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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에그 Jan 15. 2024

월세 No, 전세 Yes!


"누구세요?"

"집주인이에요~"

집주인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인테리어가 완벽한 나의 스위트홈을 보는 순간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게 분명하다. 이방저방 둘러보기에 정신이 없다. 나는 주인집의 가치를 높여 준 일등공신이 된 것이다. 5개월된 아이는 모르는 사람이 와도 울지도 않고 그저 내 품에 안긴다.

집주인은 어떤 사람인가. 아파트를 분양받아 1995년 입주를 했다. 아이들이 커가니 16평아파트는 좁아졌고 근처 30평대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며 살던 집을 전세를 놓고 갔다. 그당시 아파트를 매수해서 갔고 일시적 1가구 2주택으로 비과세를 노렸다면 부동산 투자를 나름 잘하신 분이다. 부동산의 '부'자도 모르던 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신혼집을 알아 보던 1999년초는 IMF를 겪으며 집값은 하락을 했고 금리는 20%에 육박하던 시기였다. 중동신도시 16평아파트의 매매가는 4,500만원이고 전세가는 3,000만원이었다. 다행히 시댁에서 전세금을 해주셨다. 부동산을 좀 알았다면 1,500만원 대출을 끼고 구입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빚을 지는 걸 싫어하는 나다. 게다가 높은 이자로 대출을 받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대학 4년동안의 학비를 내가 벌어서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은 IMF때문이다. 남편을 만난지 1년만에 결혼을 하려니 모아놓은 돈이 없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미뤘다. 본인이 하고 싶은건 하고야 마는 남편은 방법을 찾는다. 신혼살림중 가전가구를 카드할부로 구입해서 천천히 갚아나가자고 한다. 팔랑귀인 나는 들어보니 나쁘지 않아 혹하고 넘어간다. 이것도 빚인데 말이다.

전세만기가 다가오자 집주인이 찾아온거다. 만기시점에 전세가는 4,500만원으로 2년전 매매가가 되었다. 카드할부 10개월에 외벌이로 모아놓은 돈이 여전히 없다. 아이도 어리고 내손으로 한 인테리어 때문에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2년 더 살려고 생각중이었다. 

그런데... 월세로 돌리겠다고 한다. 월세가 아니면 나가란다. 월세는 1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없는 형편에 이사비에 복비에 아깝기만 한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집을 보고나서 더 확고해진게 틀림없다. 괜히 남좋은 일만 시켰다.

당장 어디로 가야하나 막막하다. 2년 더 살겠다 생각해서 그렇다. 그날 퇴근한 남편과 상의를 한다. 이럴때는 감성적인 나보다는 이성적인 남편이 낫다. 아이가 태어나고 짐이 늘어나자 작은방 침대를 시댁에 갖다 놓은 상태다. 이 동네에서는 대출을 받아도 같은 평수다. 

이왕 이사할거면 좀 넓은 집이 낫지 싶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선택한 것이 지역을 옮기는 것이었다. 부평으로 가면 같은 돈으로 21평 아파트 전세를 구할 수 있다. 유모차를 끌고 주말마다 옆동네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때마침 날짜가 맞는 집을 찾았다.

나의 두번째 보금자리는 부평에 있는 주공아파트다. 21평 복도식아파트로 거실과 방2개에 화장실하나인 구조다. 16평에서 살다오니 넓어서 좋았다. 시댁에 갖다 놓은 침대도 다시 가지고 왔다. 다만, 도배 장판상태가 영 아니라 추가비용이 들었다. 없는 형편에 마음이 쓰리다. 여기선 오래오래 살아야지... 

정남향에 해도 잘들고 16평과 21평으로만 구성된 1,650세대 규모의 아파트라 놀이터에 나가면 아가들이 천지다. 새로운 동네에서 잘 적응할지 걱정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나갈때마다 아이친구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그때는 이집 저집 가서 먹을거 나눠먹고 차마시고 수다떠는게 일상이었다. 외동 아이라 외롭다며 친구를 만들어준다는 이유로 내 욕망을 채우기 바빴다. 저녁준비를 할때 쯤이 되서야 집으로 돌아오는게 다반사다. 유모차를 끌고 근처 마트로 쇼핑도 같이 다녔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이곳에 살며 돌잔치도 했다.

남편은 전기설계사무실을 다녔다.  IMF이후로 열악해진 건설환경으로 인해 철야와 야근을 밥먹듯이 했고 주말도 없이 일을 했다. 말이 좋아 엔지니어지 박봉에 그냥 3D직업이다. 오죽하면 내가 대학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하고도 건축설계사무소가 아닌 건설회사를 선택했을까.

내가 엄마들과 낮에 재미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편은 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나가서 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들어오는 어깨가 무거운 가장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 좀 하자고 한다.

"상의할게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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