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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글 Jul 22. 2020

묶여있는 시간 떠나보내기

이제야 떠나보낸 삼사월

 좋아하던 SNS를 멀리하는 일은 낯설고 갑갑했다. 퇴사를 하고 몇 달 동안 숨어 지내는 심정으로 삶을 버텨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소중했던 친구들을 잃고, 나를 측은히 여기는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분명 내게 중요한 사람들이었는데, 한순간에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버겁게 여겨졌다. 나의 잘못, 나의 책임, 나의 부족함이 내 머리를 가득 채워서 난 그들과 함께하는 일을 포기했다. 더 이상 나를 갈아서 당신들께 내어주는 일이 버거워요. 그런 일기를 쓰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하루하루를 무겁게 보냈던 시간들은 아직도 떠올리면 갑갑하고 씁쓸하다.


나는 그들에게 거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위로해주는 사람, 즐겁게 해주는 사람, 항상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더 이상 이전과 똑같이 행동할 수가 없는 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향하는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기에, 날것의 나를 보여줄 수도 없었다. 이전까지의 나는 필요 이상의 노력으로 그들을 대했다. 그러나 관계에 책임을 지기 이전에 스스스로를 책임질 힘조차 없었던 나는 모두에게서 도망쳐 혼자 있기를 택했다.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를 후회하며 그 시간 속에 묶여버렸다.

 

그런 어느 날 G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주저앉아있던 내 마음이 일어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사실, G를 만나기 전에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일 거다. 편하게 만나자고 약속했지만 나는 과거를 꺼내보여야 할 것과, 가늠되지 않는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할 것을 걱정했다.


조금의 망설임과 그 속에 숨겨진 기대감으로 함께했던 발걸음은 내딛을수록 가벼워졌다. 그날은 하늘도 높고 햇살도 따스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간지러웠다. 왠지 내 마음의 심해가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어디선가 불어왔고.


곧 싱그러운 G의 웃음과 마주하고 안도했다.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를 줄 알았는데, 막힘없이 나를 꺼내는 모습에 속으로 조금 놀랐다. 동시에 그동안 간절하게 외쳤던 내 기도를 온전히 듣고 계셨을 하나님의 모습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마음이 참 따스해지던 시간이었다. 간절하게 원했던 다정함을 이제야 의심 없이 받았을 수 있었다. 그동안은 슬퍼하느라 행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우리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슬픔은 슬픔 그대로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부해야 할 대상이라며. 슬픔이 어디서 왔고, 깊이는 어떠하며 주체와 대상이 어떤지, 슬픔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찾다 보면 어느새 내 슬픔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고.


우리가 함께 나눴던 이야기는 왜인지 모두 아픔에게 건네는 위로 같았다. G의 모든 생각과 말이 나를 향한 위로로 들려왔기 때문일까?


생명을 준다는 것은 시간을 주는 것


이 말 또한 마음에 오래 남게 되었다. G가 내게 베푼 시간을 통해서 작은 생명을 나누어 받았구나. 그러고 보면 나는 지금껏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선물 받았던 존재였구나. 내 마음이 깊고 어두워서 자꾸만 생명을 보잘것 없이 여기곤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게 생명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껏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덩달아 변함없이 내 마음에 심겨있는 예수님의 생명의 씨앗이 움틀거리는 것도 느꼈다. 언제나 주변의 소중한 사람을 통해 나를 일으켜주시는 그 마음이 너무 애틋하고 고마워서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지금껏 지나온 모든 시간,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생각들을 숨기고 싶어서 애써 숨었는데, 더 이상 그러지 않겠다고 G와 약속했다. 정말 이제 그만 숨기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덧 천천히 걸어가 볼 힘이 생겼다. 부끄럽고 또 두렵지만 그래도 마음이 닿는 곳으로 발걸음 향해보리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다 보니

예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작은 위로가

잔잔히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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