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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에그 Jan 11. 2024

#1 아파트는 처음이라


1999년 4월 3일. 내가 결혼한 날이다. 


결혼준비를 하며 가장 중요한 건 집을 구하는 일이다. 신혼집은 부천중동신도시 16평아파트로 시작했다. 


복도식구조에 거실겸 방과 작은방 하나 신혼부부가 살기에 안성맞춤이다. 큰방에는 체리색 10자 장롱을 들여놓고 티비와 스피커가 2개 있는 오디오시스템은 필수다. 작은방엔 침대와 화장대가 들어가면 딱이다.


태어나서 20년을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살았고 결혼전까지 빌라에서 살았다. 아파트는 뭔가 있는 사람들만 사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전세집 계약을 하고 예비부부와 나의 입사동기인 남편친구는 셀프인테리어를 시작한다. 신혼집의 컨셉은 엘로우와 그린컬러의 스위트홈이다. 우선 옥색의 창틀을 연노랑 페인트로 칠을 한다. 도배지도 잔잔한 무늬가 있는 연노랑색에 나무결무늬의 장판은 기본이다. 준공한지 4년차인 아파트라 그 외에는 특별히 손볼곳이 없었다. 


우리 세명은 그날 모든 창을 다 열어놓고 페인트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에서 추억의 첫날밤(?)을 보냈다. 그리고 베이지색의 광목커튼과 그린색의 빅쿠션으로 내가 꿈꾸던 스위트홈이 완성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대기업 건설회사는 IMF로 인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입사한지 1년도 안돼 어쩔수 없이 퇴사를 했다. 여상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입시준비를 했다. 


남들보다 2년이 늦은 나이로 대학에 합격했다. 낮에는 직장에서 밤에는 학교에서 열심히 살았다. 어렵게 취직한 곳인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퇴사를 하고나서 우울증이 찾아왔다.


내 나이 27살. 그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해서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가는 시간들이었다. 안좋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벼랑끝으로 몰고 갔다. 


더 힘든건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이다. 보다못한 언니는 함께 책대여점을 하자고 한다. 모든 의욕을 상실한 나는 언니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나를 걱정하는 마음을 알기에 마지못해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책대여점>은 외환위기로 인해 실직자들이 많아지면서 생각지 못한 호황을 맞이하게 된다. 화곡동에 살고 있던 우리는 집에서 가까운 부천중동아파트 상가에 있는 가게를 권리금을 주고 인수했다. 


언니는 낮시간에, 나는 밤시간에 일했다. 주말엔 알바를 쓰며 수입의 반을 나눠 가졌다. 일하는 시간에 비해 수입도 괜찮았고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우울증은 자연스럽게 치료가 되었다.


책대여점이 있던 아파트 단지가 내 신혼집이다. 가게를 하면서 건설회사 입사동기의 친구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결혼한지 6개월만에 아이가 생겨 가게는 권리금을 받고 정리를 했다.


2000년 밀레니엄 베이비. 우리 아들이 태어남과 동시에 얻은 타이틀이다. 그해 신생아가 많이 태어났다. 이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치열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안하지만 어쩔수 없다. 사실 어이없게도 임신한 줄도 몰랐다. 


어느날 겨드랑이에 멍울이 만져지고 아팠다. 안좋은 생각뿐이었다. 암보험을 들어놓은지 3개월이 안되서 공포를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3개월이 넘은 시점 우선 동네 내과에 가서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임신가능성이 있는지 물어본다. 손가락을 세어보지만 모르겠다. 우선 임신테스트를 하자고 한다. 결과가 나왔다. "임신을 축하드립니다~!" 암일거라고 생각하고 갔던 병원에서 임신소식을 들으며 나왔다. 


아이는 엄마아빠성격을 닮아 울음도 짧고 순했다. 다만, 안먹는 것도 둘을 닮았다. 남편이나 나나 어릴때 잘 안먹어서 키가 작은데 걱정이 태산이다. 하도 안먹으니 순한 아이보다 잘 먹는 아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래도 아이를 좋아하지 않던 나도 내 아이는 이뻤다. 


내가 꿈꾸던 아파트에서 아이와 보내는 신혼은 부족함이 없었다. 돌이 안된 아이와 함께 놀고 있던 어느날 누가 찾아오기전까지는...


"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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