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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글 Aug 09. 2020

밥 잘 챙겨 먹어요

작은 노력의 결실

회사를 다녔을 때, 가장 막내였던 내게 관심과 애정을 주셨던 선배님들께서 입을 모아 하셨던 말이 있다.


몸 상하면 안되니까, 밥 잘 챙겨 먹으세요


조금 오버를 하자면 거의 매일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말을 들었다. 성적보다 밥을 중요시 여겼던 엄마의 잔소리에서 드디어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멀리 집을 떠나 온 타지에서까지 밥을 잘 먹어야 하는 임무는 여전했다!


유난히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이유는 당연히도 내가 밥을 잘 안 챙겨 먹었기 때문이었다. 회사 근처에는 타회사의 구내식당이 있었고, 동료 직원분들은 모두 그곳을 자주 이용하고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급식처럼 그곳을 찾으셨다. 처음에는 나도 우르르 따라가서 꾸역꾸역 밥을 삼키고 답답한 속을 두드리며 함께 회사로 돌아오곤 했었다. 참다 참다가 그 정직한 대열에서 벗어나 혼자 먹는 일이 잦아졌다. 보통 샌드위치나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었는데, 요리를 즐겨하지 않았기에 매일매일 부실한 음식들로 하루를 연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성의 없는 나날을 보냈던 것 같다.

삶의 우선순위가 불완전하면 밥 하나 먹는 일도 어렵고 버거운 일이었구나, 퇴사하고 나서 깨달았던 것들 중 하나이다.


무기력함으로 가득했던 날들 속에서 마주한 변화


퇴사한 직후의 나는 반복되는 삶을 무기력하고 피곤한 자세로 살았다. 회사를 다닐 때보다 나를 더 돌아보지 않고 그저 숨만 쉬었던 것 같다. 가끔 밥 먹으라는 잔소리가 떠올랐고, 몸속에 건강하지 못한 음식들이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 자주 싫었다. 나는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요리를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밥 챙겨먹는 시간을 아까워했었지만, 제대로 챙겨먹지 않으면 몸에 병이 찾아왔다. 차라리 밥을 잘 챙겨먹는 것이 시간적으로나 건강적으로 이로운 행위였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겠다고 다짐하며 점차 다양한 요리에 도전하며 공허했던 시간을 다채롭게 채워나갔다.


맛있고 건강한 밥을 먹기 시작한 뒤로는 건강해지는 기분으로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 귀찮기만 했던 일이 삶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바뀌는 순간은 찰나이며 큰 변화였다.


밥을 잘 챙겨 먹으며 예전보다 건강해진 나는 더 넓은 시각으로 삶의 과제를 해나간다. 작은 노력으로도 무기력한 삶을 기쁨으로 물들일 수 있다는 사실이 어느새 내 삶 깊게 맺혀있었다. 사소한 변화가 가져다주는 큰 힘을 믿기에, 나는 작은 것들에 시간을 투자하고 열매를 기다린다.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 크고 작은 일들을 결정할 수 있는 삶이 더없이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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