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잘못이 아닌데 내가 왜?

#12 다시 돌아 온 미국, 여름

by Zepline

뉴스를 보고 있었다. 문득, 이런 걸 묻고 싶어졌다.

"너네도 학교 폭력같은 거 있어?"


미국인 사자(가명)는 내게 말했다.

"응. 있지."


내가 다시 물었다.

"학교 폭력 당하면 어떻게 해?"

네이버 뉴스에서 학교 폭력 피해자가 안타깝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보고 난 후였다.

"음......."


사자가 말했다.

"학교에 가서 총 쏴."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총기 소지가 자유라는 나라의 특성 상 총기 난사 사건 역시 빈번히 발생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학교 폭력과 관련이 있을 줄은 몰랐다. 우리가 흔히 뉴스에서 접하는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학교 폭력을 당하다 너무 괴로워 집에 있던 총을 학교에 들고 가 쏴버린다라. 그래서 내가 말했다.

"한국은 그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아."

"왜?"

그리고 그는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내 잘못이 아닌데 내가 왜?"


맞는 말이었다. 학교 폭력은 당한 사람 잘못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스스로의 죽음으로 그것을 끝내려고 할까. 이 친구의 말처럼 차라리 학교에 가서 총을 쏴버리는 게 훨씬 더 통쾌하고 시원한 결말이 아닐까. 잘못의 출처가 분명해보였다. 나는 조금 과격하더라도 이 결말이 더 마음에 들었다. 순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맞네.' 하며 웃었다.


이런 적도 있었다. 하루는 사자네 할머니께서 전화가 왔다. 누군가 할머니의 카드를 도용해 결제를 한 것 같다는 거였다. 정확한 경위는 모르지만 어느 날 카드에서 110달러 남짓한 금액의 돈이 빠져나갔고, 그녀는 다음 날 아침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침 매일 아침 은행에 전화해 잔고를 확인하고 수기로 금액을 기록해두었고, 그 날도 어김없이 은행에 전화를 하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혹시 손자가 카드를 쓴 것일까 확인차 연락한 거였고,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온 그녀는 통화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해결됐어."

어떻게 해결이 됐을까 하니 그녀는 사자와 통화가 끝난 후 은행에 전화해 그 돈은 자신들이 쓴 돈이 아니라고 말했고, 은행은 그 돈을 그대로 그녀의 계좌로 돌려줬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빠르고 쉬운 일처리에 나는 사자에게 물었다. 미국은 이렇게 돈이 빠져나가면 그대로 다 돌려주냐고. 그는 말했다. 은행에서 그대로 다 돌려준다고. 누군가 돈을 몰래 빼가거나 사기를 치거나 도둑질을 해 돈을 가져가면 그 돈이 은행에 있는 한 그대로 다 보상해준다고 했다. 근데 그러면 보이스 피싱이 의미가 없겠는걸?


미국에서 약 100만원 이상의 돈을 이체하려면 인터넷 뱅킹으로는 안되고 직접 은행에 가서 이체해야 한다고 한다. 그마저도 한 번에 너무 큰 금액은 송금이 잘 안되고 최소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얼마든 송금할 수 있는 한국의 은행 시스템과 비교하면 많이 달랐다. 처음에 나는 그 점이 매우 불편해보였다. 급히 필요할 때 쓰지도 못하고, 번거롭게 은행에 들락날락해야 하니. 하지만 그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꼭 빠른 것만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너무 빠른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잃는 것들이 많지는 않은 지.


이곳은 당한 사람이 우선시되는 사회같았다. 가한 사람보다 당한 사람이 우선인 사회. 당한 사람은 당당했다. 가한 사람에게는 가혹했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내가 왜?' 너무 맞는 말이지 않은가.


keyword
이전 12화온전한 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