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나라
노아 시대 이후로 세상에 다시 많은 사람이 살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큰 도시와 높은 탑을 만들어 그것을 자랑하고 서로 모여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하나의 거대한 나라를 세우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하나님은 사람의 언어를 각각 다르게 만들어 그 일을 막았습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민족’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같은 민족끼리 각각 모여 세계 방방곡곡으로 흩어졌습니다. 이 세상은 큰 하나의 나라가 아닌 작고 많은 나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만약 한 나라 안에 세상의 모든 사람이 산다면, 그 나라가 죄에 물들 때 세상 모든 사람이 죄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면 또다시 하나님의 벌을 받아 세상 모든 사람이 멸망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많은 나라를 만들어 각각 따로 산다면 한 나라가 죄에 물들 때 그 나라만 벌을 받고 다른 나라는 벌을 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어를 나누는 방법으로 이 세상에 안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여러 나라, 많은 사람 중에서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특별히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살던 곳을 떠나 ‘가나안’이란 지역으로 떠나라고 명령했습니다. 가나안은 지중해 동쪽에 있는 오늘날 팔레스타인 지역의 옛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가문으로 나라를 만들 계획을 세웠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나라)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장,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온 세상 사람에게 주는 일에 그 나라를 이용하려 했습니다. 음료수와 사람의 입을 연결시켜 주는 빨대처럼, 그 나라는 하나님 은혜와 세상 모든 사람을 연결해 주는 통로 역할을 맡은 셈입니다. 은혜의 통로가 되는 나라입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그 나라를 통해)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창세기 18장, 그 나라의 역할>
사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은혜를 직접 주었기에 굳이 중간에서 하나님 은혜를 받아 사람에게 건네주는 은혜의 통로 역할이 꼭 필요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꾸 죄지으면서 하나님의 벌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은혜를 온전히 받으려면 누군가가 사람에게 죄짓지 않는 길을 안내하고 가르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선악과 사건, 가인 아벨 사건, 노아 홍수 사건으로 사람에게 죄란 무엇인지 직접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대가로 무거운 벌을 사람에게 주면서 사람이 죄의 길로 가지 않게 직접 가르쳤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에 비해 너무 연약하기에 하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벌을 감당하지 못하면서도 자꾸만 죄의 길을 갔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야 가르치는 쪽과 배우는 쪽의 차이가 심하게 나지 않아 사람이 제대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길과 죄의 길을 가르치는 사람을 따로 세워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나라를 여러 개로 나눴기에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가르치는 나라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좋은 아브라함의 가문으로 그런 나라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일을 계획한 이유는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명령에 따라 가나안 지역으로 이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과 그 주변 지역을 떠돌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온 지 약 10년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아브라함은 자녀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가문으로 나라를 세우려는 하나님 명령을 지키려면 가문을 이을 자녀가 꼭 필요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스스로 자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예전에 하인 한 명을 가문의 후계자로 정할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계속 나이가 들고 있었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아내 ‘사라’는 아브라함이 더 늙기 전에 자녀를 얻도록 결단을 내렸습니다. 사라는 자기 여자 하인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아브라함의 자녀를 낳도록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 말을 들었고 곧 아브라함과 하갈 사이에 아이가 생겼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에게 아이가 없었던 이유는 사라 때문이었습니다. 하갈은 자기 아이로 아브라함 가문을 잇게 되자 임신하지 못했던 여주인 사라를 깔보았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한 남편이 여러 아내를 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자녀 문제를 해결하려고 아내를 더 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매우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사라와 하갈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갈과 그 속의 아이보다 사라 편을 들었습니다. 사라는 하갈을 구박했고 아브라함은 그런 사라를 막지 않았습니다. 절망에 빠진 하갈은 임신한 채로 도망쳤습니다. 아브라함 가문의 자녀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도망가던 하갈은 천사를 만났습니다. 천사는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는 존재로서 사람을 돕거나 은혜의 길로 이끄는 일을 주로 합니다. 천사는 하갈에게 집으로 돌아가 아이를 낳으라고 말했습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에게 돌아가 아이를 무사히 낳았습니다. 그 아이 이름은 ‘이스마엘’이었습니다. 아브라함 가문의 자녀 문제는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가문 사람들에게 지금부터 대대로 ‘할례’ 의식을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할례는 남성의 성기 일부분을 잘라내는 의식입니다. 남성 포경 수술과 비슷합니다. 할례는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도 그 가문이 나라 세우는 임무를 잊지 않고 계속 이어가게 하려고 할례를 시켰습니다. 할례는 아브라함 가문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천사 2명과 함께 아브라함을 찾아왔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많은 사람 중에 아브라함을 선택한 이유를 말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자기 가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 가문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계획을 항상 기억하고 아브라함에게 배운 은혜의 길을 성실히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창세기 18장, 아브라함이 선택된 이유>
-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기 가문을 가르쳐 하나님의 길을 따르게 하려고 그를 선택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은혜의 길을 가라는 말씀과 함께 죄의 길을 간 도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보여 주려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도시 안에 있는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 때문에 억울하게 함께 망하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악한 사람이 매우 많아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하나님이 노아라는 한 사람 때문에 사람과 세상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고 다시 기회를 주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선한 사람을 악한 사람보다 훨씬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도시는 죄로 온전히 물들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죄의 길을 가면 멸망하는 것과 이런 멸망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아브라함 가문이 맡았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브라함 가문의 후손이 단 한 명뿐인 불안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아이를 갖지 못한 사라에게 임신을 약속했습니다. 사라는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형 이스마엘은 동생 이삭을 놀렸습니다. 이것을 본 사라는 이스마엘과 그 어머니 하갈을 쫓아내고 싶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두 아내의 다툼을 막지 못하고 괴로워하기만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결정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도 큰 나라를 만들 것이라 약속하면서 아브라함을 위로했습니다. 이삭은 혼자서 아브라함 가문을 잇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태워 드리는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했습니다. 제사하러 가는 길에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제물로 드릴 양에 대해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린양을 준비하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이삭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지만 아브라함의 소원 기도이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명령대로 이삭을 죽이려고 할 때 천사가 아브라함을 말렸습니다. 아브라함은 나무에 걸린 숫양을 보고 그 양으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하나님 명령을 따르면서 아들을 살리고자 기도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면서 하나님 사랑을, 그리고 아들을 살리기 위해 기도하면서 사람 사랑을 해냈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매우 특별한 시험이었습니다. 오직 아브라함에게만 이런 시험을 주었고 그 이후에 다른 사람에게는 이와 비슷한 시험을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가문으로 나라 세우는 일을 아브라함과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의 계획이므로 그 일 대부분은 하나님이 직접 할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역할은 자녀를 낳아 가문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이 일할 때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은혜로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재산도 얻었지만 자녀를 낳아 가문을 잇는 가장 중요한 일을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실망하거나 무기력하게 있으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많이 사랑했지만 또 다른 아내 하갈을 그만큼 사랑하지는 못했습니다. 가족끼리 다툼이 일어났을 때 가장으로서 질서를 제대로 잡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완벽하게 해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특별하고 대단한 능력을 갖춘 사람은 아니었지만 선하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의 인생은 자기 가문 사람에게 바람직한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비록 한 명의 자녀를 낳아 가문을 간신히 유지했지만 하나님이 맡긴 일을 성공적으로 감당했습니다.
아브라함 가문으로 나라를 세우는 일은 아브라함이 죽고 수백 년이 지나야 이루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생전에 그 일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그 일을 언젠가 할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을 옳게 보았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