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울림 명조율사
화음 높이가 다른 둘 이상의 음이 함께 울릴 때 어울리는 소리. 어울림음, 안어울림음 따위이다. [네이버 사전]
화음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의 결과는 기울이는 애정과 노력에 비례한다. 육아에도 같은 이치가 작용하는 것을 알았다. 서로 다른 두 존재, 아들과 엄마는 부단한 조율을 통해 어울림음을 찾아나가며 둘 만의 하모니, 시그니처 이중주를 연주하는 원팀 (one team)이다.
누워 지내야 했던 때, 아기를 낳으면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여느 남편들처럼 우리 집 가장도 이른 아침 출근, 늦은 밤 퇴근이고 내 일(job)도 있어 혼자 종일 육아와 주중 육아를 하기는 무리였지만, 어렵게 성공한 처음이자 마지막 임신 기간을 내적 외적으로 알찬 태교로 채우겠다고 야무지게 마음먹었던 것이 허무하게 무산되어 어쩔 수 없이 반쪽 태교를 하게 되면서 결심했다. 침대 머리 태교를 이어가던 중 아기의 영아 시기를 바글바글한 실내에서 하루를 지내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말이다. 그게 절반 태교를 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양심이고 아기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입덧을 한창 하던 때 병원에 검진받으러 갔다가 그날로 입원하고 누워 지내다 산후조리를 하고 반년 넘게 시간이 흐른 후 집에 돌아온 다음 날 아침, 남편이 출근하고 나니 12월의 냉한 공기가 감도는 집에 처음으로 아기와 단 둘이 남았다. 정말로 딱 아기와 나 둘 뿐이었다. 세상에 둘만 남은 듯한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마음을 다해 아낌없이 사랑하고 돌볼 준비는 되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막연했다. 조카들과 이모, 고모로 놀아주던 것처럼 하면 되는 걸까? 그것과 좀 달라야 하나? 난 엄마니까!
어쩔 수 없이 초보맘의 서투름과 어설픔 꼬리표를 달고서 우선 눈앞에 놓인 일들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신생아를 돌보는 하루 일과는 예상보다 타이트해서 저녁에 아기 목욕을 시키고 나면 고단해서 몸은 물먹은 솜처럼 천근만근 무겁고 침대든 소파든 몸을 누이면 눈꺼풀이 내려앉아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육아의 모든 일이 낯선 이유가 가장 컸다. 역시 언제나 실전은 빡셌다.
하루하루 차곡차곡 시간이 쌓여갔다. 축적되는 시간의 층을 따라 습관이 만들어지고 나만의 육아 루틴이 생겼다. 그러는 사이사이 육아와 살림에 내 일을 엮어 각각의 방법과 순서를 바꾸고 조절하는 짬이 생겨났다. 이렇게 말한다고 그 짬이 곱게 생겼을리가~ 물론 그렇지 않다. 그 짬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육아와 살림에서 거의 똑같은 일이 매일 반복되면 시간의 규칙성이 생기니까 그 틈에서 짬 한 조각이 생긴다. 이게 얼마나 유용한지! 변수가 별로 없으니 계획한 대로 차분하게 하면 된다. 그러면서 습관 내지 루틴이 형성된다. 무언가에 적응되고 익숙해지면 또 다른 짬이 생긴다.
육아와 살림의 병행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시야가 넓어진다. 내 일과 취미를 적극 일과에 끌어들이는 여유가 생긴다. 처음 얼마간은 답보상태거나 때론 역행하는 불상사도 빈번하게 생긴다. 하지만 그만두지 않고 그냥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는 때가 온다. 반드시 온다. 부딪쳐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무엇보다 가장 귀한 짬은 아기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아기는 대부분의 시간에 먹고 잔다. 깨어 있을 때는 두 말할 필요 없이 아기가 보내는 신호를 잘 감지해야 하고 그에 더해 아기와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 따뜻하고 환한 미소로 눈 맞추고, 체온을 담은 정성 어린 손길로 어루만지고 토닥이며 말 건네고 얘기한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나온 어린 생명은 얼마나 두려울까 상상하면 엄마로서 나는 무엇을 하면 될까라는 질문의 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아기의 코드에 맞춰 그것에 걸맞게 응한다.
물론 시행착오 없는 성공은 없다. 한편 부단한 노력은 결실을 낳게 마련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위해, 서로를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숨결과 손길을 아기는 본능적으로 흡수한다. 나를 믿고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그렇게 아기의 눈높이가 되려고 애쓰다 보면 아기와 나와의 관계의 행간을 읽는 여유와 지혜가 싹트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기에게 맞는 코드를 찾기 위해 꾸준한 조율을 해나가다 보면 아기와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느끼는 천금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어리디 어린 아기와 호흡이 맞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놀라운 경험이다!
이것을 토대로 아기가 무럭무럭 성장하여 걷고 뛰고 바깥 외출이 자유로워지면 그동안 갈고닦은 둘의 연습과 훈련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아기 작사 그 엄마 작곡"이라 부를까! 아이가 욕구와 의사를 표현하면 엄마는 해결과 조율을 한다. 쿵하면 짝한다. 가끔씩 삑사리가 나기도 하지만 점점 어울림음에 가까워지는 화음이 만들어진다. 시간은 둘만의 이중주라는 뿌듯한 선물을 한다. 부족하지만 이모저모 보살피고 애쓰는 엄마가 지휘하며 어울림음을 이어가는 행로에서 아이는 엄마를 절대 수용하게 되고 엄마는 세상에 단 한 팀인 '우리들의 이중주'에 두근두근 핑크빛 무드로 물든다.
'우리들의 이중주'의 조율사로서 내가 얻는 가장 보배로운 것은 아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되고 아이의 반응과 표현을 통해 아기의 내면과 잠재력을 하나씩 발견하는 일이다. 보물 찾기처럼 말이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장차 음악가가 되려나? 그림을 잘 그린다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 아티스트가 되면 어떨까? 공룡과 독수리를 좋아해 전국의 자연사 박물관을 다니며 생물학자가 되려나? 아이의 관심과 표현을 유심히 보며 아이의 미래를 찬란하게 할 보물을 상상하곤 한다. 그것을 발견하거나 더 중요한 아이 스스로 찾아 나가도록 안내하고 조율해 주며 그림자처럼 동행할 수 있음은 엄마에게, 부모에게 찾아온 커다란 행운이다. 그걸 알아버렸다. "둘도 없는 자녀이기에 내겐 오직 한 번뿐인 이 기회에 올인한다."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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