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새로운 장(Chapter), 학부모
나무가 우거질수록 그 그림자는 짙고 깊다!
늘 둘이만 붙어 있다가 5세가 되어 아이는 처음으로 엄마 품에서 떨어지는 날을 만났다. 유치원에 가게 되었다. 첫 등원 날 아파트 입구에 노란 유치원 버스에 오를 때까지 아이는 무척 신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버스가 도착해 문이 열리고 상냥한 선생님이 환한 미소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차에 태웠다. 힘차게 차에 올라 자리에 앉은 아이 얼굴이 일순 굳어졌다. 엄마가 차에 타지 않고 서 있는 걸 인지한 것이다.
유치원을 정하고 나서부터 "유치원은 엄마 없이 친구들, 선생님과 멋진 건물에서 놀고 지내는 곳이고, 그곳에 갈 정도로 네가 많이 자란 거야. 아침에 엄마 없이 친구들과 버스 타고 가서 잘 놀고 오후에 버스 타고 오면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할 수 있지?" 때때로 아이에게 일러 주곤 했다. "응. 나 할 수 있어." 그랬는데 막상 현실을 만나니 엄마 없이 낯선 곳에 가는 게 두려운 거였다. 속으로 두려움을 삼키는 걸 보았다. 짠했지만 까치발을 들고 한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아이에게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무사히 잘 갔다 오너라~~~
아이도 아이지만 어른인 나 역시 걱정이 몰려왔다. 만 3년 4개월간 한시도 떨어진 적 없던 아이를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 막상 혼자 보내놓고 나니 마음이 편치 않아 아이가 탄 노란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길에 서 있었다.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집으로 돌아와 어질러진 집안을 심란한 마음으로 기계적으로 정리했다. 오전 내내 전화 곁을 지켰다. 전화벨이 울리지 않아서 다행인가 싶었다.
점심시간 무렵 유치원에 전화를 했다. 아이의 안부를 물었다. 원감 선생님께서 전화를 이어받으시고 말씀하셨다. 놀지 않고 울먹여서 초콜릿도 주고 과자를 줘도 먹지 않고 손에 꼭 쥐고 있다고. 안고 달래니 "자꾸 눈물이 나요" 한다고. 잘 데리고 있다가 하원시키겠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하셨다.
"자꾸 눈물이 나요~" 이 말이 명치에 꽂혔다. 원래 울음 끝이 짧은 아이이고 흔한 때부림도 없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 자기주장이 별로 없고 포기가 빠른 건가 유심히 보곤 했었다. 그래서 엄마가 곁에 없어 불안하고 보고 싶은 마음을 많이 참고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렸다. 어디 몹쓸데 간 것도 아닌데. . . 오전 내내 안절부절못하고 있자니. . .이게 무슨 신파도 아니고.
오후 하원 버스를 기다리며 아이가 어떤 모습일지 계속 떠올렸다. 저만치 버스가 보이고 내 앞에 멈추고 문이 열렸다. 아이가 보였다. 울음을 많이 삼킨 얼굴로 선뜻 내리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보았다. 원망어린 아이의 서러움을 보았다. 왜 나 혼자 낯선 곳에 보냈냐고 말하는 눈빛이었다. 아이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향했다. 초콜릿을 꼭 쥐고 눈물을 흘렸던 자국으로 손이 끈끈했다.
집안으로 들어와 외투만 벗기고 무릎에 앉히고 꼭 안았다. 그제야 아이는 울음을 크게 터뜨렸다. 서러움과 그리움이 폭발했다. 팔에 힘을 주어 안고 또 안고, 등을 쓰다듬고 토닥였다. 한참 후에 가슴의 응어리가 녹았는지 들썩이던 아이의 가슴이 가라앉았다. 손 씻고 간식 먹고 장난감 좀 갖고 논 후 낮잠을 잤다. 자다가 울었다. 얼른 아이 침대로 갔다.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 어깨를 토닥이니 "자꾸 눈물이 나요 "라며 울먹인다. 하루 동안 맘껏 울고 싶은 걸 많이도 참았나 보다! 그 일곱 음절이 내 가슴에 깊이 박혔다. 다음 날 등원이 걱정되었다.
분리 불안이 지속되면 어쩌지 하는 내 우려는 오래가지 않고 과거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단체 생활이 처음이어서인지 면역력이 침범당해 유치원 생활 3주 만에 폐렴에 걸려 대학병원에 열흘 가량 입원하는 통과의례를 치르기는 했지만, 아침에 엄마와 떨어져도 유치원 생활에 적응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언제나 엄마가 반갑게 맞으니 아이는 정서적 안정을 되찾았다. 여러 또래 친구와 어울리는 맛도 알게 되어 그야말로 신나는 유치원 3년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2015년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난 학부모가 되었더랬다. 어엿한 학생이 되기를, 어엿한 학부모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새로운 장의 막이 열렸다.
