으며 고개를 돌리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처럼 컵라면을 기다리는 회사원, 아이스크림을 먹는 학생들, 그들도 여기서 잠시 머물며 일상을 채웠다.
고립된 공간으로 생각했는데,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동질감이 흘렀다. 대화나 소통은 없지만, 익명성이 느슨한 연대를 만들었다. 각자의 사소한 사연이 모여 작은 등불이 켜졌다. 비워진 자리는 곧 다른 이들이 메웠다. 집도 아니고 직장도 아닌 중립 지대, 이런 모습들을 보면 편의점이 단순한 상점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도시가 만든 비인간적인 장소가,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순간들을 품고 있었다.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이 만나고, 침묵 속 이야기가 모여드는 곳, 그곳은 개인의 외로움을 조용히 달래준다.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꺼지지 않는 등대는 언제나 나를 환영한다.
오늘 밤에도 나는 그 불빛을 따라 문을 열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하루를 마무리할 것이다.
컵라면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다시 내일을 걸어갈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