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신용·협력의 가치를 되살리는 제언
나는 이 글에서 내 생각을 자유롭게 펼쳐놓고 싶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읽어온 책들에서 얻은 작은 통찰을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 적힌 내용이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언제든 반박될 수 있음을 인정하기에, 칼 포퍼(Karl Popper)가 말한 ‘올바른 학문적 주장’에 가깝다고 본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 자체가, 학문과 사회 발전에 꼭 필요한 자세라고 믿기 때문이다.
학문적 정밀성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으나, 내가 이야기하는 주제는 경제학의 ‘통칙’처럼 예외가 많고 반박 가능성이 늘 열려 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분명하다.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늘 반박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야말로 개인은 물론 사회·국가가 유연하고 실용적으로 발전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칼 포퍼의 주장을 빌려 보면, 반론을 수용할 수 있는 자세는 학문은 물론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발전에도 커다란 동력이 된다. 왜냐하면 자기 생각과 말, 행동, 글 등에 언제든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인정하면, 외부의 비판과 조언을 훨씬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이 발전할 길을 열어주는 동시에, 단체와 사회, 국가도 자신들의 결정이 틀릴 수 있음을 깨닫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러한 열린 마음이 실용적이고 생산적인 조언을 수용하게 만들고, 더 올바른 선택으로 이끌어주기 마련이다.
사실 학문도 절대적 진리를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든 틀릴 수 있는 구조다. 옳을 ‘확률’이 높아 보이더라도 오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에, 이를 인정하는 태도가 학문을 더욱 탄탄하고 유연하게 만든다. 반박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여러 가설과 이론을 세워 가는 과정은 현대 학문에서 더욱 필요한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볼 때, “그 시절 사람들은 왜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까?”라고 쉽게 비난한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복잡하고 모순된 고민이 얽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과거를 바라볼 때는 그 시대에 작동했던 ‘이성’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실수를 이성적으로 반성하고, 성공한 점은 배우면서, 현재의 문제를 개선하는 태도”가 훨씬 더 필요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아예 부정하거나 뿌리째 잘라내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원인을 살피고 대안을 찾는 쪽이 결과적으로 나은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모든 성과와 실패를 통째로 부정하기보다는, 오류를 반성하고 성공을 발전시키며 현재의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믿는다.
한편, 나는 우리 사회에서 ‘도덕과 반성’이라는 개념들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고 느낀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개인의 내면에서도 도덕이 약해지니 그 자리를 무한한 이익추구가 대신하고, 그 결과 신용이 희미해진 듯하다. 신용이 사라지면 협력도 깨지게 마련이고, 사람들이 각자도생의 길로 뛰어드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 흐름 속에서 “왜 우리는 도덕과 신용, 협력을 무시하게 되었을까?”라는 물음이 떠오른다. 이 질문은 이지훈 작가의 『결국 이기는 힘』(21세기북스, 2018) 96~97쪽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선명해졌다. 해당 책에 인용된 드라마 「비밀의 숲」 작가의 말, “우리가 옳지 않은 길을 가는 이유는 그 반대편에 쉬운 길이 있기 때문이다”가 인상적이었는데, 그 ‘쉬운 길’이란 결국 도덕과 신용을 포기해도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이 아닐까 싶다.
나는 “신용과 협력을 위해서, 그리고 반성을 위해서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스템과 기술을 긍정적이면서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더 성숙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통찰과 지혜가 인문학에서 비롯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협력과 신용이라는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지키는 힘도 인문학에서 나온다. 개인적으로 나는 인문학을 “글로 쓰인 통계학”이라고 부르고 싶다. 통계학이 숫자와 수식을 통해 인간의 움직임을 살핀다면, 인문학은 글과 기록을 통해 인간이 그리는 무늬와 흐름을 포착하게 해준다고 느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애절양」이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등을 읽으면, 과거에도 인간은 실수를 끊임없이 반복했고, 그 속에서 반성하고 배우며 발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과거의 기록’을 곱씹어 보는 일은 인문학이 주는 소중한 선물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보면, 도덕과 기술(재주)을 동시에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부족해 보인다. 그 결과 신용이 무너지고 협력이 깨지면서 각자도생으로 흘러가는 모습이 잦아지는 듯하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진정한 성장과 발전은 서로 신뢰하고 협력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믿음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인문학과 도덕,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교양이다. 인문학적 통찰이 주는 성찰과 반성, 도덕과 신용의 가치가 함께 뿌리내려야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오류를 인정하고, 반박 가능성을 열어두며, 도덕과 신용을 지키는 태도”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지향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