학생이 되었다는 건 정규 교육 과정 시스템을 밟는 거다. 크게, 작게 학습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것의 무게를 잘 지탱하려면 반복을 통해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가장 쉽고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작게 반복적으로 해서 쌓이는 것은 결정적인 때에 큰 위력을 발휘한다. 시간이 스며들어 이루어지는 노력은 작은 무게일수록 더 견고하고 막강하다. 큰 것은 한 방을 날릴 수는 있으나 결과는 복불복일 가능성이 크다. 적수성연(積水成淵). 하나 둘 쌓아 올릴 때의 여유, 기대, 뿌듯함은 작지만 견고한 축적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요컨대 성장•발달 단계별로 놓치지 않고 시작하고 익혀야 할 생활습관들처럼 학습도 시기를 놓치지 않고 해야 할 것을 등한시하거나 미루지 않고 매일 조금씩 그냥 하는 게 중요하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선순환을 불러오는 루틴을 형성한다. 취학통지서를 받고 학생인 자녀를 둔 부모로서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과 태도에 대해 생각했다.
유치원 시절 원 없이 놀고, 바깥 활동과 여행을 통해 최대한 많이, 다양하게 경험하도록 하면서 매일 밤 엄마 또는 아빠와 때론 혼자 책 보기를 거르지 않게 도와주었다. 그로 인해 아이는 싫든 좋든 저녁이 되면 이것 한 가지, 책 읽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할 일로 여기게 되었다. 아직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습관의 하나인 독서를 하루 중 빼놓을 수없는 것으로 자리 잡아가는 것이 다행이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이전까지의 생활 루틴을 계속하면서 학습 활동이 추가되었다. 예를 들면 받아쓰기, 수학 연산 같은 것이다. 거창하고 대단할 것이 전혀 없다. 학생이 되었다고, 학부모가 되었다고 크게 걱정할 것도 부담스러울 것이 없다. 작게,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매일 하면 된다. 그것이 핵심이다. 자동차 핸들을 조금만 돌려도 주행 방향이 바뀌고 그 방향으로 계속 진행되고 가속이 붙지 않던가. 인생 항로도 방향을 바로 잡는 것이 키포인트다.
학교를 다닌다는 건 공교육의 시스템을 밟기 시작하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배움의 폭이 커지고 유치원 때보다 훨씬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고 선생님을 만난다. 그리고 여러 활동들을 경험하는 가운데 장차 어엿한 사회 일원으로서 그 역할을 책임 있게 해내는 연습을 하며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가운데 단단한 어른이 되기 위한 소양을 쌓는 과정이다. 앞으로의 삶에 밑거름을 주는 12년간의 긴 농사짓기가 시작된 것이다.
아이가 신생아, 영•유아, 유치원생을 지나 초등학생으로 자라는 동안 나는 엄마라는 역할 자아로 다시 태어나 아이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며 성장해 나간다. 매일매일 눈에 띄게 자라고 달라지는 아이는 한 그루 나무처럼 기둥이 굵어지고 가지가 촘촘히 뻗고 잎이 빼곡히 우거진다. 그렇게 작은 아이 나무가 아름드리나무가 되어가는 동안 엄마는 그 나무의 그림자가 된다. 아이 나무에 변화가 생기는 대로 엄마 그림자에 투영된다. 그림자도 나무와 함께 변하고 성장한다.
나무가 우거질수록 그림자는 짙고 깊어진다. 나무의 들숨과 날숨에 맞춰 그림자의 농도와 밀도가 변화한다. 나무가 잘 자랄수록 그림자는 더 넓은 그늘을 드리운다. 엄마는 아이보다 연장자이자 보호자이고 인생 대선배지만 아이의 인생 나무는 아이 스스로 잘 자라도록 보살피고 도와주는 조력자일 뿐이다. 그림자는 나무를 따른다. 부러지거나 병들지 않도록 어린 나무와 그를 둘러싼 주변과 상황을 돌보고 조망한다. 그렇게 그림자는 나무가 자신의 터전을 넓히고 다듬어나가는 것과 동시적으로 생기는 객체다. 또한 그림자 없는 나무는 없으니, 고로 아이와 엄마는 나무와 그림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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